소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쉼터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마주쳤던 그 무겁고 슬픈 눈빛이 침묵 가운데 더 깊이 느껴졌다. 밥도 먹이고 사탕도 주었지만 아무 말도 없는 소녀를 보며 수사님은 아마 길거리 생활의 충격이나 배고픔의 고통 때문에 말문을 닫았을 것이라며 일러주셨다.
떠날 때가 되어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름 없는 홈리스들이었던 그들이 밥을 나눠먹고 춤을 추면서 이제는 형제자매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보면서 웃으시는 모습을 보며 한 분씩 사진을 따로 찍으며 나중에 보내드리기로 약속했다. 비록 옷은 남루했지만 태어나서 처음 사진을 찍을 때에는 근엄한 얼굴로 옷매무새를 만지는 모습이 짠했다.
이빨이 듬성듬성 빠진 할아버지, 얼굴에는 주름뿐인 할머니와 사랑스럽게 키스를 나누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그렇게 인사를 한참 나누고 있는데 아래에서 어떤 작은 손이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내려다보니 그 소녀가 사탕을 물고 애절한 눈으로 내 손을 더 세게 잡고 있었다. 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 흐르는 눈물로 소녀의 얼굴을 비비면서 꼬옥 껴안았다. 하지만 ‘벨로마!(Veloma-안녕)’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마다가스카에는 말 못하는 이름 없는 소녀가 많았다.
어떤 아이가 태어났는데 조금이라도 장애가 있으면 부모는 문화와 관습 때문에 큰 죄책감 없이 그 아이를 버린다고 했다. 그렇게 버려진 아이들을 모아 키우고 있는 사랑의 선교회 수녀원을 방문했다.
모두 하나씩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 그 조그마한 아이를 가슴에 안으면 아주 약한 떨림으로 전달되는 슬픔과 불안, 절망이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사랑의 선교회 성당 십자가 옆에 쓰여 있던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I Thirst(목마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극심한 육체적 고통 중에 느끼셨던 그분의 목마름은 한편으론 희망을 잃고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목마름이기도 했다.
사랑의 선교회 수녀님들은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매일 한 시간씩 그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하셨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목마름을 안고 예수님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열흘간의 마다가스카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그곳에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언제나 나오는 깨끗한 물, 월마트와 코스트코에 넘치게 쌓여 있는 물건, 남아 버리는 음식을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며 심하게 목이 말랐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똑같은 인간인데 이렇게 다르게 살고 있음이 이해되지 않았고, 아무렇게나 쓰고 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화가 났다.
많은 고통 받는 아이들 가운데 특별히 홈리스 쉼터에서 만난 소녀를 잊을 수가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그 소녀를 나는 ‘사라(Sara)’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라는 마다가스카 언어로 ‘아름답다’라는 뜻이다. 그때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사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배고픈 사라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사라를 잊지 않기 위해서,
더 정확히 말하면 내 몸과 마음에 사라를 각인시키기 위해서 달리기를 했다.
사라는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나에게 그냥 사제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어떤 사제로 살 것인가?’에 대한 화두였다. 사제가 되는 것은 하루의 일이지만 사제로 살아가는 것은 평생의 일이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가난한 이를 잊지 않는 것이 나의 사제성소에 중요한 목표가 될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어떤 사제로 살아갈지 답을 찾는 과정이 나에게는 달리기였다.
가장 본질적인 행위 안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것, 그제서야 나의 달리기가 얼굴을, 아름다운 사라의 얼굴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