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진 님의 인터뷰
한적한 토요일, 강남역의 한 카페에서 첫 인터뷰 촬영 준비가 분주한 가운데. 평소 같지 않은 어색함으로 무장한 우리의 첫 인터뷰이가 걸어 들어왔다. '요즘 너무 자주 보는 것 같은데?'라는 말을 시작으로, 에라 모르겠다 그냥 부딪혀보자.
Q. '친구의 친구'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3주 전이었나? 친구와 가볍게 저녁식사를 하던 도중, 친구가 잡지를 만들고 싶어 하길래 함께 의견을 공유한 것에서부터 시작이었어요. '요새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흥미롭고 그냥 재밌다. 대단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우리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내보는 건 어떨까?'라는 제안을 했어요.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이디어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갔는데, 며칠 뒤 친구가 네가 나의 첫 번째 인터뷰이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살고 싶어서, 애쓰지 않되 열심히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박은진입니다. 저는 특정한 직업으로 절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요. 사람들을 만나면 '무슨 일 하세요?' 물어보는데. 저는 '공간 디자인 일해요.'라고 말하는 게 싫더라고요. 제가 현재 그 일에 완전히 몰두해있지 않아서 그런 거일 수도 있지만요. 저는 직업으로 단순히 표현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여러 가지 즐기고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만 정의되는 게 싫더라고요. 저는 요즘 저것도 재밌고 이것도 재밌다는 생각이 들만큼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아요.
저희는 릴레이식으로 '친구의 친구'들을 만나며 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인터뷰 매거진이에요. 이번 호에서는 '취미'와 관련된 다양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합니다.
Q. 새로운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은진님의 취미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제가 새롭게 가지게 된 취미는 주짓수예요. 주짓수는 레슬링이랑 비슷한데, 싸우는 기술 중에 최고가 ‘주짓수'라고 들었었어요. 제일 강한 게 주짓수라고. 그래서 처음에 주짓수를 시작한 것도 있어요. 강해지고 싶어서요. 전에 주짓수 관련된 웹툰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관심은 쭉 있었는데, 최근에 정신적으로 힘든시기를 겪으면서 어딘가에 집중할 것이 필요해서 주짓수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빨리 승급해서 그랄을 따자!'라고 할 정도로 재밌어졌어요.
* 그랄: 주짓수의 승급 시스템. 띠에 테이프를 감아 단급을 표시하는 명칭.
Q. 주짓수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람과 사람이 같이 하는 운동이라는 점이요. 주짓수의 특성상 이 사람이 어떤 기술을 쓸 때 내가 방어를 하는 입장이 돼요. 그래서 상대방의 행동을 보면서 어떤 동작을 취해야 하고, 리액션을 계속 보여야 하니까 사람을 상대할 때 몰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신력이 강해지는 느낌도 들고요. 일상생활에서도 사람을 대할 때 강해진달까?
Q. 주짓수를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주짓수를 하는 사람들 중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은 거의 없고요. 그냥 관심이 있어서 온 사람이 대부분이더라고요. 가격은 제가 알아봤을 때 한 달에 평균 10만 원 정도였던 것 같아요. 보통 주 3일 주 5일 이렇게 나뉘어 있었고, 도복 값과 입관비는 별도로 지불했어요. 도복은 인터넷에서 사도 돼요. 브랜드에서 나온 도복은 10만 원대 더라고요. 참고하세요 여러분.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운동이에요? 어르신들이 하기에는 좀 힘들 수도 있어요. 저 가끔 멍이 들기도 하고 발도 밟히고 그래요. 제가 다니는 도장에는 특히 고등학생들이 많아요. 회사원들도 많고요. 기본 체력이 없는 사람도 가능해요. 저도 원래 힘이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리 힘이 강하다고 칭찬받기도 했어요. 악력, 다리 힘, 목 힘이 길러지는 운동이에요. 특히 목 힘! 목을 계속 들고 버텨야 하는 운동이라서 턱살이 많이 빠져요. 복근 운동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주짓수를 하고 밤에 다닐 때 좀 덜 무서워졌나요? 원래 밤길을 안 무서워해요. 근데 건장한 남자나 약간 못된 마음 가진 남자를 내가 제압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해본 적은 없지만! 주짓수 기술 파박 쓰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Q. 은진님에게 취미의 의미는 뭘까요?
내가 그냥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게 취미인 것 같아요. 내가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있는 원동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는 게 너무 재미가 없고 의지할 곳, 마음 둘 곳이 없었는데 주짓수를 하면서 마음을 둘 곳이 생겼어요. 내가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것 정도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는 [이미 우리 주위에 형성되어 있는 '친구의 친구'라는 얕은 형태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서로가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어요. 얕은 물이 안전하잖아요. 이 관계는 '공유 혹은 공감대'로 더욱 발전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취미를 '공유' 하는 것 어때요?
Q. 취미를 매개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친구의 친구'들의 모임 어때요?
네. 좋죠. 취미를 주제로 친구의 친구들끼리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서로의 취미를 배워보는 시간도 좋을 것 같아요. 주짓수도 원데이 클래스가 있어요. 서울 내에 가능한 도장이 많고 저희 도장에서도 할 수 있어요. 주짓수 완전 강추입니다. 모두들 하셨으면 좋겠어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취미예요. 요즘 만나는 주위 사람들한테 계속 전파하고 다녀요.
Q. 모임이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세요?
지금은 좋아해요. 이전엔 아니었지만요. 2019년이 되면서 제 자신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원래 엄청 집순이예요. 낯을 많이 가려서 새로운 친구도 잘 못 사귀고, 만나는 친구만 만났었어요. 중 고등학교 때부터 그래 왔어서 손에 꼽힐 정도로 친구가 많이 없었어요.
