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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복희 Jul 24. 2022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시대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헤어질 결심>을 보고

같은 영화를 보러 극장에 서너 번 찾아가는 일은 실로 오랜만이다. 그건 나의 가장 소중하고 즐거운 취미 중 하나였지만 2019년 <기생충>을 마지막으로 잠정 중단 중이었다. 그 이후 좋은 영화들이 여럿 있었어도 극장에서 장기간 상영하며 무려 두 시간가량 (심지어 마스크를 쓰고) 꼼짝없이 앉아있을 만큼 재밌고 1.5배 치솟은 푯값이 아깝지 않은 작품은 없었던 것이다. 넷플릭스까지 합쳐도 한 달에 영화를 한 편 볼까 말까 하는 시간을 보내던 중 들려온 박찬욱 감독의 새 작품과 영화제 수상 소식은 어쩐지 소원해진 옛 친구가 성공했다더라 하는 얘길 전해 들은 마냥 서먹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칭찬을 주머니에 숨겨놓고 콧구멍만 벌름댈 때처럼 든든한 느낌이기도 했다. 박찬욱은 내게 뭘 먹어도 평타는 치는 맛집인데 그래도 기왕이면 이번 작품 대존맛이었으면, 두 번 세 번 보러 갈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가졌으면, 기대했다. 어쩌면 이미 '좋아할 결심'을 하고 극장을 찾았을지도. 우... 진부한 문장이다.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도 되지 않은 시점, 이미 2차 관람은 당장 내일이 좋을까, 하루 묵혔다 내일모레가 좋을까 생각하며 도파민이 퐁퐁 솟았다. 이 작품은 아주 실력 있는 셰프 군단이 아주 귀한 재료로 내 입맛에 딱 맞춰 만든 요리 같았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상상되는, 모든 감각이 감정을 느끼는 이런 경험이 바로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였고, 맞아 이래서, 하고 그걸 되새기게 하는 영화를 찾으면 그 자체로 또 기쁜데... 이렇게 설명하면 너무 들떠 보이고 쑥스러워서, 혹은 정확히 풀어놓기보다 압도된 기분 덩어리를 즐기고 싶어서 한 마디로 퉁쳐버린다. 아 뽕 차오른다! 첫 번째는 집 근처에서, 두 번째는 좋아하는 영화관에 찾아가서, 세 번째는 동행과 함께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관람했다. 위에 신나게 늘어놓은 영화적 경험은 영화와 호흡을 맞추며 풍덩 빠져든 두 번째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다면 세 번째엔 다른 속도의 호흡으로, 한참 생각을 붙잡고 있다가 아차차 따라가길 반복했다.



영화를 붙들고 곱씹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나의 경험과의 접점에서 시작하기 마련인데, <헤어질 결심> 이례적이다.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지만 정작 영화의 단일한, 재료인 '사랑' 내게 말문이 막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손희정 영화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헤어질 결심>은 사랑을 핑계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그런 유의 영화가 아니다. 어지간해서는 한 줌의 볕도 허락하지 않는 가상의 도시 이포의 안개처럼, 사랑은 프레임 속에 밀도 높게 고여 있다. 

그러니까 보통 '멜로 드라마' 바나나맛 우유라면  영화는 사랑이란 감정 자체를 138 동안 얘기하는, 바나나를 으깨어 단단하게 뭉친 형태에 가깝다. 꿀떡 삼켜버리고 ~ 맛좋다~ 하고 넘어갈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2019년 영화 <미성년>에서 영주(염정아)가 자신의 남편과 불륜 관계로 임신까지 해버린 미희(김소진)에게 가정이 있는 남자인 걸 알면서도 그 지경까지 갔는지 묻자 미희는, '불륜 한 번 해 보면 그 마음 알 거라고' 한다. 딸깍... 그때 나의 버튼이 눌렸다. 도대체 그 마음은 무엇인가. 가정이 있든 전과가 있든 멈출 수 없을 만큼 불같은 미친 사랑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지극히 사적인 알고리즘으로 나는 <헤어질 결심>을 보고서 <박쥐>도 히치콕 영화도 아닌 <미성년>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블로그 이웃들이 <헤어질 결심> 후기를 올리면 말벌 아저씨처럼 쫓아갔다. 불특정 다수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면 구글링하거나 오타쿠들이 밀집된 트위터를 훑어보는 게 효율적이지만 나와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고 꼬치꼬치 물어볼 수 있는 특정 소수의 감상이 궁금했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끼리끼리 놀아서인지 주변에 미친사랑 서사를 가진 친구가 거의 없었지만... 용케 한 명을 찾아 긴 대화를 나눴다.



거참 글 쓰는 와중에 이런 얘기 좀 그런데... 앞부분을 써놓고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그새 이 주제에 흥미가 사그라들었다. 그렇다고 기세 좋게 시작한 글을 미루기엔 찜찜하고... 나는 사랑에 관해 탐구하는 글에게도 책임감 내지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 긴 대화 중에 J가 내 조촐한 연애 이력에 붙인 코멘트가 그랬듯이. 책임감과 의무감이 대단하군요. 그것이 (일대일 종속관계 간의) 사랑에 관한 현재 나의 정의일 것이다. (연애를) 하기로 한 이상 (연애하는 사람 사이) 해야 할 일들을 성실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안 하는 것. J는 교통사고처럼 피할 수 없이 덮치는 감정을 이야기했고 나는 스크린 속 미희의 대사가 나를 덮쳤을 때처럼 분했다. 내겐 (연애할 수 있는) 상황이 대강 마련되기 전에 감정이 문 부수고 들어온 경험이 없었다. 글쎄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 열린 마음이라 생각했는데 열림 교회 닫힘이었던 것일까.



결국 나는 <헤어질 결심>의 그 재료를 '목숨 바칠 만큼 불같은 사랑'보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미결로 남고 싶은 미친 욕망'으로 해석했다. 송서래도 홍산오도 그랬다. 둘은 철저히 자기 욕망의 실현 수단으로 죽음을 택했다. 상대방을 붕괴시키고 싶은 파괴욕과 방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내 생각만 했으면 하는 독점욕. 그건 상대방을 사랑하는 걸까, 자기애일까? 아무래도 <헤어질 결심>은 순도 100%의 오타쿠 영화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고찰은 여전히 회색이고 호기심은 도로 미지근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친구들은 어떻게 해석했는지 무지 궁금하다. 어떤 장면에 심장이 찌르르했고 어떤 장면에서 어떤 기억을 떠올렸는지. 하긴 그런 걸 궁금해하는 것도 일종의 사랑인 걸까.



여담: 웃긴 피드백

1. J는 그때도 덕복이 이 주제에 금세 시들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2. 0은 덕복이 한 두어 달 뒤 별안간 이 주제로 급발진해 또 글을 쓸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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