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영 Aug 25. 2023

개학 스트레스

어리석은 시작

개학 스트레스는 학생만의 것이 아니다. 교사도 적잖이 받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사람의 마음이 웃긴 게 비정규직일 때는 그저, 할 수 있음이 감사했다. 개학 스트레스가 뭔 말인가.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원래 내 자리(사실 원래란 없다는 것, 알면서도 교만이다)라는 생각 때문인가. 개학이 두렵다.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다. 아이들 노트 첨삭도, 새 학기 수업 준비도 내 공부도. 무엇 하나 마무리가 된 게 없다.

사실은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에 간식의 유혹을 떨치던 중이었다. 그런데, 집에 혼자 있는 마지막 날. 아이가 오기 전에 누릴 수 있는 자유. 이 두 개가 나를 흔들었고, 거기에 개학 스트레스가 더해져 맥주에 쫄면을 꺼냈다. 생라면 안주에 모닝 맥주가 나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와자작. 생 쫄면을 씻는 순간,  이가 나가는 줄 알았다. 다시 맥주를 냉동실에 넣고 쫄면을 끓였다. 냉동실에 넣다 발견한 돼지 껍데기. 아, 이거 남편은 안 좋아하지?

또다시 합리화하며 에어프라이어로 껍데기도 구웠다. 이제 완성!!!!

쫄면에 돼지껍데기를 함께 비볐다.

그런데... 그닥 맛이 없다. 나는 굳이 이 이른 시간에 왜 이걸 먹고자 했을까. 맥주를 마셨으니 운전도 불가다. 다이어트도 날아갔다. 마지막 날을 대차게 말아먹은 느낌이다.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며... 무엇도 혼자는 맛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마지막 날, 차라리 누군가와 밥이라도 먹을 걸. 할 게 많다는 생각에 그러지 못했으면서 굳이 혼자 시간을 써 안주를 만들어 모닝 술을 마시며 결국 할일을 못했다는 게 너무 웃기다. 그렇게 어리석은, 하루의 시작이다.


책상을 정리하고 첨삭할 노트를 폈다. 어리석음은 여기까지. 이제 할 일을 하자. 스트레스를 없애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늘, 이 순간, 나는 받아들이는 중이다.


방학 마지막 날이고, 할 일을 해야 하며, 혼술은 맛없다는 걸.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