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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보려면 공부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복숭아 셋. 미국 대학교의 시험 문화

by INGDI 잉디

**본 내용은 필자가 다녔던 조지아 주립대(GSU)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주제에 대해 일반화할 수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아무리 교환학생이라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보다 부담은 훨씬 덜 하지만, 성적을 받기 위해선 시험을 봐야 한다. 1월 중순 무렵 학기를 시작한 미국 대학교도 2월 말-3월 초쯤 어김없이 중간고사 시즌이 다가왔다.


때는 GSU에서 들었던 강의 중 하나였던 HR 수업 시간이었다. 중간고사 일정이 다가오면서 교수님께서는 시험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사항과 출제 방식 등을 설명해 주셨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교수님께서 갑자기

Bring a scantron.
(scantron을 준비해오세요.)


이라고 말씀하셨다.



Sca... 뭐라고요? 듣자 하니 시험에 꼭 필요한 준비물 같았는데, 처음 듣는 단어라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손 들고 질문할 용기는 또 없었다(..) 다행히 교수님이 단어를 계속 반복해서 말씀하셔서, 발음을 기억해 두었다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사전에 검색해보았다.


검색 결과 Scantron은 OMR 카드였다. OMR 카드를 학생들 보고 준비해 오라고..?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OMR 카드를 학교에서 준비해주기 때문에, 시험을 보기 위해서 우리가 직접 OMR 카드를 사야 된다는 사실이 꽤 충격이었다. 심지어 대학교 다니면서는 OMR 카드를 써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스캔트론 충격(?)을 받기 얼마 전에 다른 한국인 친구가 나에게 Blue Book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 친구도 듣고 있는 수업에서 시험 볼 때 Blue Book을 준비해오라고 했다는데, 처음 듣는 용어라 친구도 나도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룸메이트가 학교 스토어에서 스캔트론을 팔고 있다고 얘기를 해줘서 시험 전날 스토어를 방문했다. 공부만 하면 되지 우리가 이런 것까지 돈 내고 사야 돼?라고 투덜거리면서.


스토어를 갔더니 아예 이렇게 Testing Supplies 코너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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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볼 때 필요한 각종 문구류부터 시작해서 내가 찾고 있던 스캔트론, 그리고 친구가 필요했던 블루북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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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북은 충격적이게도 서술형 시험지였다. 서술형 시험지를 준비해오라니….

물론 가격이 비싸지는 않았지만(스캔트론 가격은 약 1불.) 돈을 내야 시험을 볼 수 있다는 생각과 시키는 대로 구매를 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중간고사 기간에 4개의 시험을 봤는데, 이 중 3개는 스캔트론이 필요했고 1개만 시험지에 직접 시험을 봤다. 스캔트론으로 시험을 본 수업은 점수가 굉장히 빨리 나오는 단점 같은 장점이..


스캔트론을 들고 투덜거리며 시험을 보러 가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엔 없는 시험 문화를 또 알아간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내가 들었던 미국 대학교에서의 수업은 시험 볼 때 오픈북이나 오픈 노트를 꽤 많이 사용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오픈북 시험을 실시한다고 하면 ‘오픈북인 이유가 있을 거야. 책을 봐도 모를 만큼 어렵겠지’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내가 본 시험은 그렇지 않았다. 내용이 어디 있는 지만 잘 찾으면 답을 쉽게 고를 수 있게 출제되었다. 그러면 모든 학생들이 100점을 맞지 않을까?

교수님께서 말하시길 절대 그렇지 않다고. 오히려 학생들이 왜 전부 100점을 맞지 못하는지 궁금해하는 교수님이셨다.

20200225_091948.jpg 스캔트론과 오픈 노트의 시험 현장.


+미국 대학교는 평소에 공부를 많이 시킨다는 인식이 있다. 이것을 그대로 증명하듯이 거의 모든 수업에서 매주 퀴즈와 자잘한 과제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시험 기간 때마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처음부터 공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과 매주 신경 쓸 과제가 있다는 단점이 공존하는 시스템이었다.




미국에서 느꼈던 이들의 시험 문화는 익숙하면서 동시에 새로웠다.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이나 변함없었던 건 시험 기간 풍경이었다. 미국 대학교 학생들도 똑같이 시험에 스트레스 받고, 좋은 결과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도서관의 불은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부담이 덜한 교환학생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미국 학생들의 치열함이 보이듯이, 한국에서의 나도 누군가에겐 치열해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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