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이 틀이 불편하다
《누가 정한 역할인가》
아들 영양제 좀 챙겨 먹이라고
시어머니가 보내셨다
아프다는 말은
남편이 했는데
약은 내 손에 쥐어진다
다 큰 어른의 건강을
내가 챙기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누구도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분위기
그 틀 안으로
나를 자꾸 넣으려는 세상에
나는 아직도
몸이 삐끗거린다
맞춰지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다
나는 오늘도
타인의 몸을 먼저 챙기며
내 안의 불편함을
혼자 삼키고 있다
도대체
그 많은 ‘당연한 일’은
누가 정했을까
영양제는 남편 것인데
설명은 나에게 전해졌다.
무슨 약인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몸에 좋다는 정보까지 덧붙여서.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한 번도 “왜요?”라고 물어본 적이 없다.
그게 어색했고,
묻는 내가 이상해 보일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어느새
자연스럽게 영양제를 챙겼고,
검색창에 ‘면역에 좋은 음식’을 쳐보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계속 어긋났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도 아니었고,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니지만…
세상이 나에게 기대한 역할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인것 같다.
‘며느리니까, 아내니까’라는 이유로
내가 챙겨야 하는 것이
점점 많아지고
당연하게여겨질 때
나는 조용히 삐그덕거린다.
내가 연약해지면
신랑도 같은 역할을 기대받게 될까
이 틀은
나한테 맞지 않는다.
나는 아직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불편하다.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다.
그 틀에 맞추기 위해
내 마음과 시간을 깎아내는 것이
조금은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