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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맘 Nov 01. 2022

국민임대 46형, 우리의 시작.


국민임대 46형.

우리의 첫 시작이었다.

 



우리는 결혼하기 전에 둘 다 가지고 있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 결혼 자금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지만, 우리 둘 다 모아 놓은 돈보다 각자 가지고 있는 빚이 훨씬 더 많았다. 그렇다고 우리 둘 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요즘에 결혼자금 관련 검색을 해보거나 포털사이트에 돌아다니는 글들을 읽어보면, 결혼자금으로 둘이 합쳐 최소 1억은 있어야 그래도 준비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아둔 돈은 많이 없었지만, 그 정도는 있어야 결혼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서로의 자금상황을 막상 툭 까놓고 이야기를 해보니 남편은 나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았고, 솔직히 서로의 경제상황을 오픈하고 나서 '과연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여차저차 어떻게 해서 서로를 믿고 우리는 결혼 준비를 진행하기로 했다.

지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집이 문제였다. 마침 우리가 집을 구하던 그 시기가 2021년도 중후반쯤이었는데, 그때 부동산 가격이 거의 최대로 올라 있을 때여서 집 구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마침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에 신혼부부 대상으로 행복주택 입주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그래서 거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원해보았다. 지원하면서 솔직히 거의 붙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비 신혼부부인데 나라에서 웬만하면 다 붙여주겠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나는 떨어져 버렸다.


엄마가 예전에 낡은 동네에 재건축을 생각하고 내 이름으로 조그마한 빌라 하나를 사놓았던 게 있었다. 그게 대출 빚만 나가고 세입자를 구할 수 없는 상태에서 팔리지도 않던 집이었다. 워낙 오래돼서 그 집값은 오르지도 않았고, 집이 계속해서 낡아가 물이 새어 공사하느라 돈 들어가고, 집에 곰팡이가 피어서 도배하느라 돈 들어가고, 정말 애물단지 같았던 그 집인데... 그 집이 내 재산에 들어가 있어서 나는 탈락해버렸다. 더 억울한 건, 그 집이 행복주택 발표 나기 며칠 전에 팔렸다는 것이다. 마이너스였지만 그래도 그 집을 팔았는데, 그게 행복주택 모집자격을 공고한 날짜 기준에는 팔리지 않았던 상태여서, 나는 결국 유주택자였다. 그리고 떨어졌다. 후... 정말 그 집!! 그 집이 나의 발목을 잡다니 ㅜㅜ


이제 다시 또 집을 구하러 다녀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네이버 부동산으로 아무리 뒤져봐도 현 시세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집은 없어 보였다. 요즘에 2-30대들 영 끌로 집 마련 많이 한다던데, 그것도 단 몇 푼이라도 종잣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우리는 둘 다 모아둔 돈이 없어서 여느 2-30대처럼 영 끌을 할 수도 없었다. 월세로 산다고 해도 월 10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지출한다는 것은 너무 큰 무리였다. 정말 막막했다. 행복주택이 떨어진 날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 와도 싸웠다. 남자 친구는 대구에서 나랑 결혼하겠다고 내가 있는 경기도까지 올라와서 적응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남자 친구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는걸 나도 알고 있었는데 그날은 모든 게 막막해서였는지 괜스레 투정을 부리게 되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위기의 순간을 보내고, 성격 급한 나는 다음날부터 또다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부동산 관련 앱도 깔고, 네이버 부동산이나 카페 같은데도 들어가 보고 월세나 정부지원 대출 등등 이리저리 다 알아보던 중, 내가 생각지 못했던 지역에 국민임대주택 입주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그 모집공고는 이미 몇 개월 전에 마감되었던 공고로 알고 있는데... 다시 떴다. 뭐지? 날짜를 보니 지원할 수 있는 기간에 들어맞았다. 예전에 모집했던 입주자 공고에 미달이 나서 재모집을 한다는 공고였다. 나는 남자 친구에게 얼른 지원해보라고 얘기했다.


솔직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운빨이 들어맞아야 하는 거 단 한 번도 된 적이 없었다. 그 흔한 경품 추천, 하다못해 가위바위보 같은 것 까지도... 그래서 남자 친구한테 국민임대주택 넣어보라고 얘기하면서도 마음을 비웠다. 속으로 기대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하면 바로 눌러버렸다. '안될 거야. 여기도 안 되겠지...' 남자 친구한테도 늘 그렇게 얘기하며 임대주택 발표날까지도 별 기대 안 하려고 노력했다.

기대해봤자 실망이 더 클걸 알기에.





여느 때 와 같이 우리는 각자의 일상을 살았고, 계속해서 월세나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더 좌절감만 커져갔다. 그렇게 국민임대주택 발표날 인지도 모르고 있던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남자 친구가 카톡으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바로! 지원했던 국민임대아파트가 당첨되었다는 문자였다. 동호수까지 친히 기재되어서 문자가 왔다. 럴수럴수 이럴 수가! 일부러 더 기대 안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당첨이 되다니. 나는 정말 너무 기쁘고 믿기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 차 안에서 미친 사람처럼 혼자 실소하면서 계속 웃어댔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도 몰랐음)

"와하하핰ㅋㅋㅋ와하하핰ㅋㅋㅋㅋ!!!"


이 아파트는 새로 지어진 집이었고, 내가 이전에 지원했던 행복주택(37형) 보다 더 넓은 평수였다. 아파트 위치도 시내와 가깝고 도서관이나 학교 공원과도 가깝고 여러 가지를 따져봐도 훨씬 좋은 곳에 있었다.


뜻이 있었구나, 떨어진 뜻이 있었어.

정말 너무너무 감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민임대주택이 당첨되었던 것은, 나에게 있어 신혼집 마련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항상 모든 운빨이란 운빨은 들어맞지 않던 내가 남편과 둘이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내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노력했다가 실패했던 경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라고나 할까..? 노력이 다가 아니라는 것. 실패도 다가 아니라는 것. 그 이상을 뛰어넘는 상황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 상황은 우리의 힘과 의도만으로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것.  


아마 내가 원했던 것이 한 번에 척척 되었더라면 지금 이 집이 당첨된 거 감사한 줄도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한번 안될 고비를 맞이하고 나서 당첨되고 나니 더더욱 감사한 마음이 크게 와닿았다. 물론 지금도 가끔 더 넓고 좋은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그렇지만 그때마다 이 첫 마음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국민임대주택 당첨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친 사람처럼 실소하던 나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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