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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Mar 02. 2024

오늘도 잘 살았다

목감기 투병

목이 너무 아프다. 저 깊숙한 곳에 상처가 난 기분이다. 침 삼키기가 쉽지 않다. 

새벽 다섯 시. 

물 한 잔 마시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밥을 짓기 위해 쌀을 펐다. 온몸이 쑤신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저 이불속에 있고 싶을 뿐이다.  오늘의 일정을 생각해 본다. 회의가 있는 날. 아이는 아직 개학 전. 쌀을 씻고 오징어를 데치고 에어프라이어로 떡갈비를 구웠다. 밑반찬까지 대충 가족의 끼니는 챙긴 듯하다. 나도 약을 먹기 위해 아침을 차리는데 눈물이 난다. 어찌할 줄 모를 때 나는 운다. 너무 몸이 아파 신음소리를 내며 열을 쟀다.

에라이. 열이 없다. 이렇게 아픈데 말이다.


목감기 상비약을 먹고 운전대를 잡았다. 이제 시작이다. 졸음과의 사투. 아직 밖은 어둡다. 앞 차의 불빛이 어른어른 번진다. 집중을 하고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볼을 때린다. 춥다. 기침이 난다. 목이 찢어질 거 같다. 도착해서 시동을 끄고 엎드려 눈을 붙였다. 눈의 피로가 모든 걸 더 힘들게 하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의 얼굴도 다 지쳐 보인다.


"여러분, 저도 오늘 몸이 안 좋은데 여러분도 다 몸이 안 좋아요?"

"ㅎㅎㅎㅎ"

"너무 힘들어 보여. 우리 기지개 한 번 키고 시작할까요?"


아침 여덟 시, 우리는 수업을 시작했다. 목이 너무 아파서 말을 못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수업을 하다 보니 몸이 풀리는 기분이다. 작품을 읽고 느낀 점이 있을까? 저는 이러이러했습니다. 어허 다른 친구들은 어땠나? 무거운 작품의 무거운 감상을 나누며 우리는 수업을 이어간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그때 심정은 어땠을까.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붙잡고 있다. 진지하게 답하고 토의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좋다. 




병원 다녀오겠습니다.


함께 실을 쓰는 선생님들께 알리고 공강 시간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나의 근무지 근처 병원은 언제나 내 기록이 쌓인다. 왜 이렇게 자주 아픈지 속상하고 민망할 따름이다.


"목이 너무 아파요."

"굉장히 많이 부으셨네요."


목이 굉장히 많이 부었다는 그 간단한 진단과 함께 한아름의 약을 받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이미 너무 지쳤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첨삭해야 하는 아이들의 글도 보고 남은 수업준비도 하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 점심을 먹는데 모두 조퇴를 권한다. 다행이다. 이런 동료들이 있어서. 별 맛을 느끼지 못하며 꾸역꾸역 밥을 먹고 약을 먹고 눈을 붙였다. 잠시라도 쉬고 싶었다.




"선생님! 저 포*칩 있어요!!!"

"저는 오*자 있어요!!! 저희 이거 드릴게요, 오늘 수다 떨어요."


7교시, 학급에 들어갔더니 애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조르기 시작한다. 나도 통증과 약 기운으로 몸이 말이 아니라 애들의 간절함을 핑계 삼고 싶었다.


"그럼, 포*칩 먹으면서 수다 떨면 돼?"

"네네!!"

"무슨 얘길 하자고ㅋㅋㅋ"


만 이 년을 함께한 아이들이다. 이미 내 스토리는 고갈됐다. 요즘 겪는 일들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아이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리 그냥 게임해요!! 얘들아 홍삼게임 할까?"

"마피아 하자!!"

"저희 게임해요!!"


"그럼, 난 포*칩 먹으면서 구경할게."


"우와~~~~  좋아요!!!"


귀여운 녀석들. 그래, 덕분에 나도 좀 쉬자고 혼자 생각하며 바라봤다.


"선생님 저희 마피아 할 거예요~~ 같이 해요!"

"마피아? 흠... 마피아면 내가 또 빠질 수 없지!!"


과자를 챙겨서 아이들의 원에 끼었다. 역할을 뽑기로 정하고 게임을 시작하며 과자봉지 위를 뜯는데... 세상에 밑이 터지면서 과자 몇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와하하하하"

"선생님 괜찮아요. 저희 바닥 엄청 열심히 닦았어요."

"삼 초 안에 주우면 돼요."


A는 과자를 주워 먹고 다른 애들은 배꼽을 잡고 웃는다. 나도, 실컷, 웃으며 게임에 동참했다. 나는 경찰을 뽑고 맹활약을 하는데 아이들은 나를 의심하지도, 죽이지도 않는다.


"아니, 근데 얘들아. 나 마피아 아니긴 한데 왜 아무도 의심도 안 해? ㅋㅋㅋㅋ"


애들은 또 웃으며,


"선생님 의심하면 숙제 내주실 거 같아요!!!"


한다. 


"나 그렇게 쪼잔한 사람 아냐! 뒤끝이 좀 있긴 하지만"


애들은 또 웃는다. 그렇게 마피아 한 게임을 마치니 십오 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얘들아~ 우리 임화 시 낭송할까?


오늘 수업 예정이었던 시 낭송 제안을 마음에도 없이 했다.


"안 돼요!!! 바니바니 해요!!"


이구동성. 나는 뒤로 빠져서 반 아이들이 노는 양을 바라봤다. 예쁘다. 귀하다. 이렇게 귀한 아이들이다.


"나도 하자!!!"


다시  아이들 속으로 들어갔다가 처참하게 걸렸고 인디언 밥을 맞으며 게임이 끝났다.


"선생님!! 쟤는 일어나서 때렸어요!!!"

"밟은 건 아니지?"

"아니에요~ 아니에요!!!"


하하 호호 많이도 웃었다. 별일도 아닌데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그렇게 웃게 된다. 아이들에게 인디언밥을 맞는데 몸의 찌뿌둥함이 풀리는 느낌까지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건 참 좋다.






세계를 넘어 또 다른 세계로 온 느낌이다. 다시 몸은 천근만근이고 정신은 몽롱하다. 약기운으로 목 통증은 잡힌 것 같다. 저녁 약까지 먹고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때로는 함께라는 것만으로도 힘을 보탤 수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나의 역할을 다 했다.




퇴근길에 여러 생각이 든다. 다시 눈물이 핑 돈다.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나는 종종 운다. 내 일을 사랑하지만 너무 버겁다. 역량 부족.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한데 힘이 부친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약은 듣고 있고 심해지지 않았다. 즐겁기도 했다. 그런데도 눈물이 난다.

주차를 마치니 온몸이 떨린다. 긴장이 다 풀렸다. 오한이 난다. 


따뜻한 물로 씻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다행이다, 내일은 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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