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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한식을 전파해보자

복숭아 넷.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식 소개하기

by INGDI 잉디

내가 생각하기에 미국은 먹을거리가 별로 없다. 피자, 햄버거, 치킨 윙, 타코 등 맛있는 음식들이 많기는 하지만 이런 음식들만 계속해서 먹긴 힘들다. 한국인이라면 한식을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몸이 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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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단골 메뉴 피자, 윙, 감자튀김, 그리고 충격적인 치즈스틱

미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몇 번 열심히 먹다 질려버린 나는 기숙사에서 밥을 해 먹기로 결심했다. 식사도 해결할 겸, 요리 실력도 키울 겸, 외식 비용도 줄일 겸(하지만 덕분에 장보기 비용이 늘었다).


기숙사 거실에 공용 주방이 있어서 요리를 하게 되면 룸메이트들이 내가 요리를 하는 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초반에는 내 식사 만을 위해서 요리를 했는데, 어느새 주방은 한식 홍보의 장이 되고 있었다.




1. 삼겹살, 쌈 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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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삼겹살을 굽는 자메이칸 룸메 타이라의 손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었던 나는 한인 마트에서 삼겹살을 사왔다. 절대 조용히 구울 수 없는 삼겹살은 구움과 동시에 룸메들의 이목을 끌었다. 아무래도 서양에선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문화가 없다 보니, 바로 그 자리에서 구워서 맛있는 고기를 즐길 수 있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한 번 먹을 때 제대로 즐기자는 마음에 고기, 김치, 마늘을 굽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심한 날엔 비빔면까지 만들었는데, 한 번 시식해보라고 권했을 때 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쌈 싸기란 타코 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삼겹살 쌈은 새로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 룸메 중 한 명은 한인 마트에서 삼겹살을 사와서 열심히 구워 먹었다.


2. 분식: 만두, 떡볶이, 짜파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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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맞아 다같이 만두를 빚었다.

기숙사에서 가장 많이 해 먹은 종류는 분식이었다. 빨리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분식 만한 것이 없었다. 만두의 시작은 냉동 만두였다. 내가 간식으로 만두를 먹고 있으면 룸메들에게 하나씩 권했고, 룸메들은 맛있게 잘 먹어주었다. 뜨겁지만 맛은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머무르는 기간에 설날이 겹쳐 있었다. 이 때 중국계 미국인 친구가 만두를 직접 빚자고 제안했고, 판이 커져 많은 친구들끼리 함께 동양의 문화를 체험하게 되었다. 만두가 익숙하지 않았던 한 미국인 룸메는 만두를 보더니 작은 뇌 같다고 했다. 만두를 처음 빚어보는 자메이칸 룸메는 우리가 만드는 것을 열심히 관찰하며 어떻게 그렇게 잘 만드느냐고 칭찬을 했다.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만두 빚기가 누군가에겐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라는 점이 재밌었다.


떡볶이도 친구들에게 많이 해 준 음식 중 하나다. 친구들이 매운 것을 잘 못 먹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먹어서 놀랐다. 심지어 어떤 미국인 친구는 불닭볶음면도 먹을 만하다고 할 정도였다. 친구들과 한식 파티를 할 때면 떡볶이는 단골 메뉴였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며 국뽕이 차오르던 때, 학교에서 기생충을 상영해주는 이벤트를 열었다. 기생충을 통해 더욱 유명해진 짜파구리는 우리뿐 아니라 친구들까지 자극해 버렸고, 우리는 한인 마트에서 재료를 구해왔다. 심지어 한인 마트에선 짜파게티와 너구리가 아예 같이 진열되어 있었다.

짜파구리를 가장 좋아하고 자주 찾는 친구는 일본인 친구였다. 입맛에 맞았는지 다음에 한인 마트에 같이 갈 때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같이 사더라.


3. 김밥

너무 신기했던 게, 한식을 본격적으로 전파하기 전에 외국인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입을 모아 얘기했던 음식이 김밥이었다. 내 미국인 룸메는 김 자체가 맛있단다. 어떻게 김밥을 알까 했더니, 예전에 있었던 한국인 친구가 김밥을 전파하고 간 모양이었다. 그 의견을 받아들여 우리는 마트에서 김밥에 필요한 각종 재료를 구입했고, 김밥 파티를 열고야 말았다.


