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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의 졸업

by 문영

“선생님, 저 한 번만 안아주세요.”

“그래”

J를 꼭 안고 고생했다, 축하한다 이야길 해 주었다. 울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눈 화장도 곱게 했다. 나는 울지 않을 것이기에.

예상은 빗나갔다. 아이들이 한 명씩 졸업 소감을 이야기할 때 나는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이 아이들과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상급 시작을 나와 함께한 아이들이었다. 4년을 온전히 같이 보낸 첫 제자들이었다.

짝사랑이었다. 마음을 주다가 곁을 내주지 않는 아이들에게 상처받았고 마음을 닫았다가 의외로 전해받은 따뜻함에 감동했던, 매우 복잡한 감정을 나눈 반이었다. 이 반 학생들 덕분에 깨달았다. 교사는 사랑하는 사람인 것을. 사랑받으려 하지 않으리라. 나는 주는 사람이다.


그때부터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었고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주는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기도 했었다. 내 수업에 유독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무력했고 그럴수록 나는 더 오버했다. 아이들이 가라앉을수록 나는 이들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이 반의 한 학생에게 “아휴, 선생님 원맨쇼 좀 그만하세요.”라는 소리까지 듣고 말았다.


1~3기 애들은 문학사 수업을 하면서 끈끈해졌고 졸업프로젝트 보고서 쓰기 수업을 하면서 친밀해졌었다. 그런데 4기인 이 아이들은 달랐다. 언제나 적당한 선에서 자기 할 일만 했으며 결코 끈끈해지거나 친밀해지지 못했다. 무언가 이용당하는 기분이기도 했다. 필요한 정보만 쏙쏙 빼내는 느낌. 그래서 나는 자신 있었다. 울지 않을 것이라고.


이제 보호막이 없는 세상으로 나갈 아이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짠했다. 이 학교가 너무 좋았다고 행복했다고 울먹이며 말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더 많이 사랑해 줄걸. 얘네가 아닌 나의 더 아픈 손가락만 챙겼던 거 같아 미안했다.


교사는 사랑을 주는 사람인데 나는 이 아이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었는가. 열심히 가르쳤으나 마음 한편엔 담을 쌓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그러면서 그 핑계를 아이들에게 대지 않았었나. 그래도 마지막으로 찐한 사랑을 전하고자 한 명 한 명을 꼭 안아주며 앞날을 응원했다. 그러다 J 하고는 악수만 했던 것이다.


“선생님, 저 한 번만 안아주세요.”

어떤 감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색했고 안 안아 줘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끝이 좋지 않았었다. 나는 J의 평가서에 결국 좋은 말을 쓰지 못했었다. 모든 과제를 하지 않아놓고 했다고 거짓말했으며 눈앞에 앉혀 놓고 시켰을 때도 적당히 꾀를 부렸던 아이. 그러다가 내게 눈물 쏙 빠지게 혼났다. 그게 J와 나의 마지막이었다.

고생했다고 안아주는데 J가 있는 힘껏 나를 안고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나는 이 아이에게 어떤 교사로 기억될까.


교사라는 자리가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사랑만 해야 하는데 사랑의 크기가 다르면 안 될 거 같은데 사랑의 크기는 너무나 다르고 자꾸 어려운 학생이 생긴다.


그래도 아직은 이 자리에 있다. 있는 동안 후회 없는 사랑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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