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다섯. 미국 대학교에서 창업 수업 듣기
나는 기업가정신 복수전공생이다. 창업엔 아직 생각이 없지만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 해외 대학의 수업을 마음껏 들어볼 수 있는 건 교환학생의 특권 아닌가. 약간의 용기와 도전 의식이 필요했지만 미국 대학교의 창업 전공 수업을 들어보고 싶었다. 학점 인정은 덤!
아무리 교환학생이라도 선수 사항이 필요한 수업은 들어가기 힘들었고, 기초 수업은 수강이 가능했다. 이 수업마저도 교수님+국제팀 담당자님과 수많은 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쉽지 않다 쉽지 않아.
과목명은 Entrepreneurial Thinking이었다. 말 그대로 기업가의 사고와 마인드를 가지고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해보는 수업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수업을 안 들어봐서 영어로 이걸 할 수 있을까 우려는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다시는 해볼 수 없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미국에선 어떤 방식으로 창업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수강신청을 늦게 하는 바람에 첫 수업을 부득이하게 듣지 못했고, 두 번째 수업부터 합류하게 되었다. 그래서 팀빌딩을 어떤 식으로 했는지 보지 못한 불상사가 생겨버렸다. 창업의 시작이자 꽃은 팀빌딩 아닌가… 수업에 갔더니 이미 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앱실론(우리나라로 치면 갑팀, 을팀, 정팀일 텐데 영어로는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이 기분 탓일까)으로 나뉘어 있었고, 나는 인원 공백이 생긴 델타 팀에 자동 투입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교수님께서는 역시나 수업 시작부터 내 자기소개를 시키셨다. 아마 첫 수업 때 모든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겠지. 나 포함 동양인이 2명이었던 수업 교실에서, 그것도 혼자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는 것은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눈 딱 감고 깔끔하게 말하고 끝내자는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이고..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고.. 스타트업 마케팅 인턴을 잠깐 했었고… 잘 부탁드린다고.
다행히 학생들이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눈치였다. 관심 있게 들어준 것이 나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심지어 마케팅 인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케터로 영입하면 되겠다!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있어서 당황. 그 정도는 아닌데 하하.
수업은 대부분 이론 영상 시청+팀 프로젝트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이론 영상 주제는 디자인 씽킹, 비즈니스 모델 세우기, 발표 피칭 등등 다양했다. 그런데 몽땅 영어다 보니 이해력과 집중력이 떨어졌던 건 사실.
팀 프로젝트 위주의 수업이다보니, 수업 시간 대부분 팀끼리 앉아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았다. 창업이라는 바운더리 안에 있는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입을 열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미국 대학생들과 내가 생각하는 수준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도 않아서 조금의 용기만 내면 내가 낸 아이디어도 우리의 프로젝트에 충분히 적어낼 수 있었다.
우리 팀의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그런데 내가 팀에 합류했을 때는 아쉽게도 BM이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였다. 가장 처음의 이야기부터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어쩌면 가장 머리 아픈 시간 중 하나를 겪지 않아도 됐었다는 것에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우리 팀과 다른 팀의 비즈니스 모델, 발표 피칭 이야기, 느낀 점 및 결과 등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이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확실한 건 미국의 고민과 한국의 고민은 다르다. 피피티는 한국인이 더 잘 만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