김밥에 재료가 많이 필요해서 준비하기엔 번거롭기는 하지만, 다같이 북적이며 만들기엔 또 딱이었다. 한국인 친구들이 주축으로 김밥을 만들기 시작하면 외국인 친구들이 관찰을 하고, 그들이 따라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친구들이 김 위에 밥을 펼치고, 재료를 올리고, 말고, 자르는 과정을 재밌어했다.

KakaoTalk_20200822_215030925_11.jpg 왁자지껄 김밥 파티 현장.

참치 김밥과 삼겹살 김밥을 만들었는데, 역시나 인기는 삼겹살 김밥이었다. 아무리 입맛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외국인 친구들도 더 고급진 김밥을 아는 것이야.


4. 김치, 김치볶음밥

한식 하면 김치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인 친구들은 누구나 다 김치를 한 통씩 구비를 해 놓았는데, 그러다 보니 김치를 활용해서 만들 수 있는 기본적인 음식 중 하나인 김치볶음밥도 자주 해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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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친구들은 일단 밥을 잘 안 먹기도 하지만, 여러 재료를 함께 볶아서 하나의 음식으로 만든다는 것 자체도 익숙하지 않은 그들이었다. 하지만 밥이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한 룸메들은 햇반과 밥솥의 필요성을 점점 느끼고 있었다.


김치볶음밥은 룸메들의 식사를 쉽게 책임질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된 느낌이었다. 김치, 밥만 있으면 맛있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맛도 마음에 들었는지 룸메는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레시피를 습득했고, 심지어는 내가 떠나기 전날 나를 위해 김치볶음밥을 실제로 해주었다.

KakaoTalk_20200822_215030925_15.jpg 내가 떠나기 전 미국인 룸메 한나가 만든 김치볶음밥. 정녕 미국인이 만든 비주얼인가..


5. 컵밥, 컵라면

외국인 친구들에게 또 눈길을 끌었던 제품은 컵밥, 컵라면 같은 간편 식품 종류였다. 아시안 친구들에겐 익숙하지만 서양권 친구들에겐 꽤 혁신적인 아이템이었다. 생각을 해보니 1인 가구의 증가나 간편식을 선호하게 된 사회 현상으로 인해 탄생하기도 한 간편 제품들이, 서양 문화와는 맞닿아 있지 않아 덜 발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간편 식품은 종류도 많다. 친구들이 추천을 해달라고 하는데, 낙지 덮밥 맛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된장 비빔밥 맛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렇게 난감할 땐 매운가/맵지 않은가 로 나누고, 내 기준 맛있는 종류로 추천해줬다. 강된장 맛은 외국인에게 호불호가 충분히 갈릴 수 있었던 맛인데도 생각보다 잘 먹더라.


6. 디저트: 호떡, 과자류, 매실, 아침 햇살

호떡은 외국인 친구들에게 인기 폭발이었던 디저트였다. 팬케이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안에 달달한 꿀이 들어있는 것이 친구들에게 취향 저격이었던 모양이다. 한 번 호떡 맛을 본 친구들은 그 후로 한인 마트에 갔을 때 각자 한 봉지씩 사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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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으면 잘 쳐다보지도 않았던 음식들이, 외국에만 있으면 눈길이 간다. 한인 마트에서 가장 저렴했던

-깡 종류 과자들을 항상 사왔는데, 미국 과자들보다 확실히 덜 자극적인 맛이 친구들에게도 입맛에 맞아 보였다. 우리나라의 대표 음료 중 하나인 매실과 아침햇살은 친구들에게 또 새로운 맛의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미국에 있으면서 미국 음식보다 한식을 더 많이 먹고 돌아온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피자나 버거 같은 음식들은 가끔 먹어야 맛있는데, 매일 비슷한 음식을 먹으라고 하면 몸이 알아서 거부한다. 하지만 덕분에 열심히 요리를 하게 되었고, 많은 외국인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한식을 알릴 수 있어 의미 있었다. 친구들이 시식할 때 맛있어 해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본인이 식사할 때 한식을 직접 해먹고 장을 봐오는 것을 보면서 더 뿌듯했다. 어느 날 내 미국인 룸메가 밥+김치+고추 참치+김 조합으로 밥을 먹는 것을 봤는데 참 놀라우면서도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한식의 위상이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친구들이 모르는 한식이 넘친다. 한식 전도사로 파견 나가면 잘할 자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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