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클리브랜드: 나의 마라톤 성소

신사의 첫 번째 요건은 완벽한 동물이 되는 것이다. 니체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신학교(Seminary)는 ‘성소(聖所)’ 혹은 ‘못자리’라고 불린다. 이곳은 하느님에게 불리움을 받은 신학생들이 지적, 영적으로 양성되어 신자들에게 봉사할 사제로 자라는 곳이다. 동시에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며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칠 수 있도록 성장하는 거룩한 장소다.


신학교가 사제직의 성소라면 나의 마라톤 성소는 클리브랜드다. 이곳에서 나는 마라톤에 입문했고, 매년 달렸고, 가장 잘 달렸다.


클리브랜드는 디트로이트와 함께 한때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지만 철강산업의 쇠퇴로 쇠락한 도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신수가 활약했던 프로야구팀 인디언즈(Indians), 르브론 제임스가 뛰었던 프로농구팀 캐빌리어즈(Cavaliers), 프로미식축구팀 브라운즈(Browns)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적인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와 락앤롤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미국에서도 이름난 뮤지컬 극장, 미술관, 박물관 등이 옛 영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클리브랜드 메트로파크(Metroparks)다.


1590380225252.jpg?type=w966 클리브랜드 메트로파크, 2005년


카이아호가 국립공원(Cuyahoga Valley National Park)과 함께 있는 메트로파크는 미국 오대호 가운데 하나인 이리(Erie) 호수와 더불어 클리브랜드를 감싸고 있는 ‘에메랄드 목걸이(Emerald Necklace)'라고 불린다.


이 아름다운 메트로파크로 가는 것은 도시에서 원시로, 문명에서 미개로, 소음에서 침묵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나는 메트로파크를 사랑했다. 그곳에서 걸었고, 자전거를 탔고, 기도했다. 그리고 언제나 달렸다.




클리브랜드 마라톤 대회는 1978년에 시작되었는데 처음부터 10킬로미터 레이스가 유명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엄청난 상금을 보고 10K를 뛰기 위해 클리브랜드에 왔고, 대회 때 아마추어 참가자들이 3킬로미터 정도를 달려나갈 때 반환점을 돌아 뛰어오는 엘리트 선수들의 엄청난 속도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것은 클리브랜드 마라톤 대회만의 매력이었다.


2005년에 클리브랜드 하프 마라톤을 신나게 달렸던 나는 이듬해 첫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했다. 일년 동안 달리기를 꾸준히 하며 체력을 키웠고 그만큼 자신감도 커졌다. 그런데 하프코스의 두 배인 풀코스를 뛰기 위해서는 두 배 이상의 피와 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6주 훈련으로 완주할 수 있었던 하프 마라톤과는 달리 풀코스 마라톤은 최소한 4개월(16주)의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했다.




2006년 5월 21일, 첫 풀코스 마라톤 대회 날이 밝았다. 정확히 말하면, 어두운 날에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과연 이런 날에 마라톤을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새벽길을 나섰다. 시내에 있는 주교좌성당 앞에서 함께 뛰기로 한 ‘살아있는 사람 2(Living Man 2)'를 만났다. 나를 포함한 신학생 다섯 명과 교수님 한 분이었다. 걱정과 기대로 출발선에 섰을 때 이미 신발은 다 젖었고 추위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1588831574023-0.jpg?type=w1 살아있는 사람 2, 2006년


7시 정각이 되어 출발 총성이 울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추위를 떨치며 달려 나갔다. 5킬로미터 정도를 뛰자 비는 그쳤고 몸에서는 서서히 열이 나기 시작했다. 천천히 속도를 높이며 목표한 3시간 10분 완주 페이스에 맞추어 뛰었다.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바닥에 고인 빗물은 반짝였다.


마침내 21킬로미터 지점에 이르렀다. 그러자 하프 마라톤과는 완전히 다른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음을, 비교할 수 없는 풀코스 마라톤에 들어섰음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한번은 도전하고 싶은 풀코스 마라톤! 하지만 인간 몸의 한계를 뛰어넘는 거리, 온몸의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체력,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이 필요한 풀코스 마라톤은 쉽게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과 같은 것이다.


30킬로미터 지점에 가까이 왔을 때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클리브랜드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길을 뛰고 있는데도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2킬로미터를 지나 호수길로 들어섰는데 강한 호수바람이 맞불어왔다. 바람과 싸우며 앞으로 나아가기가 버거웠다. 다리는 활력을 잃고 호흡은 거칠어졌으며 바람 때문에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뛰니 허리가 아팠다.


그제서야 ‘풀코스 마라톤은 32킬로에서 시작하여 남은 10킬로가 진짜 레이스다.’하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풀코스가 아닌 32킬로미터 마라톤을 준비했던 것이다.


벽에 부딪쳤다.


심한 충격을 받고 비틀거리며 사력을 다했지만 달린다기보다는 빠르게 걷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나를 지나쳐 달려 나간 사람들, 그 가운데에는 젊은이만이 아니라 노인, 심지어 의족을 찬 채 달리던 여자도 있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성모송을 계속 외며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놓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사람들의 환호소리도 도시의 풍경도 사라지고 오직 나의 거친 숨소리만이 함께 했다. 한참을 달려 시내로 들어섰지만 길을 잃고 헤매는 마음이었다.


마침내 결승선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오히려 담담해지는 것이 아닌가. 결승선에 다가갈 때 손을 들어 승리의 기쁨을 드러내거나 고통을 이겨낸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열광적인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면서 손을 흔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천천히 성호경을 긋는 것이었다. 마치 큰 고통을 안고 긴 기도를 바친 사람이 침묵 가운데 행하는 마지막 행위처럼, 천천히 위에서(손이 무거워 어깨까지밖에 들어 올리지 못했지만)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 어깨로 십자가를 그으면서 조용히 ‘아멘’이라고 말하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3시간 27분 25초의 긴 기도가 끝나는 순간, 그 자리에 선채 움직일 수 없었다. 영혼을 흔들어대는 감동이 내 몸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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