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30대 커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시간. 바로 연애를 하다가 서로와의 결혼 생각을 하면서 자금상황을 오픈하는 시간일 것이다. 우리도 그랬다. 피할 수 없는 그 시간이 다가왔다. 물론 우리는 딱 정해놓고 날을 잡아 자금을 오픈했다기보다는, 통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자금 상황에 대해 오픈하게 되었다.
나는 모아둔 현금이 1천만 원이었다. 거기에 대학원 학자금 대출 2천만 원 정도가 남아있었다.
남편은 모아둔 현금이 500만 원이었다. 거기에 학자금 대출이 2천만 원 정도 남아있었고, 집안 형편으로 인해 급하게 신용대출받은 1천만 원도 남아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나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을 하기로 하고 경기도 집 근처로 이직을 했다.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던 곳이라 출근하려면 차가 필요했기에 마침 동생이 몰고 다니던 경차를 200만 원 주고 동생한테 샀다. 그래서 실제로 남아있는 현금은 800만 원. 남편은 대구에서 살다가, 나와 결혼을 하기로 하고 경기도로 이직을 했다. 남편 직장도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던 곳이라 출근하려면 차가 필요했다. 그래서 중고차를 450만 원 주고 샀다. 뭐 이래저래 이전비랑 합쳐서 거의 500만 원 들었다. 남편이 실제로 남아있는 현금은 0원.
우리 둘 다 솔직히 서로의 경제적 상황을 공유해보니, 답이 안 나왔다. 막상 둘 다 툭 까놓고 보니 돈이 없다 못해 빚밖에 없었다. 없어도 이렇게 없을 줄이야... (남편은 물론 계속 "나는 자기와 함께라면 초가삼간이라도 상관없어"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솔직히 초가삼간은 싫었다. ㅜㅜ)
그런데 이렇게 결혼해서 살고 있는 지금 보니,
그 돈으로라도 어떻게든 결혼이 되긴 되더라.
중요한 건 "준비된 돈" 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었다.
요즘은 정말 결혼하기 까다로운 시대이다.
통상적으로 많이들 얘기하는 결혼이 어려운 시대라는 말도 맞지만, 나는 어렵다는 말보다는 까다롭다는 말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아무리 어려워도 그 어려움을 감내하려 생각하지 않고, 계산이 먼저 앞서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혼 적령기가 되어 ‘나는 어떤 남자를 만나야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다 보니, 몇 가지로 답이 추려졌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 외의 것들은 포기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나서, 돈보다는 사람을 먼저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매달매달 함께 돈을 모아가며 결혼 준비를 진행했다.
다행히도 지출의 가장 큰 부분인 신혼집은, 내가 모아둔 현금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남편 이름으로 일단 국민임대 당첨이 되었고, 임대보증금이 제일 낮은 800만 원대 금액을 선택하여 매달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기로 했다. 그리고 결혼 준비 비용은, 둘 다 직장 다니면서 매달 100만 원씩 함께 모아가며 준비했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그래도 가성비 괜찮은 것들로 인터넷에 마구 검색을 해가며 준비했다. 결혼식은 남편 고향인 대구에서 했는데, 지인들이 많아서 시어머님 축의금 들어온 걸로 일부 지원해주셨고, 친정 엄마도 쌈짓돈으로 모아두신 돈을 보태주셔서 신혼여행과 혼수비용을 다 메꿀 수 있었다.
비록 우리 둘 다 흙수저라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모아둔 돈도 없었지만 결혼 준비를 하면서 돈이 없어서 힘들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되고,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다는 호기심과 기쁨이 더 가득했던 것 같다. 또 어떤 면에서 다행인 것은 둘 다 흙수저라 부모님이 결혼식에 전혀 관여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허례허식에 치중하지 않고 실속 있게 결혼을 준비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둘 다 빚밖에 없어서 결혼 준비가 될 수 있을까를 걱정했는데, 둘이 마음이 맞으니 어떻게든 되긴 되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결혼은 계산이 앞서기보다 서로의 마음이 맞아야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