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6년에 퇴사한 회사의 부사장님을 몇 년 만에 만났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이고, 평생 연락하며 지내고 싶은 분이다. 재택근무 위주로 생활하다 보니 외출만으로도 흥분이 되는데, 테헤란로가 아닌 을지로라니! 강남에서는 느낄 수 없는 거리 풍경과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바로 사무실로 올라갔다. 부사장님 방에서 일과 삶, 그리고 내가 그동안 했던 투자 얘기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이후 사장님께 인사드리고, 내가 근무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회사에 다니고 있는 동료 4명과도 따로 얘기를 나눴다. 넥슨을 퇴사한 후 다른 게임 스타트업에도 다녔지만, 어떻게 보면 현재 내 커리어의 시작점은 바로 이 회사였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모두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하드 스킬과 소프트 스킬 모두 엉망이었다.
물론 나도 잘 안다. 퇴사한 사람이 회사를 방문하면 반가울 순 있지만, 굳이 시간을 들여 얘기할 정도로 흥미롭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사무실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는데, 부사장님이 데리고 가서 공간 구경도 할 겸 간 것이었다. 지금은 당시 동료 4명과 따로 약속을 잡고 만날까 말까 계속 고민하고 있다. 원래는 이 정도로만 마무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겠지만, 내가 번아웃이 올 정도로 몸과 마음을 바쳤던 곳이라 사람에 대한 정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오늘 만남을 통해 중요한 깨달음이 있었다. 바로 내가 그 회사를 정말 잘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 다니고 있었다면, 내 커리어는 발전하지 못했고 연봉 역시 현재 수준보다 훨씬 낮았을 것이다. 게다가 내 투자 스타일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퇴사 후 핀테크와 암호화폐 회사 등을 거치며, 나는 커리어 성장뿐 아니라 투자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방법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간과 주변 환경,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 이 회사는 아직도 명확한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없는 상태였다. 굳이 AI까지 가지 않더라도 업무 개선을 위한 기본적인 프레임워크만 갖춰도 직원 수를 절반으로 줄이거나 훨씬 높은 생산성을 낼 수 있을 텐데,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인다. 결국 능력있는 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계속 제자리에 머물거나 후퇴하는 모습이다. 인재 채용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는 회사라면 이직하는 것이 맞다. 발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리스크를 감수하는 시도를 하지 않으니, 공무원처럼 오래 다닐 수는 있어도 좋은 팀과 업무, 그리고 주식 보상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가끔 이렇게 예전에 함께 일했거나 친했던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그들과 멀어진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내가 그동안 많이 성장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커리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스스로 모험했던 여정과, 같은 회사에 머물거나 인맥 라인만 따라가는 커리어는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몸과 마음을 건강히 관리하며 세상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노후 대비를 위한 투자 역시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잊어버린 것도 많았다. 부사장님의 가치관과 교육관을 들으며, 정작 중요한 '나'라는 본질보다 돈만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부끄러웠다. 평생 투자하려면 결국 나 자신이 평생을 바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주로 새로운 사람들만 만났는데, 올해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려고 한다. 나의 오만함과 게으름을 깨닫게 해줄 사람들 말이다. 반가웠던 옛 동료 4명과는 약속을 잡지 않기로 했다. 나라는 사람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면 그들이 먼저 날짜를 잡아 연락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지금처럼 각자의 삶을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