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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Oct 31. 2023

밖에서는 로봇 태권 브이

"숨소리가 안 좋네요. 검사해 볼게요."

"네."     


과잉진료라 생각했다. 뜬금없이 웬 폐 검사란 말인가. 그러나 이렇다 항의하고 물을 기운이 없어서 순순히 따랐다. 시키는 대로 힘껏 깔때기를 불었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그렇게 폐렴 환자가 되었다.     

기가 막혔다. 코로나도, 독감도 아니고 바로 폐렴? 뭔가 단계를 다 건너뛴 느낌이다.     


"우리 선생님, 깨끗하게 낫게 해 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시고 약 드시고 푹 쉬시다 월요일에 봬요. 꼭 푹 쉬셔야 합니다."

     

비현실적으로 친절하신 의사 선생님은 오늘도 한결같이 상냥하시다. 의사 선생님의 토닥임에 미소로 인사드리고 나왔다. 사람은 진단을 받는 순간, 환자가 된다. 급격한 피로를 느끼며 운전조차 하기 싫었다. 식은땀이 주룩 나고 눈을 뜨고 있기가 쉽지 않다. 병원과 약국, 카페에서 주차시간을 다 받고 차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푸른 잔디밭 위에서 건반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의 환호에 덩달아 신나 부서져라 힘껏 키보드를 두들겨댔다. 근 20년 만에 치는 피아노는 서툰 실력에도 아름다운 소리를 내주며 기타와 젬베, 그리고 노랫소리와 조화를 이루었다. 고마웠다. 함께 갈 수 있음이. 부족한 실력에도 합주에 낄 수 있음이.     




정말 하룻밤 꿈같았다. 누군가 앞에서 악기를 연주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눈을 뜨고 다시 떠올려도 신기한 일이었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이 아득하게 느껴지면서도 얼마나 강렬했던지 잠깐의 눈붙임 속에서 하나의 영상으로 흘러갔다.

    

밖에서는 로봇 태권 브이.     


에너지의 삼백 퍼센트를 썼을 것이다. 아이들의 축제를 도왔고 축하 공연 준비를 했고 신나게 연주한 후 바로 여행을 떠났다. 체력이나 면역이 좋지 않다. 개운함이 무엇인지 모르며 피로는 기본값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아플 만했어.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향했다. 한 무더기의 약이 나를 낫게 해 줄 것이다.      


한숨 자고 점심을 먹고 약을 먹고 두 숨 잤다.

저녁을 먹고 약을 먹고 세 숨 자려다 남편과 집을 나섰다. 금일부터 사흘간 진행되는 성경 통독 사경회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괜찮냐는 남편의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하고 조수석에서 눈을 붙였다. 약발이 듣기를 바라며.


나는, 쉬는 법을 모른다.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 속 한 인물인 수이는 다치면서까지 운동을 했고 재활을 하고도 운동을 했고 결국 운동을 못 하게 되면서 자동차 정비일을 배웠는데 그때도 쉬는 법이 없었다. 수이의 애인인 이경은 그런 수이를 보며 ‘하루를 최대치로 산다’고 했다. 이 표현이 강한 인상을 주었다. 나도. 어쩌면. 수이처럼. ‘하루를 최대치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침을 좀 하긴 했으나,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통독 사경회를 완주하였다. 뿌듯함을 느끼며 침대에 누웠다. 다시 잠이 쏟아지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밖에서는 로봇 태권 브이     


집에서는 늘 골골대는 내게 오빠가 붙여 준 싸이월드 일촌평이었다. 나는 자주, 정말, 골골거렸다. 그러나 몸이 아파서 못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죽기보다도 싫어했다. 이상하게 그 점이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다. 아쉬운 소리라고 생각했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었다. 그러면 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골골골골 대다가 밖에 나가서는 아픈 내색 없이 날아다녔다. 그렇게 나는 오빠 말대로 밖에서는 로봇 태권 브이였다.   

   

나는 결국 밖에서만 로봇 태권 브이였다. 식은땀이 나고 목이 아프고 숨이 차다. 가래가 끓고 기침이 난다. 한 무더기의 약을 삼켰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려고 한다. 포근한 이불의 감촉이 좋다.   

   

또 한바탕 앓고 나면, 더 강한 로봇 태권 브이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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