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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Oct 25. 2023

함께 걷기

호흡을 공유하다

이제 숨을 크게 쉬며

자, 오른다

힘차게 차고 나가자

헉헉

이제 속도를 늦추고

다시 시작

오늘은 있잖아, 이랬고 저랬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그와 함께 공원을 걷는다. 몇 년째 같은 곳을 걷는데 지루하지 않다. 우리는 그 시간의 모든 걸 공유한다.


언젠가 밤 산책에서는 너무도 예쁘고 탐스러운 튤립을 만났다. 낮에 활짝 폈던 꽃이 이 밤에는 입을 꼭 다물고 잔다. 달빛을 한껏 머금은 채로.

밤에 만난 튤립

빨간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여보, 저것 좀 봐. 꼭 탕후루 같아."

"탕후루? ㅋㅋ 진짜 먹음직스럽긴 하네."

우리는 같이 웃으며 사진을 찍고 걸었다. 밤공기가 퍼뜨리는 냄새가 참 좋다.


자, 이제 또 오르막! 다시 힘내자!


그의 말에 팔을 세차게 흔들며 헉, 헉, 숨을 내쉬며 걷는다. 오로지 나의 호흡과 심장 뛰는 소리에 집중한다. 성공! 잘 올라왔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다시 내리막길. 흙을 밟는 촉감이 좋다. 걸을 때마다 통 통 켜지는 불빛도 좋다. 신난다. 마치 도깨비의 한 장면 같아. 나는 말하고 그는 웃는다. 그리고 어김없이 사진을 찍는다. 한 곳의 사진을 주기적으로 찍으며 시간의 흐름을 담는다. 우리가 함께 호흡한 그 시간을.




그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걷고 싶었다. 탁 트인 곳을 걸으며 그와 떠들고 싶었다.


"우리  다음 주엔 우리 집에 주차해 놓고 극장까지 걸어요."


그는 의아해했으나 받아들였고 우리는 다음 데이트에서 약속대로  약 한 시간을 걸었다. 도시의 길은 그 길대로 매력이 있다. 수많은 차도를 지나 아기자기한 상점과 집들이 있는 골목을 지나 극장에 도착하기까지, 그리고 다시 극장에서 돌아오기까지, 강아지도 자전거도 피하며 손도 잡고 머플러도 둘러주고. 꽤나 낭만적이었다. 걸을 땐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오 분이면 끝날 차 안에서의 호흡을 한 시간 남짓 늘이며 거리의 활기를, 사람의 생기를 공유했다. 그리고 수많은 이야길 나눴다. 그는 훗날 그때의 도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했던 순간이 주는 상쾌함을 느꼈으리라. 내가 그랬듯.




아이도 엄마, 아빠와 걷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가 한창 포켓몬 고에 빠졌을 땐 오매불망 엄마 퇴근 시간만 바라봤고 퇴근한 엄마와 한 시간 이상을 걸으며 포켓몬을 사냥했다.


"꿍이야, 좋아?"

"응, 난 이때가 제일 행복해."


해맑게 웃는 아이와 세상을 다 가진 마음으로 공원을 누볐다. 우린 꽃내음과 흙향기를 맡으며 밟으며 그 자연을 공유했었더랬다.




탕후루를 지나 만나는 하트 분수. 우리는 하트 분수대를 돌며 여기서 꿍이가 물벼락을 맞았더랬지, 그때 진짜 귀여웠는데. 한바탕 웃었다.


다시, 흙을 밟는다. 흙을 밟는 촉감이 좋다. 걸으며 나누는 삶의 이야기가 좋다. 모든 게 변하는 세상인데 계절 따라 어김없는 모습으로 맞아주는 자연이 좋다.


우리는 집에 도착하여 마주 보고 웃는다.


오늘도, 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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