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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샘 Dec 26. 2023

[연재] 3화 그래. 몰라서야. 아직 잘 몰라서.

행복이의 조심스러운 사회화의 시작

"행복이 잠깐 나와 볼래?"

"왜요?"

"행복아, 선생님이 부르면 "왜요?"가 아니고 "네"하는 거야. 행복이 잠깐 나와봐."

"네."

내가 행복이에게 알려준 첫 번째 지도였다.

그 이후로 행복이는 더 자주 "왜요?"대신에 "네"를 했다. 그리고 행복이가 "왜요?" 대신 "네"를 할 때면 언제나 나는 놀랍게 칭찬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선생님을 존중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행복이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장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원재료, 순수 결정체 그 자체였다.

행복이는 자신이 재미있고 좋아하는 수업을 할 때면 의욕이 넘쳤다. 발표하겠다고 손을 들고, 시키지 않으면 화를 냈다. 하고 싶은 욕구가 클수록 화의 강도도 컸다. 하지만, 그 화에 공격성은 크게 없음을 알게 되었다.

평소 수업시간엔 책도 펴지 않은 채였다. 짝이 책을 펴는 것을 알려주면 오히려 화를 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발표 시간이 아닌데도 계속해서 손을 들고 있었다.

"행복아, 발표할 때 네가 손을 든다고 선생님이 항상 너를 시키는 건 아니야. 다른 친구를 시킬 수도 있어."

"그리고 선생님이 말하고 있을 땐 손을 들지 않는 거야."

거듭 알려주고 설명해 주었다. 행복이는 그렇게 아주 조금씩 사회화되고 있었다.


체육시간엔 특히 어려움을 보였다.

한 번은 축구를 하다가 행복이가 공에 맞았다. 평소에 아이들은 행복이의 예민함을 알고 조심하는 편인데, 이번엔 피해 가지 못했나 보다.  

축구를 하다가 보면, 공에 맞을 수도 있다. 그건 아이들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기분이 나쁠 수는 있지만, 그 정도는 스스로 마음의 제어가 가능하다. 그런데 행복이는 그 제어가 되지 않았다. 일부러 나를 맞혔다고, 쟤도 똑같이 해주어야 한다고 교실에 돌아와서도 화가 사그라들지 않은 채 계속 그 말을 반복했다. 내 옆자리까지 나와서 말이다. 그 아이를 가리키며 쟤가 나를 공으로 때렸다고 똑같이 해 주어야 한다고. 처음엔 그 마음을 공감해 주었고 그리고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축구를 하다 보면, 공에 맞을 수도 있다고 네가 그 아이를 맞추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그렇게 복수를 하다 보면, 게임을 할 수가 없다고 말이다. 처음엔 고개를 끄덕이고 알아듣는 것 같더니 또다시 원점이었다. 4교시 체육시간에 있었던 일을 점심 먹고 난 후, 5교시, 6교시가 되어서도 해결을 못하고 계속 그 자리였다. 수업하고 있는 내 옆에서 계속 말하는 그 아이가 귀찮으면서도 한편으로 안쓰러웠다. 거기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내 옆에 서서 자신을 맞혔다는 그 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쟤는 쓰레기예요." 하는 순간, 다른 아이들이 행복이를 이상하게 보지 않게 하려 애썼던 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행복이는 자신의 이 해결되지 않는 마음이 버거울 뿐, 다른 아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얘들아, 행복이가 아까 체육시간에 축구공에 맞은 것이 해결이 안 되나 봐. 우리가 도와줘야 할 것 같아. 한결아, 잠깐 나와볼래?"

"어떤 상황이야?"

"아까 제가 우람이에게 공을 차려고 했는데 잘못해서 행복이 등으로 차서 맞았어요."

"그랬구나. 그럼 행복이한테 한번 물어봐줘. 그렇게 아팠어? 이렇게."

그러자, 한결이는 "그렇게 아팠어?"라고 물었다.

행복이는 억울한 듯"그래!"라고 조금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손가락질을 하며 화를 삭이지 못했던 행복이는 그 한 번의 질문으로 많이 누그러져 보였다.

"한결아, 행복이에게 '아직도 그렇게 화가 나?' 이렇게 한번 물어봐봐."

"행복아, 아직도 그렇게 화가 나?

"그래." 하면서 뭔가 제스처를 했지만, 제어가 안 되는 화는 아니었다. 다소 절제된 화였다.

"이번엔, 그럼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하고 물어봐봐."

"행복아,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네가 일부러 나한테 세게 찼잖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그래도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한결이는 행복이를 토닥여주었다. 행복이 화가 누그러진 것을 알아차리고 내가 물었다.

"행복아, 이제 조금 풀렸어? 어때?"

행복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결이를 향해 엄지 척을 보였다.

한결이는 한껏 뿌듯해했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한결이한테 선생님 감동했어. 오늘 선생님은 한결이가 이렇게 멋있는 친구인지 다시 봤어. 한결아, 행복이 도와줘서 고마워. 오늘 너무 멋졌어!"라고 아이들 앞에서도 한껏 추켜세워주었다.

그리고 행복이를 향해 "그런데 행복아, 축구하다 보면, 등에 맞기도 하고, 얼굴에 맞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그게 싫으면 이제 같이 축구 못해. 그거 힘들 것 같으면 체육시간에 행복이는 선생님이랑 같이 있자." 하자, 행복이는 "아니에요." 하면서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직도 갈길이 멀다. 그래도 이 아이가 공격성이 심한 아이는 아니구나 생각하며 희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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