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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개척과 교회의 관행적 분노

복음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

by Francis Lee

15세기말, 대서양은 새로운 ‘성지’가 되었다. 교황청 깃발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출정한 군함 위에서 휘날렸고, 그 항해의 목적은 ‘신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그 복음은 정복의 명령으로, 성경의 언어는 폭력의 언어로 변질되었다. 교황 니콜라우스 5세(Nicolaus V)는 1452년 칙서 <Dum Diversas>를 통해 포르투갈 왕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 invadere, reprimere, expugnare, debellare et subjugare omnes Saracenos et paganos, et alios infideles Christi inimicos...”(사라센인과 이교도, 그리고 그리스도의 적인 다른 불신자들을 침략하고, 제압하고, 정복하고, 굴복시켜라.)(Dum Diversas, 1452, §4)


이 문장은 중세 교회의 정치적 욕망과 신학적 폭력의 정수를 압축하고 있다. '정복'(invadere)과 '굴복'(subjugare)은 단순히 군사 용어가 아니라 영혼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교의적 언어였다. 교회는 복음을 ‘인류 보편의 구원’으로 선포하면서 동시에, 그 구원을 수용하지 않는 이들을 '신의 적'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 논리 구조는 후대의 식민지 폭력, 노예무역, 문화말살의 신학적 토대를 제공했다.


니콜라우스 5세의 후계자였던 칼릭스투스 3세(Callixtus III)와 식스투스 4세(Sixtus IV) 교황은 이 신학적 논리를 더욱 강화했다. 그리고 1455년 교황청은 <Romanus Pontifex>를 발표하며, 포르투갈 국왕에게 ‘아프리카 서해안의 모든 토착민에 대한 영구 지배권’을 부여했다. 칙서의 핵심 구절은 다음과 같다.


“... acquirere et subjicere universas terras et insulas illas, Saracenorum, paganorum et aliorum infidelium...”(그 모든 땅과 그 섬들을 차지하고 복종시켜라. 그것이 사라센인, 이교도 또는 다른 불신자들의 것일지라도.)(Romanus Pontifex, 1455, §7)


이 명령은 단순한 정치적 위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된 주권’이라는 신학적 선언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교도의 땅은 인간의 땅이 아니며 그들의 생명은 교회의 복음 사업을 위해 언제든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독교의 복음의 이름으로 정복을 합리화한 이 교서들은 이후 400년 이상 지속된 식민지 개척의 신학적 근거가 되었다.


교회는 이러한 식민주의를 단순히 정치적 확장의 수단으로만 이해하지 않았다. 그것은 곧 ‘문명화 선교’(missio civilisatio)라는 신학적 서사로 발전했다. 1493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VI)는 콜럼버스의 항해를 승인하며 칙서 <Inter Caetera>를 반포했다. 이 칙서는 신학적 정복 논리의 최종적 형태를 보여준다.


“Nos autem, considerantes quod vos, sicut veri catholici reges et principes... intenditis subjugare terras et insulas praedictas ad fidem catholicam et mores Christianos...”(우리는 참된 가톨릭 왕과 군주로서, 이 땅들과 섬들을 가톨릭 신앙과 기독교의 풍습 아래 복종시키려 함을 고려하여...)(Inter Caetera, 1493, §2)


여기서 ‘신앙과 풍습 아래 복종시키다’(subjugare ad fidem et mores)라는 표현은, 바로 복음이 ‘문화적 지배의 언어’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신앙은 더 이상 구원의 은총이 아니라, 문명의 기준이 되었다. 곧 복음의 수용 여부가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를 결정하는 잣대가 된 것이다. 그 결과, 16세기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정책은 신학적 정당성을 얻었다. 이교도 학살은 '영혼의 구원'을 명분으로 정당화되었고, 토착민의 고통은 '신의 계획'으로 합리화되었다. 교회의 분노는 신의 분노로 신성화되었고, 복음은 살육을 위한 칼날이 된 것이다.


교황 문헌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세 가지 핵심 동사는 invadere(침입하다, 점령하다), subjugare(굴복시키다, 예속시키다), convertire(개종시키다, 전향시키다)이다. 이 세 단어가 합쳐질 때, 복음의 언어는 전쟁의 명령으로 바뀐다. ‘복음화’는 ‘정복과 개종’을 의미하고, ‘사랑의 선교’는 ‘지배의 도구’로 변모한다. 교회는 ‘영혼의 구원’을 명목으로 타자의 몸과 문화를 파괴했다. 교황 문헌들의 신학적 언어를 분석해보면 교황청의 식민 담론은 단순한 정치 문서가 아니라 '구원의 폭력적 신학'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즉, 교회는 '인류의 구원'(reddemptio generis humani)을 주장하면서도, 그 사업을 위해 수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을 정당화했다. 그래서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굴복시키는 것은 죄가 아니라, 오히려 이른바 ‘선한 사업’(opus bonum)으로 간주되었다.


