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억지로 착해지려 하지 않는 삶

교회 없는 신앙의 일상적 실천 방법

by Francis Lee

9장. 윤리: 억지로 착해지려 하지 않는 삶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오랫동안 '더 착해져야 한다'는 압박으로 번역되어 왔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에서 더 인내해야 하고, 더 용서해야 하며, 더 이해해야 하고, 더 참아야 한다는 요구가 신앙의 이름으로 반복되었다. 그 결과 많은 신자는 더 성숙해진 것이 아니라, 더 피곤해졌다. 더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더 자기 검열적인 인간이 되었다. 신앙은 삶을 확장시키는 힘이 아니라, 감정을 관리하고 태도를 통제하는 훈련처럼 변해버렸다. 그리고 이런 훈련에 지친 신자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가 되기도 했다. 겉으로는 신실한 교회의 형제자매로 살지만 속으로는 욕심과 갈등과 분노와 질투를 주체 못 하는 삶을 사는 ‘종교적 지킬과 하이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를 다시 읽어보면, 예수는 사람들에게 막연히 '더 착해지라'고 말한 적이 거의 없다. 그는 오히려 이미 적어도 겉으로는 ‘착해 보이는’ 사람들, 곧 자기 의로움에 익숙한, 그래서 내적으로 교만해진 사람들에게 가장 날카로웠다. 바리사이들은 결코 유대교의 종교 윤리적으로 실패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율법과 규범을 철저히 지켰고, 종교적으로 매우 성실했으며, 도덕적으로 상당히 존경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예수는 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심지어 “독사의 족속”(γεννήματα ἐχιδνῶν)이라고 외쳤다. 겉으로는 종교적으로 그럴듯하지만, 그 안에는 본질적인 생명이 없다고 일갈한 것이다.


사실 근원적인 문제는 ‘착함’ 그 자체가 아니라, 착해 보이려는 강박이다. 이 강박은 사람을 선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분열시킨다. 겉으로 드러나는 나와 속에서 느끼는 나 사이에 모순적 간극을 만들고, 그 간극을 숨기기 위해 더 많은 종교적 언어와 도덕적 포장을 동원하게 만든다. 그 결과 신앙은 진실을 향한 길이 아니라, 위선을 연습하는 기술이 되기 쉬운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이 있다. 이 책이 말하는 '착해지려 하지 않는 삶'은 결코 방종이나 자기 합리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의 윤리는 아무렇게나 살라는 윤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누구보다도 삶의 선택에 대해 엄격했다. 다만 그 엄격함은 규범의 반복이 아니라, 본질적 인간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응답에서 나왔다.

특히 예수가 자기 헌신과 자기부정을 강조한 배경에는 분명한 역사적 맥락이 있다. 예수는 하늘나라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종말론적 인물이었다. 이 세상의 세속적 질서가 곧 뒤집힐 것이라는 믿음, 지금 당하는 고통과 손해가 최종적이지 않다는 확신 속에서 그는 과감한 선택들을 감행할 수 있었다. 오른뺨을 맞고도 왼뺨을 내주라는 말, 겉옷을 요구하면 속옷까지 내주라는 말,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일상적 도덕 규칙이라기보다, 임박한 하늘나라를 향한 종말론적 선언에 가깝다.


문제는 이 점이 충분히 해석되지 않은 채, 예수의 급진적 요구들을 교회가 신자들에게 일상 생활에서 늘 실천해야 하는 도덕 의무로 전가되어 왔다는 데 있다. 정작 성직자들은 그 의무에서 스스로 벗어나 있으면서 말이다. 예수의 삶을 지탱했던 종말론적 긴장과 역사적 조건은 지워지고, 그 결과만 남아 언제 올지 모르는 종말에 대한 확신 없이 신자들에게 강요된 ‘늘 참아야 하는 신앙’, ‘항상 져야 하는 신앙’, ‘늘 자신을 소진해야 하는 신앙’이 만들어졌다. 그 신앙은 결국 사람을 자유롭게 하기보다, 서서히 마르게 만든다.


예수는 인간을 그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생’으로 만드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도덕적 완성도를 점수처럼 평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자리로 불러냈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았고,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모든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끌어 안았다. 그런 반면에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 앞에서는 단호했다. 예수의 윤리는 ‘착함의 윤리’가 아니라, 진실과 사랑의 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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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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