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건조하게 받으려 했다. 4년 만의 통화였다. 무엇인지 모를 감정이 울컥 복받쳐 왔다.
"***언니 어쩜 그럴 수 있어? 카톡 사진 봤어? 너희 가족한테 너무하는 거 아냐?" 친구가 분개해서 내게 전화를 했다. 우리 남매랑 매우 친한, 한 교회서 가족같이 지내던 친구였다. "나 못 봤는데.. 뭔데 그래? 함 볼게." 카톡 프사에는 그녀의 가족사진이 올라와 있었고 나는 그 사진을 보면서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너무나 단란한 가족사진. 오빠는 애초부터 없던 사람인 듯했다. "언니, 정말 죄송합니디만 프사 가족사진만 내려 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부모님께 시간을 좀 주세요." 메시지를 보냈고 답은 오지 않았다. 부모님은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 사진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언니의 재혼 소식으로 엄마가 매일 우시던 시기이긴 했다. 나는 쿨하지 못했고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언니가 나의 메시지에 매우 불쾌해서 나를 욕했다는 소식을 건너 들었다. 나는 그 후로 마음을 닫았다. 언니가 재혼하기까지 우리 사이에는 담이 쌓이고 있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지 못한 채 서로에 대한 서운함만 키웠다. 그러다 이제 진짜 남이 되었다.
내게는 그녀가 남이었다. 내게 그녀가 남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차고 넘쳤지만 팩트는. 그녀가. 다른 곳에 호적을 올렸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손주들에 대한 애착이 강하셨고 그래서 그녀와 남이 되지 못하셨다. 여전히 왕래를 하신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조카들은 '진짜 친할머니 댁'에 왔고 그로 인해 그녀는 세상에 둘도 없는 효부가 되었다. 엄마는 내게 그만 마음을 풀고 연락을 하고 지내랜다. 나는 됐다고 했다. 남인데 뭣하러.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오빠가 너무나 좋아했던 사람이었고 내게 참 잘해주는 새언니였다. 늘 궁금했다. 왜케 내게 잘하지? 오빠가 떠나고 우리의 관계는 삐걱댔다. 언니는 유세를 떨고 있었고 엄마 아빠는 죄인처럼 쩔쩔매셨다. 오빠의 아이들을 본인이 키운다는 유세.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얼마나 그 꼴이 기가 막혔으면 나는 진지하게 '시어머니'께 여쭤보기까지 했었다. 아들의 죽음이 부모의 책임이 될 수 있냐고. 어머니는 말도 안 된다 하셨다. 정말 언니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건강하던 오빠였다. 유전병도 아니었다.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부모님이 죄인이 되셨다.
"아이들을 잘 키워주니 고맙지..."
엄마의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 언니 애들이야. 오빠가 데리고 들어온 아이들이 아니라고. 언니는 친엄마라고!!!!" 친손주, 친손주, 친손주!!!! 그저 친손주. 죽은 아들. 오빠가 살아 있을 땐 아들뿐이던 엄마가 아들이 떠나니 친손주에게 더한 사랑과 집착을 보이셨다. 진저리가 났다. 이 상황이.
훗날.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그때의 언니가 제정신이 아니었겠구나. 이해했다. 우리 모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게 내가 언니를 이해한 방법이었다. 그뿐, 더 이상 교류를 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나는 그녀의 아가씨가 아니다. 나는 지쳐 있었다. 오빠가 없는 가족들의 세상에.
몇 년 만에 들은 목소리. 우린 '한마디'로 서로의 목소리를 알아봤다.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한때는 가족이었던 사람. 나의 구 새언니. 나의 조카들의 엄마. 나의 부모님의 옛 며느리자 이웃사촌...
오빠가 바라는 건 무엇일까. 하늘에서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아직도 그렇게 그녀가 끔찍하게 좋을까. 그렇다면 오빠야, 미안해. 내가. 그녀를 가족으로 생각할 여유가 없어.
나는 더 이상 그녀의 '아가씨'가 아니다. 시간이 너무나 빠르다. 오빠가 떠난 지 7년.. 언니가 재혼한 지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