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자리

<소년이 온다>를 읽고, 선거를 맞이하며

by 닭강정

오늘의 시


《꽃이 피는 자리》

기억은 흙처럼 남는다
밟힌 자리마다
조용히 숨죽인 목소리들

누군가는
그 봄을 견디지 못했고
누군가는
그 봄을 품에 묻고 살아간다

오늘, 우리는
한 장의 종이를 마주한다

잊지 않기 위해
다시 피어나기 위해

가장 어두웠던 자리에
가장 맑은 봄이 피어나기를

무너진 이름들이
두 번 다시
땅속에서 묻히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선택하는 이 자리가
누군가의
다음 생이 되기를




Essay : 기억 위에 꾹, 도장을 찍는 날


꽃 피는 계절이 오면

괜히 조용해진다.


햇살도 따뜻한데

속은 어딘가 서늘하다.


아마도

그 봄의 기억 때문일 거다.


책 속에 있던 이름들,

도망치다 멈춘 발,

어떤 목소리의 마지막 떨림 같은 것.


나는 그 봄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이제는 안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그래서 투표하는 날이면

단지 종이에 도장 하나 찍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 작은 동그라미 안에

우리가 지켜야 할 말들이 있다.


다시는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다시는 귀를 막지 않게,

다시는 눈을 감지 않게.


권력이 아닌

사람을 바라보는 한 표.


그리고 그날을

잊지 않겠다는

작은 다짐.


오늘, 나는

그 기억 위에

조용히 꾹,

도장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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