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없는 신앙의 일상적 실천 방법
8장. 성경: 읽지 않아도 되는 성경 읽기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난 뒤 성경을 덮는다. 그것은 성경이 더 이상 의미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말로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오랫동안 교리를 증명하는 근거였고,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설명서였으며, 때로는 교회의 결정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변명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성경은 읽는 책이 아니라 사용되는 책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독자들은 조용히 멀어졌다.
그러나 성경의 문제는 본문에 있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성경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교회는 성경을 늘 ‘무언가를 말하게 만들어야 하는 텍스트’로 다뤄왔다. 적용해야 하고, 해석해야 하며, 삶의 교훈으로 정리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말을 요구받는 텍스트 앞에서, 독자는 점점 숨이 막힌다. 성경을 펼치는 순간,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 제안하는 성경 읽기는 그 모든 요구로부터 한 발 물러서는 시도다. ‘읽지 않아도 되는 성경 읽기’는 성경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고, 의미를 찾지 않아도 괜찮으며, 오늘의 삶에 바로 적용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선언이다. 이 방식은 무책임이 아니라, 일종의 무위(無爲)에 가깝다. 도교가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치가 아니라, 억지로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사물의 본래 흐름을 존중하는 태도다. 성경을 무위로 읽는다는 것은, 본문을 붙잡아 흔들지 않고, 우리에게 교회가 가르치며 지킬 것을 요구한 신학과 확신을 들이밀지 않은 채 그 앞에 가만히 서는 것이다.
성경을 ‘무관심의 관심’으로 읽는다는 말은 모순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 태도는 오히려 깊은 집중과 닮아있다.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목적 없이, 설득하거나 반박하려는 의도 없이, 그저 그 성경 말씀이 거기에 있도록 허락하는 상태. 이때 성경은 정보가 아니라 사건이 된다. 말씀이 나를 설득하지 않아도, 변화시키지 않아도, 단지 그 말씀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이미 충분하다.
사실 예수 자신도 성경을 그렇게 읽었다. 그는 그 당시 성경, 정확히는 유대교 경전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고, 인용할 때조차 그 의미를 고정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당시 성직자들이 독점적으로 해석하고 가르친 기존의 해석을 흔들고, 경전에 나온 문자를 넘어 사람을 보게 만들었다. 예수에게 성경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자리였다. 그래서 그런 예수에게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화를 내고 적개심에 이를 갈기까지 했다. 이 적개심은 결국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는 끝까지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다. 그래서 바리사이나 성경학자, 심지어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성직자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그러므로 성경을 덜 읽는 것이 아니라, 신학이나 교리라는 거추장스러운 도구를 덜 사용하며 읽는 것이 오히려 예수의 방식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 장에서 제안하는 실천은 단순하다. 하루 한 구절을 정한다. 가능하다면 사복음서에 나오는 짧은 문장이 좋다. 그 문장을 읽고, 아무 해석도 하지 않는다. 무슨 뜻인지 묻지 않고, 오늘의 교훈으로 정리하지도 않는다. 그 말이 마음에 남든, 걸리든, 불편하든 그대로 둔다. 그리고 하루 동안 그 문장이 계속해서 떠오르는지, 아니면 잊히는지조차 평가하지 않는다.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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