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튜브에 몸을 낀 채 발길질을 힘차게 하며 림이에게 갔다. 해안 경계선을 넘어가니 진짜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았고 물살이 빨라졌다. 림이 손을 잡았는데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속절없이 둥둥 떠내려 갔다. 이상하게 무섭지는 않았다. 그만큼 철이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 가려고 다시 힘을 내는데
삐삐~
안전요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다가왔다. 반가웠다. 안전요원이 우리 둘의 튜브를 줄로 연결하여 우리를 끌고 다시 해수욕장 해안가로 데리고 나왔다. 절대 경계선을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경고와 함께.
안전요원에게는 줄리와 혜랄이 신고한 것이었다. 제 친구들을 구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넷이 모여 안도의 숨을 쉬고 깔깔 웃었다. 그런데, 안도도 잠시!
어? 가방이 없어졌어!!
뭐라고?
거기 우리 돈 다 있는데?
파라솔도 빌리지 않고 커다란 우산 하나 펼쳐서 자리를 잡고 그 우산 밑에 림이가 가방을 뒀다. 그 가방에는 우리의 여행 회비 십만 원씩 모은 게 들어 있었는데 가방이 사라졌다. 세상에. 우리는 그렇게 거지가 되었다.
괜찮아, 우리 숙소에 먹을 거 많아.
맞아, 잔뜩 사놨어.
나 신용카드 있어. 급한 건 이거 쓰면 돼.
우리는 무서울 게 없는 스무 살, 최고의 낙천주의자였다. 물에 떠내려 가도, 돈을 잃어버려도 어떻게 그렇게 괜찮았었는지 지금 생각하니 참 신기하다. 지금의 나였다면 정말 괜찮았을까.
진짜 숙소에는 과자가 차고 넘쳤다. 친구들끼리 온 첫여름 여행. 장을 바리바리 보고 신났던 것이다. 여행을 정해만 놓고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었다. 여행 오기 며칠 전에 림이가 물었었다.
우리 계획 세워야 하지 않니?
계획은 무슨~ 가기만 하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거지.
나는 즉흥적인 사람이었다. 무계획이 내겐 계획이었다. 림이가 여행지에서 또 말했다.
정말, 모든 일이 다 일어나는구나.
사실 림이가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우리 중 가장 똑똑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돈을 맡겼는데 물에 떠내려간 것도 림이고 잃어버린 사람도 림이다, 싶었다. 그러나 그 우산 밑에 가방을 두는 건 우리가 모두 동의한 일이었고 물은 나도 같이 떠내려갔으니 할 말이 없었다.
끼니를 어떻게 때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카드를 썼던가? 그냥 과자를 먹었나? 과자를 먹었던 것 같다. 돈이 없으니 확실히 위축되긴 했었다. 강릉 최고 관광나이트를 가려고 했었는데 그것도 포기했다(나는 카드를 쓰자고 했는데 친구들이 말렸다). 다행히 돌아갈 차표는 각자 갖고 있었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지만 알차게 준비해 놨었던 것이다.
밤에 그냥 해변가에 넷이 쪼르르 앉아 별과 바다를 보고 있었다. 한 아이가~
누나 이것 좀 사 주세요! 저희 여행 경비가 없어요.
하며 야광봉인가를 팔았다.
어? 이 일 어떻게 구하니? 우리도 돈이 없는데?
우리는 꽤나 진지했다. 우리에게 물건을 팔려던 아이는 당황해하더니 뭐라 설명해 주지 않고 자리를 떴다. 우리는 웃고 이런 것도 재밌네~ 하며 또 바다와 별을 봤다.
부킹도 들어왔다.
넷이 오셨나여? 저희도 넷인데 같이 얘기도 하고 널면 어떻습네까.
사투리 쓰시는 분이 오셔서 말을 걸었다. 우리는 우리끼리 재밌다고 거절했다.
왜 아무것도 안 묵고 계신답니까.
안주와 술을 좀 주고 가셨다. 우린 감사히 받고 그걸 홀짝홀짝 먹으며 하염없이 바다를 보고 앉았었다. 또 다른 분들이 함께 놀자고 했다. 이번엔 서울 말씨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참내, 우리는 응했었다. 의대생들이었다. 남자 네 분과 함께 바닷가에 둥그렇게 앉아 게임하고 놀았다. 역시 안주와 술을 얻어먹었다.
그러곤 우리끼리 숙소로 돌아와 우리도 참 웃기다 하며 막 웃었다. 사람 가려 놀았다고. 서울깍쟁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에 또 웃었다.
생각해 보면 참 시작부터 용감한 여행이었다. 우린 주문진에 숙소를 예약해 놓고 주문진은 어르신들이 가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경포대에서 놀았다. 경포대에서 어떤 삐끼를 따라 이상한 봉고차를 타고 허름한 민박집에 도착했다.
속았던 것이다. 그 당시 일박에 오만 원이었던 것 같다. 역에서 아저씨들이 꼬셨고 우린 그걸 따라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것이다. 봉고에 탑승하고 나서야 손잡이도 떨어진 차의 허름한 상태를 인지하고 넷은 좀 겁을 먹었었다. 그러다 숙소에 도착했고 무사히 실제 민박집에 왔다는 사실에 우린 안도했다. 방은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방 청소를, 림이는 화장실 청소를 했다. 화장실 청소를 해 주는 림이가 너무 고맙고 든든했던 기억이 난다.
주문진 숙소 사장님께는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이 성수기에 예약을 해 놓고 안 오면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그냥 전화로 예약하던 시절이었다. 죄송합니다를 연신 남발하고 노쇼 고객은 경포대에 진을 쳤다. 그러다 물에 떠내려 가고, 돈을 도둑 맞고, 그렇게 2박 3일을 잘 보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나중에 림이에게 들은 얘기론 돈을 몽땅 잃어버려서 너무나 미안하고 난처한데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친구들이 신기했다고. 우린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았었다.
친구들과의 첫 여행은 지금도 종종 생각나서 아찔하면서도 웃음이 난다. 학생들한테도이야기해 줬다. 애들은 놀라워하며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는 식이다. 생각해 보면 봉고에 여러 얼룩이 있었다. 붉은 얼룩도 있어서 넷이 다 가방을 끌어안고 숨 죽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갓 성년이 된 어린아이들이었다. 이들과 함께했던 추억은 그것 외에도 너무나 많다. 그렇게 한없이 용감했던 시절이 그립다. 그리고 그렇게 용감해도 됐던 시절도 그립다. 지금은 용감해서도 안 되는 시절 같은 느낌이다.
이십 년도 더 지났는데 그때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렇게 생생한데 그렇게 오래전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다. 그 뒤로 수많은 여행의 추억이 켜켜이 쌓였음에도 이 첫 여행의 존재감은 언제나 크다. 우리의 철없던 여행을 나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