이번 연도가 어떤 전환점이 된 계기가 있나요?
음. 네. 이야기해도 되나? 꽤 오래 사귄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그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남자 친구가 내 생활에서 사라지니까 그립다기보다는 그냥 제 자신이 무기력해지는 걸 느꼈어요. 너무 내가 한 사람한테 몰두했던 건 아닌가 싶었죠. 그런 와중에 제 친구의 결혼식을 갔는데, 제가 혼자 갔거든요. 뭔가 접점인 친구가 없어서요. 그때 뒤풀이에서 얼굴만 아는 선배들이랑 한 테이블 앉아서 이야기하는데 재밌더라고요. 별로 안 친한 사람이랑 그렇게 대화한 적이 잘 없었는데 좋았어요. 그 뒤로 유럽여행을 갔을 때도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재밌어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이제는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재밌어요. 나와 다른 세상 이야기랄까?
Q. 사람 사이에서 어떤 관계를 추구하시나요?
원래는 좁고 깊은 관계가 좋았어요. 그런데 사람들 만나는 게 좋아지면서 현재는 넓고 깊은 관계가 좋아요. 제가 정이 많은 편이라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과 관계를 계속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 사람을 더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하루 만나고 끝인 관계는 지양해요.
깊은 관계를 추구하다 보면 상처 받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사람을 만나다 보면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데, 쉽지 않은 경우가 있긴 하죠. 상처를 받을 때도 있지만 상처 받는 게 두려워서 주춤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넓은 관계를 추구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부산에 있을 때는 만나는 사람만 만나서 경험하는 것도 한정적이고 계속 발전이 없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서울에 와서 넓은 세상을 접하게 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은 환경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더라고요.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을 흡수해서 내가 발전되는 느낌이에요. 많은 사람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스스로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오픈 마인드!
Q. SNS를 통해서 '친구의 친구' 계정을 둘러본 적이 있나요?
가끔씩 둘러봐요. 다들 그러지 않아요? 그냥 궁금해서 들어가 보는 것 같아요. 제일 큰 게 호기심? 남들 어떻게 사나.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굉장히 다양한 걸 하면서 살구나? 하는 걸 느끼죠. 한 가지 예를 들면 인스타그램에서 책을 엄청 많이 보는 친구의 계정을 우연히 접했는데 피드에서 굉장히 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책을 한번 읽어볼까? 했죠. 책을 원래 잘 못 읽는데, 책을 하루 만에 다 읽었어요. 그러고 나니 글도 쓰고 싶어 져서 글도 쓰고.. 어쨌든 발단은 SNS에서 나랑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친구의 피드를 보았단 사실이죠. 그렇게 영향을 받고 제 생활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굉장히 좋은 영향이죠.
Q. 실제로 친구의 친구를 어떤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나요?
네 엄청 많아요. 처음 만났을 때 그 어색함이 전 재밌어요. 가볍게 만나는 느낌이 들어서 부담도 없고요. 친구의 친구인데 엄청 친해진 경우도 있었어요. 이야기도 잘 통하고 공통된 관심사가 있어서 그 공통점으로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니까 중간의 친구 없이도 만날 정도로 가까워진 적도 있어요.
Q. 은진님은 어떤 친구가 되고 싶은가요?
대화하고 싶은 친구가 되고 싶어요. 대화를 할 때 말이 잘 통해서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계속 만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원래는 시시덕거리고 재미를 위한 만남이 좋았는데 이젠 좀 달라졌어요.
얼마 전에 시인 박준의 토크쇼를 갔었어요.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라는 산문집의 저자예요. 그분이 쓴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이 느껴져요. 실제로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말을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자기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말도 많으신데 그걸 또 조곤조곤 잘하세요. 정말 부러워요. 저도 박준 님처럼 내 생각을 잘 전달하면서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또 상황에 따라 깊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를 들어, '나 이거 해서 좋았어!' 이랬는데 '그게 왜 좋아?'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뭔가 생각이 더 깊어지고 사고가 전환되는 느낌이에요. 내가 생각해보지 않은 측면을 그 사람으로 인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요. 저도 그런 친구이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친구 혹은 친구의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 있나요?
음. 제 주위 친구들을 보면 취직한 친구들 중에서는 '내가 아직 안정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를 가지는 게 사치인 거 같다. 해도 될까?' 고민하는 친구,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친구,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했지만 이 길이 재미없어서 이 길을 가도 될까? 고민하는 친구 등 너무 고민이 많아요. 저희 나이대가 고민이 많은 시기죠. 그래서인지 주위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저도 안 행복했었어요. 졸업하고 취업하고 서울살이를 하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한 시간이 거의 없어요. 저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데 현실은 안 행복했죠. 그런데 저는 이제 이렇게 생각해요. 해피(happy)가 있으면 언해피(unhappy)도 있다.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낙담하지 말자고요.
내가 뭘 하면 재미있고, 좋고, 행복할 수 있는지 고민을 많이 하면서 살다 보면 힘은 들겠지만 결국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취미도 내가 행복하려고 하는 것처럼 다 행복하자고 하는 건데 너무 괴롭게 생각 안 했으면 좋겠어요. 행복한 삶을 살아가요 우리.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5자로 부탁했다. 3초의 적막을 깨고 나온 말은 '애쓰지 말자'
그래, 우리 모두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행복해지려 애쓰지 말고 그냥 행복하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19.11.2
vol.1 '박은진'님의 인터뷰
글/ 친구의 친구
사진/ 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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