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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월의 앤 Mar 21. 2024

공허함의 지속

모순적인 아름다움에 관한 집착

개인적인 일로 자카르타를 벗어나 쿠알라룸푸르에서 몇 주간 지내고 있다.

나는 기다리는 것을 좀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의 행정처리를 마주하고 있자니 기다림 이상의 인내가 요구된다는 것을 느낀다. 우여곡절 끝에 억지로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기의 장소가 되어버린 아파트. 이 아파는 에어비앤비가 소개글과는 사뭇 다른 아파트 입구부터 에어비앤비가 불법이라는 경고 표식이 가득한 전혀 유쾌하지 않은 곳이다. 유일하게 마음에 다는 것은 42층 아파트에서 바로 보이는 페트로나스 타워의 불빛이다.  


매쾌한 매연과 사방이 시끄럽고 정신없는 자카르타를 벗어나면, 그리고 자카르타보다 훨씬 적막한 이 도시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내면 많은 영감이 떠오를 줄 알았다. 내가 하염없이 기다리던 누군가도 더 그리울 줄 알았고, 그간 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할 줄 알았건만, 그와는 반대, 아니 완전히 아무것도 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 공허함의 나날들이 하루 이틀 지나고 있다.


이런 마음을 좀 추스르려고 했지만, 마음을 잡는 것은 여간 힘들고,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배우 김남길을 좋아해서, 몇 년 전 한국에서 나름 인기가 있었다고 하는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라는 드라마를 연쇄적으로 보고 있다. 대한민국 프로파일러 1호인 송하영 경위의 눈동자는 어딘가 슬프고 공허하다. 그 공허함을 투영한 그의 눈매와 눈동자는 마치 이 세상이 얼마나 부질없는 한낱 에 불과한지, 인생의 생과 사는 내가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절대적인 영역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다. 그게 자연사가 되었든 사고가 되었든 혹은 태생적 혹은 환경적으로 사악한 인간에 의한 무참한 살인이 되었든 말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저번주 우리 회사 동료의 배우자분이 갑자기 사망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먹먹했다. 작년 행사에서 생글생글한 웃음으로 첫인사를 건넸던 분인데, 갑자기 사망하셨다니. 해외에서 생을 달리하셔서 슬픔보다는 지금 마주한 온갖 행정절차로 회사 직원분들과 가족분들이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고 전해 들었다. 슬픔이 뒷전이 되어버린 행정적 절차의 죽음과 의례란 마치 현대사회가 만들어놓은 데이터화의 집착. 이 무미건조한 행위는 죽음을 맞이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되어버렸다. 슬퍼할 겨를도 없다는 소리는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말이구나 란 깨달음과 함께.


감정의 동요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송하영 경위의 눈동자는 무색무취에 가깝지만, 그 안을 조금 더 깊게 바라보면, 감히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과 비통함 그리고 절망이 터져버려 주체할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울음도 나오지 않고, 웃음은 커녕 미소도 잘 짓지 않는 송하영 경위의 모습이 마치 지금 이 아파트 속에 갇혀 재택근무를 가장한 휴가를 지내고, 인쇄소처럼 하염없이 보고서나 찍어내는 내 자신 같다.


술을 마시는 것도 그다지 즐겁지 않고, 새로운 바를 가는 것도 들뜨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혼자하는 것이 편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사소한 행위들이 나에게 안겨주었던 행복감이 무엇인지 이제는 잊었다.


어제, 조금 늦은 저녁 30여분을 걸어 Bar Marzuki라는 스픽이지바를 들렀다. 이 것 역시 '이 곳을 가야지'란 계획보다는 이 지긋지긋하고 구역질나는 아파트를 빠져나오려고 한 억지스러운 외출이었다. 가는 길은 더러웠고, 어둑해진 그 거리는 부랑자들로 가득해 좀 무서웠지만, 이내 무서움 따위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러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보다는 그냥 죽으면 어쩔 수 없지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해야하나. 이런 마음을 안고 터덜터덜 그 바로 향했다.


어느 덧 땀으로 흠뻑 젖은채 도착하자 마자, 사장님이 잘 만든다는 베스퍼 마티니 주문했다. 냉수 한잔을 벌컥벌컥 마시고, 사장님을 말벗 삼아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자, 이내 10명 남짓 수용 가능한 귀엽고 작은 바의 사장님이 이렇게 말했다.


"이 바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본식 접대(hospitality)문화를 제공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격식을 차리거나 숨막히게 조용하게 할 필요는 없어요. 제가 스승으로 모시던 분께서, 일본 사회는 '역할' 사회라서, 가장이 온전히 역할에 대한 부담과 압박 없이 스스로 혼자가 될 수 있는 장소는 바로 이런 '바'라고 가르쳐줬거든요. 회사 이후 가정도 일종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기대되는 곳이기 때문에, 이 역할을 위해서라도 온전한 쉼이 필요하니깐요. 그래서 이 바의 컨셉은 휴식과 고요 그리고 방해받지 않는 편안함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이런 시간이 매일같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남이랑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재정적 독립을 위해 경제생활을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회사생활 그리고 집에서는 나름의 가족적 역할을 해야하는 부대낌을 힘들어하는 편이다. 그 부대낌때문에 자발적 공허함, 이게 충족되지 않을 때는 그리워하지 말아야할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내 마음이 이렇게 공허한데, 고요한 것에 감사하며, 적막한 이 도시 쿠알라룸푸르에서 공허함의 아름다움을 일부 깨달아 가고 있음에 조금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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