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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맘 Nov 04. 2022

우리가 흙수저인 이유,  부모님 이야기


내 부모님은 두 분 다 하루도 쉬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셨다.

수산시장 도매업을 하셨었는데, 아빠는 새벽마다 산지에 가서 물건을 떼 오셨고, 엄마는 사계절 내내 차가운 얼음과 물을 만지며 각종 해산물들을 판매하셨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셔서 내가 학창 시절 집도 사고, 식당도 차리셨다. 그렇게 나와 내 동생은 학창 시절에 물질적으로는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묵혀두었던 요인으로 인해 내가 22살 때에 두 분은 이혼하셨다. 아빠는 대전으로 내려가셨고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엄마와 셋이 살았는데 가게와 집의 대출 빚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엄마는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매우 힘들어하셨다. 그러다가 결국 집을 팔고, 가게 속에 딸려 있는 좁은 방으로 우리는 이사를 가게 되었다. 여름에는 에어컨도 없이 환기가 되지 않아 매우 더웠고, 겨울에는 보일러도 안 되는 방에서 전기장판에 의지하며 살았는데, 무엇보다도 그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화장실이었다. 가게 안에 거의 숨어 살다시피 하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려면 상가 화장실을 사람이 없을 때 이용했고, 샤워는 가게 앞에 있는 헬스장 회원권을 끊어서 다니며 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면 그때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에 나는 집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할 것. 그리고 화장실이 집 안에 있고 온수가 펑펑 잘 나오는 것. 집이 넓고 자시고도 떠나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결국 엄마는 대출금을 감당할 수 없어 파산신청을 하고 신용불량자가 되셨으며, 가게는 경매에 넘어갔다.


 




남편은 대구사람인데, 타고난 금수저였다.

어릴 때 사립초등학교를 다녔고 웅변, 태권도, 수영, 피아노, 미술 등등 웬만한 학원이란 학원은 다 다녀보며 어릴 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경험했던 사람이었다. 말을 들어보니 친할머니가 떡집 장사를 크게 하시며 돈을 아주 많이 버셨다고 했다. 그래서 주변 어려운 분들 장학금 후원도 많이 하시고,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셨으며 시아버님과 고모님들 가게도 다 차려주셨다고 했다. 거기에 아들 귀히 여기는 할머니의 사랑을 남편은 듬뿍 받고 자랐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이 고등학교 때 할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그 충격으로 시아버님도 남편이 21살 때에 돌아가셨다. 할머님이 고모님과 아버님께 차려주셨던 가게는 다 운영을 잘못하셔서 망하게 되었고, 워낙 젊을 때부터 돈을 많이 쓰는 것에 익숙하셨던 시부모님은 모아둔 돈이 거의 없이 그대로 할머니와 시아버님의 상을 맞이하게 되셨다. 거기에 시어머님이 새롭게 떡집을 여셨는데 빚 때문에 아가씨와 어머님은 가게 안에 있는 방에 들어가서 사셨고, 남편은 고시원에 들어가서 혼자 살았다. 남편은 그때 고시원에 있을 때가 매우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 좁디좁은 방에 환기시킬 작은 창문 하나가 아예 없던 게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시어머님이 여셨던 떡집은 결국 터를 잘못 잡아 장사가 잘 안 되어 파산하게 되었고, 시어머님은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셨다.

  




남편과 나는 지금, 결혼한 지 1년 정도 되었다.

결혼 전에 둘 다 서른이 넘은 나이였지만, 각각 모아둔 돈보다 갚아야 할 대출 빚이 더 많은 상태였다. 둘 다 쉬지 않고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는데, 결혼할 때가 되어보니 물질적인 상황이 그랬다. 남편도 집안에 돈을 보태느라 자기 돈을 모을 새가 없었고, 나는 집안에 돈을 보태진 않았지만 대학교부터 대학원까지 혼자 힘으로 공부하느라 이래저래 번 돈을 다 써버렸다.


살면서 내가 흙수저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될 때면,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남편도 겉으로는 티를 안내지만 그런 마음을 가진 적이 없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남편과 내가 둘 다 그런 힘든 과정을 겪어 왔기 때문에, 서로가 지금의 상황에 이렇게 더 감사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글을 쓰다 보니, 지금의 상황에 더욱더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지금은 어쨌든 1)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집. 2) 화장실도 집 안에 있고,

3) 작은 창문 하나에 그치지 않고 베란다까지 있는 집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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