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결 Mar 25. 2018

합리주의 비판에서 의학사 읽기에 이르기까지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 읽으며 의학사 살펴보기 기획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 초반부를 읽으며 지금의 현상은 현상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끝없는 시도와 실패가 반복된 결과물이란 생각을 깊게 했다. 쉽게 표현하면 모든 것은 점이 아닌 선 또는 흐름으로 존재하고,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렇다면 과거의 시도와 실패는 무엇에 기인하는가? 그 답은 전적으로 당대의 상황에 있을 것이다.  


과학적 합리주의는 짧은 시간동안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과학이라는 나무의 한 가지인 의학 또한 이와 흐름을 같이해 빠르게 발전했다. 현대 과학이 합리주의에 입각해 객관적 근거로 현상을 설명한지 불과 200년이 채 지나지 않았고, 의학이 같은 방식으로 설명력을 얻은지 한 세기가 채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빠르다'는 표현은 결코 과하지 않다. 수와 확률 그리고 통계에 의한 근거는 강한 설득력과 힘을 얻었고, 비과학적이고 관습적이던 것들에 '근거 없음'의 딱지를 붙여 결국 이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과연 합리주의는 완전한가? 과학적 합리주의는 과정과 결과에 대해선 비교적 무결하지만 근원적 합리를 보장하지 못한다. 과학이 과학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합리적 사유양식인 것과 같다. 합리성은 당 시대의 프레임으로 해석 가능한 것일 때에 비로소 얻어지는 성질이다. 따라서 현재 지식에 의한 미지 영역의 판단은 결코 합리적일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틀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은 '해석 불가능'한 것이지 '잘못'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합리주의의 맹점이자 구조적 한계는 이처럼 쉽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학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나타나 그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는게 바로 과학적 합리성이다. 헌데 다른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합리적인 것을 절대적인 진리이자 무소불위의 권위를 갖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물론 '완전한 합리'에 더 근접한 것은 분명히 존재하며, 선택의 순간에서 그것이 옳은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것도 그 자체로 완전할 수는 없다. 이를 인정하고 '진리'에 근접하려는 자세를 끊임없이 유지할 때 비로소 과학은 합리적 사고방식으로 자리할 수 있다. 이를 인정하지 않을 때의 피해는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돌아온다. BCS(유방보존술)이전의 RM(근치적 유방절제술)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는지 떠올려보라(<의학의 법칙들>, 싯다르타 무케르지).


과거의 비과학적인 의학도 분명 당시에는 합리적인, 혹은 당위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본질적으로 인간의 몸을 탐구하는 학문인 의학은 무엇이었고 어떤 의미였으며 어떻게 활용되고 변했을까? 이를 기술하는 의학의 역사는 우리 몸의 역사이인류의 역사이며,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의 역사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의학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모든 것의 역사를 되짚어본단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하게 됐다. 의과대학/의전원에서의 '의학사', '인문의학' 커리큘럼은 분명 의학교육 전문가들의 심도있는 논의를 통해 도출된 최상의 것이었겠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그 때 보고 들은게 크게 기억에 남아있질 않는다. 해서 단순히 한 권의 책을 연속적으로, 통째로 읽어가며 의학에 대한 통사적/통시적 관점을 얻고 이와 더불어 바른 의학, 미래 의학이 지향해야 할 지점들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