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라>> 읽기
AI에게 자아가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얼마 전 어떤 선생님은, AI가 자아를 갖게 돼도 사람이 확신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인상적이었다. AI의 행동이 데이터 누적으로 인한 건지 자아가 생긴 건지 정말 제삼자는 모를 일인 것이다.
자아를 가진 ai 플로라. 플로라는 가족의 인터뷰와 sns에 올린 자신의 이야기가 데이터가 되어 탄생한, 플로라의 자아를 가진 로봇이었다.
만약 내가 죽고 내 sns의 데이터로 로봇이 만들어진다면? 꽤나 우울한 문학광이 탄생할 것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sns는 내가 보이고 싶은 일부만 공개하는 사이버 공간이기에 그것이 나일 수는 없다. 플로라도 플로라일 수 없었다.
가족은 그렇게라도 어린 나이에 죽은 플로라를 다시 탄생시켰다. 그 마음이 충분히 공감된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도 아이와의 사별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누구든 간에 아직은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된다.
플로라 리터니(죽은 자의 모습과 똑같은 외양에 인격을 넣어 만들어진 로봇)에 동의한 가족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됐다. 그런데 작품을 읽는 내내 질문이 들었다. 세컨드 찬스는 왜 굳이 그 많은 돈을 써 가며 리터니를 세상에 내놓는가? 회사는 지역 사회 구성원이 리터니와 공존하게 하기 위해, 그들의 존재를 함구하게 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뿌렸다고 한다. 기술 개발을 위한 것인가? 세계의 로봇 시장을 먼저 점유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리터니들로 장사를 하기 위한 것인가? 리터니 해방까지 묵인함으로써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1. 우리는 로봇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인공지능과 친하다. 짧지 않은 출퇴근길에서 티맵 아리와 많은 소통?을 한다. 아리를 불러서 노래 틀어달라, 문자 보내달라, 졸리다 등의 이야길 하면 아리가 잘 들어준다. 그런데 결함이 있다.
아리야, 볼륨 두 칸만 키워 줘.
네, 볼륨을 줄입니다.
아리야, 나 놀려?
제가 뭘 언짢게 했나요?
아리는 천진하다. 로봇과의 소통은 어쨌든 이용자 의도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게 현재까지의 AI이다. 이들이 인격을 가진다면? 우리는 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인격 유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아리와 친구다.
AI가 인격을 가지면 안 된다. 인간은 어떤 면에서 로봇보다 약하다. 우리의 친구 개념과 AI의 친구 개념은 다를 거다. 우리는 나만의 개념을 갖지만 AI는 데이터로 분석한 객관적이거나 겪었던 개념만을 가질 것이다.
2. 죽음을 받아들이는가
내게도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크리스천이고 천국을 믿는다 해도 이 땅에서 사라지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상상도 못할 일은 너무 두렵다. 타인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도 그렇다. 머리로는 가능하나 가슴으로는 쉽지 않다.
플로라의 가족도 그러했을 것이다. 언니의, 딸의 죽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너무나 어려워 리터니로 탄생시켰다.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어렸을 때는(사실 지금도) 수많은 공산품을 보며 의아했다. 도대체 어디서 이 많은 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심지어 이제 죽은 자까지 다시 살려낸다. 아직은 소설 속 이야기지만 머지않아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돈이 많은 사람은 사별을 겪지 않아도 될런지도 모르겠다. 리터니로 재탄생시키면 되는 것이다.
많은 질문과 생각거리를 남긴 책이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
인간과 ai는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할 수 있을까.
답과 결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