식민지 개척을 정당화한 교황 문헌은 성경의 특정 구절들을 신학적으로 오용했다. 대표적인 것이 마태복음 28장 19절의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Euntes ergo docete omnes gentes)라는 구절이다. 이 명령은 본래 사랑과 섬김의 보편적 초대였다. 예수의 사랑을 기반으로 한 메시지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전하라는 유언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이를 ‘지배와 복종의 명령’으로 재해석했다. 교황청의 해석에서 'docete'(가르치라)는 '정복하라'(subjugate)로 치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예수의 복음은 더 이상 낮은 자를 위한 사랑의 복음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복종을 강요하는 제국의 언어가 되었다. 곧 복음의 ‘가르침’은 타자의 문화를 파괴하는 ‘교화’로 변했고, ‘회개’는 ‘항복’의 의미로 전도된 것이다.


이 시기 교회는 분노를 단지 인간의 죄성으로만 보지 않았다. 교회의 분노는 곧 신의 분노(ira Dei)를 표현한 것이 되었다. 이교도를 향한 폭력은 신의 정의(iustitia Dei)를 실현하는 행위로 이해되었다. 곧 신의 분노가 교회의 분노로 위임된 것이다. 십자군과 식민선교의 구호인 “Deus vult!” (신이 원하신다!)는 바로 교회가 분노할 수 있는 권리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신학적 선언이었다. 교회의 분노는 곧 ‘정당한 분노’(ira iusta)였고, 그 폭력은 ‘정의로운 전쟁’(bellum iustum)으로 명명되었다. 그 결과, 수백만 명, 심지어 어떤 학자의 추정으로는 수억 명의 원주민이 학살되고, 수천 개의 언어와 전통이 사라졌음에도 교회는 이를 '영혼의 구원'이라는 선한 목적으로 정당화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신학적 분노 구조’, 곧 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분노를 신성화한 구조이다.


15세기 반포된 교황 칙서의 내용은 한 시대의 정치 명령이 아니라, 기독교 문명 전체의 폭력적 자기 인식을 반영한다. 교회는 복음의 이름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한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신의 분노를 인간의 욕망으로 대체했다. ‘신의 분노’(ira Dei)는 죄를 향한 정의의 불길이었지만, ‘교회의 분노’(ira Ecclesiae)는 교회의 권력과 독점에 방해되는 모든 타자를 향한 지배의 불길이었다. 이 불길은 신의 사랑을 삼켜버렸고,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켰다. 그 결과, 복음은 더 이상 기쁜 소식이 아니라, 정복의 문명화 사명으로 전락했다. 복음의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은 단순한 역사적 실수가 아니라, 교회의 자기 신학적 구조 속에서 탄생한 필연적 결과물이었다. 이렇게 15세기 후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탐험선이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그 항해는 단지 경제적 모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교황청이 승인한 신학적 원정이었다. 식민지는 교회의 선교 구역이었고, 정복은 복음의 확장이었다. 교회는 군사적 폭력을 ‘신의 의지’로 포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은 교회의 용어로는 ‘정의로운 전쟁’(bellum iustum)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미 13세기에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II-II, q.40)에서 ‘정의로운 전쟁’의 개념을 제시하며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명시했다. 먼저 그것은 합법적 권위의 명령이어야 하고,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올바른 의도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의 교회는 이 조건들을 교회의 이해관계에 맞게 변형했다. ‘합법적 권위’는 교황의 이름으로, ‘정당한 이유’는 이교도의 불신앙으로, ‘올바른 의도’는 복음의 확산으로 대체되었다. 결국 그래서 교회의 폭력은 언제나 정의로웠고, 식민지의 저항은 언제나 죄악이었다. 교황청은 이 교리를 근거로, 스페인 군대의 학살과 약탈을 ‘성스러운 전쟁’으로 명명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미사를 드리고, 사제를 앞세워 원주민 마을로 진격했다. 십자가가 창보다 먼저 들렸고, 세례가 죽음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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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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