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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Aug 22. 2023

이별하지 못했다


어딘가를 갔다가 집에 가는 길. 문득 림이랑 대화를 하고 싶었다. 8개월 정도 연락 없이 지낸 게 생각났다. 8개월. 오빠를 보내고 나는 같이 친했던 사람하고 연락하고 지내지 않았다. 아이 앞에서 울 수 없었기에.


"잘 지내?"

"야, 어디야. 당장 우리 집으로 와."


림이네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그러다 아이랑 남편이 너무 배고파했고 우리는 중간에 내려서 유명한 설렁탕 집에 들렀다.


"꿍이가 배고파해서 밥 좀 먹고 갈게."

"우리 집에 맛있는 거 많은데! 그냥 오지?"

"난 그러고 싶었는데 아이랑 남편 때문에."


뽀얀 도가니탕을 열심히 먹는데, 수저에 갑자기 통통한 날벌레가 건져졌다. 비위가 상했다. 직원이 요즘 얘네가 자꾸 들어간다며 새 국으로 바꿔 줬다. 찝찝해하며 다시 먹기 시작. 몇 분이나 지났을까. 직원이 오더니 취식 시간이 끝났다고 나가란다. 어이가 없었다. 둘러보니 웨이팅이 어마어마했다. 남편이 항의하는데  꿍이가,


엄마! 나도 벌레!


꿍이의 수저에도 통통한 벌레가 담겨 있었다.

직원이 당황해하며,


손님, 저희가 돈 안 받을게요. 얼른 가세요.


마치 짜증스럽다는 듯이, 우리가 진상 손님인 것처럼, 선심 쓰듯이 돈을 안 받겠단다. 이게 맞나? 우리 셋은 맘 상한 채 식당을 나왔다.




그러고는 잠이 깼다. 비몽사몽 생각했다. 근데 왜 요즘 림이랑 연락을 안 했지? 아... 림도 떠났지.. 눈물이 핑 돈다. 이 무슨 꿈이란 말인가.

꿈속은 오빠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지금은 림도 세상을 떠난 지 일 년이 넘었다.

어제 친정에서 뵌 부모님의 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 이런 꿈을 꿨나. 아기였던 꿍이가 어엿한 중학생이 됐고 부모님은 부쩍 나이 드셨다. 엄마는 꿍이를 보며,


"아직 사춘기 안 지났지?"

"아휴, 한참 남았죠." 

"그래도 잘 지나가고 있네. 이쁘게."

"얼마나 진상이어야 안 예쁜 거야?"

"니 오빠 사춘기 때 어땠는지 기억 안 나? 말 마. 나는 그때 생각하면 우리 손자 사춘기가 걱정돼."


이상하다. 사춘기는 내가 징하게 보냈었다. 오빠는 방문 닫고 안 나올 뿐이었고 나는 방문은커녕 집에 들어가질 않았었다(그렇다고 외박이나 가출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학원과 독서실을 핑계로 늘 친구들과 있었다). 엄마랑 마주치기만 하면 싸웠다. 그런데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내가 엄마한테 오빠가 짜증 낸다고 일렀고 엄마는 사춘기라서 그렇다고 너도 사춘기 되면 그럴 거라고 했던 것이다. 오빠랑 한 살 차이로, 그때 나도 이미 사춘기여서 엄마의 말이 의아했었다.


어제도 토는 달지 않았지만 내 사춘기가 더했는데 왜 오빠의 사춘기를 얘기할까. 궁금했다. 엄마의 모든 기억이 오빠로 가득 찬 듯 하다. 엄마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오빠를 느꼈다. 또 무슨 대화 중에 조마조마 해졌더랬다. 아 거기, 림이랑 갔던 곳. 엄마가 림이 얘기하시면 어떡하지? 불안한 중에 엄마랑 눈이 마주쳤고 다행히 엄마는 더 말씀하시지 않았다.


꿍이에게 림이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사고여서 차마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요즘도 종종 림이 이모를 찾는다. 왜 연락이 안 되냐 한다. 이민 갔다고 둘러댔으나 해외에 있다고 톡이 안 되는 건 아니라고 갸우뚱한다. 진실을 알려야 할 거 같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미 많이 컸는데 내겐 아직 외삼촌의 죽음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고 많이 불안해했던 꼬마라 더 그렇다. 그냥 꿍이에게서 서서히 림이가 잊혀지길 바랐다.


슬픔은 무뎌져도  그리움은 짙어진다. 너무나 생생한 꿈에 눈물이 난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대학생 때 문득,  친한 사람이 죽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었다. 지금 나는 그걸 궁금해했다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낀다. 이별하지 않고 싶다. 나는 오빠랑 림이와 이별하지 못했다. 그들이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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