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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맘 Nov 07. 2022

결혼 전 아내의 삶

꿈 많고 욕심 많던 INTJ

결혼 전, 나는 꿈이 매우 많은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대학교에서는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였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갈 때 즈음 집안이 매우 힘든 상황일 때여서 부모님이 도와주거나 하신 건 없었지만, 나 또한 독립심이 강한 편이라 집에 손 벌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K장녀로서 그때 바로 취직을 해서 집에 진 빚을 함께 갚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 당시 내 꿈이 더 중요했기에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물론 엄마도 나에게 그래 주길 바라는 내색 한번 하지 않으셨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자기 꿈을 포기하고 집안 형편에 희생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고 나서 괜스레 집에 미안해진 적이 있긴 했었다.


그렇게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들어갔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뮤지컬 작곡 전공을 하고 그와 동시에 관련 일을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이렇게 꿈꿔왔던 일들에 점점 가까워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성취감도 느껴졌고, 그와 동시에 내가 꿈꾸는 걸 다 이룰 수 있을 거라는 교만한 생각이 들어오기도 했다. 또한 그 시기에는 꿈을 이룬다는 명목으로 나 자신을 계속 옥죄고 들들 볶으며 살았다. 잠도 잘 안 자고 날도 많이 새고, 조금의 틈이나 여유의 시간도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하물며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과 시간을 내어 만나는 것도 딴짓을 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만나면서도 생각은 딴 데 가있기 일쑤였다. 오직 실력을 쌓는 것만 중요한 일이라 여겨 음악과 관련된 스킬을 익히고 분석하고 곡 쓰고 하는 것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계속 달리고 달리다가, 어느 순간 번아웃이 왔다.

그러면서 더 이상 이 음악 일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쩔 수 없이 회사 취직자리를 알아보았다. 이력서를 넣고, 또다시 보내고, 반복하는... 그 과정도 결코 쉽지는 않았다. 거의 100군데 넘게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의 교만했던 마음도 점점 내려놓게 되었다.


나의 자신감이 점점 바닥으로 내려갔을 때쯤, 감사하게도 방송국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업무로 시작했지만, 점점 일이 익숙해지면서 기획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하다 보니 기획도 참 재미있는 일이었다. 작곡이라는 것이 각각의 악기와 소리를 조합해 전체적으로 이뤄낼 하모니와 무대를 상상하여 작업하는 것처럼, 기획도 그랬다. 결국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내용을 구상하고 설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여 일을 하는 도중, 집안이 형편으로 인해 경기도 외곽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 혼자 따로 살면서 회사를 다녔다. 계속 그렇게 서울 근교에 살면서 일을 하고 싶었지만, 점차적으로 나의 수입으로는 생활비와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돈을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일을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인 상황이 생겨버렸고, 나는 결국 본가로 들어가게 되었다. 본가에서 서울로 버스와 기차와 전철을 갈아타고 출퇴근을 했다. 왕복 4시간 정도 걸렸다. 조금이라도 일이 늦어져서 야근을 할 때면 집에 10시 넘어서 도착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다음 날 또 새벽에 일어나서 버스와 기차와 전철을 갈아타고 출근하고... 계속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나의 체력은 점점 바닥이 났다. 위염이 생겨서 소화가 잘 되지 않았고, 피부에는 면역력 저하로 울긋불긋한 두드러기 같은 것들이 목부터 점점 내 몸 쪽으로 내려와 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렇게 내 몸을 혹사하면서 일을 다닐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본가 근처로 이직하게 되었다.

내가 해왔던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중소기업 사무직으로.






본가 근처로 이직에 성공했을 당시에는 참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어쨌든 방송국보다 월급도 더 많아서 결혼 준비하는 데에도 더 수월했고, 직장과 집이 가까우니 삶의 질도 높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루고 싶은 것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허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왜 이리되는 일이 없을까? 뭐 하나 해보려고 해도 제대로 이뤄내는 거 없이 자꾸만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끈기가 부족한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나의 탓으로만 생각하기에는 세상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기회가 부족하고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도 괜히 억울하게 느껴졌었다.


  




그렇게 여러 번의 마음과 상황의 변화를 거듭한 끝에, 지금은 아주 평온하게 살고 있다. 처음 가진 합법적인 여유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임신하고 나서 일을 쉬면서, 그동안의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물론 또다시 언제 마음이 바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렇게 오롯이 내 몸이 자연의 순리대로 생명을 잉태하여 품고 있는 것을 경험해보니 그동안은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 아주 강력하게. 이러면서 나도 또 다른 차원으로 성숙해져가고 있는 게 아닐까?


일도, 사랑도, 그리고 내 몸도 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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