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밖에서 살아 있는 영성
19장. 혼자일 때의 성령, 함께일 때의 성령
— 개인 영성과 탈교회적 공동체 영성의 실제
교회를 떠난 신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혼자만의 신앙’이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배워 왔기 때문이다. 성령은 공동체 안에서, 더 정확히 말하면 교회라는 제도 안에서만 역사한다고. 그래서 교회를 떠나는 순간 신앙은 개인적 취향이나 자기 위안으로 전락하고, 성령은 더 이상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두려움을 전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 속 성령은 언제나 개인에게 먼저 말을 걸면서 시작해서, 그 개인을 다시 관계의 자리로 이끌어 간다. 성령은 집단 속에서만 작동하는 힘도 아니고, 개인을 고립시키는 에너지 또한 아니다. 성령은 사람을 홀로 부르되, 그 홀로 있음이 자기 폐쇄로 굳어지지 않도록 방향을 조정하는 존재다.
인간이 혼자 있을 때 성령은 무엇보다도 정직함을 훈련한다. 교회라는 무대에서 내려와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 자리로 들어갈 때, 신앙은 비로소 꾸밈없이 드러난다. 여기에는 감동을 연출할 필요도 없고, 교회가 올바르다고 규정한 언어를 선택해야 할 의무도 없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기도, 끝까지 해석하지 않아도 되는 성경 읽기, 아무 결론 없이 멈춰 서는 묵상은 모두 성령이 외부의 시선 없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때의 영성은 성취나 성장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깊어졌는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증명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신앙 감각이다. 무엇이 나를 살리는지, 어떤 말 앞에서 몸이 굳어지는지, 어떤 침묵이 나를 회피로 이끄는지, 어떤 질문이 아직 나를 붙들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 말이다. 혼자일 때의 성령은 이 감각을 무디게 하지 않고 오히려 또렷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시기의 신앙은 종종 불안정해 보인다. 확신은 줄어들고, 말은 조심스러워지며, 기도는 짧아진다. 그러나 이것은 쇠퇴가 아니라 정직의 회복이다. 성령은 이 시기를 통해 신앙을 다시 ‘보여 주기 위한 것’에서 ‘살아내는 것’으로 옮겨 놓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성령이 결코 개인주의를 강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혼자만의 영성이 충분히 자리 잡기 시작하면, 성령은 어느 순간 반드시 질문을 던진다.
“이 길을 혼자만 걸을 수 있겠는가?”
“이 방향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는가?”
이 질문은 외로움을 부추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령은 인간이 혼자서만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성령은 개인을 ‘고립된 영웅’으로 만들지 않고, 다시 관계로 부른다. 다만 이전과 같은 방식의 관계는 아니다.
탈교회적 공동체는 바로 이 질문에서 태어난다. 이는 예배 형식이나 교리의 완전한 합의, 조직과 직분을 먼저 세우는 공동체가 아니다. 그 대신 삶의 방향을 나눌 수 있는 소수의 관계, 서로의 신앙을 관리하지 않고 지켜볼 수 있는 관계가 중심이 된다. 이 공동체는 대개 작고, 느슨하며, 불안정하다. 정해진 리더도 없고, 매주 반드시 모이지도 않는다. 실패할 가능성도 크고, 관계가 끊어질 위험도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성령은 완성된 구조보다 살아 있는 관계, 잘 정리된 체계보다 서로에게 책임지는 방향성 속에서 더 잘 작동한다. 이런 공동체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옳은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이다. 누군가 뒤처질 때 판단하기보다 기다릴 수 있는지, 확신이 다른 사람과도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는지, 침묵을 강요하지 않고 질문을 허락할 수 있는지가 바로 그러한 공동체의 ‘영성’(Spiritualität)을 드러낸다.
성령의 일상적인 작동 방식은 혼자와 함께를 분리하지 않는다. 성령은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사람을 정직하게 만들고, 함께 있는 시간을 통해 그 정직함이 관계 속에서 왜곡되지 않도록 다듬는다. 이렇게 개인 영성과 공동체 영성은 대립하지 않고, 서로를 보완한다. 그래서 탈교회 이후의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혼자인가?’, 함께인가?‘의 양지 선택이 아니라, 언제 혼자 있고 언제 함께 할지를 분별하는 능력이다. 성령은 이 리듬을 무너뜨리지 않고, 각자의 삶의 속도에 맞게 조율한다. 혼자일 때 성령은 사람을 속이지 않게 하고, 함께일 때 성령은 사람을 닫히지 않게 한다. 이 두 작동이 균형을 이룰 때, 교회라는 제도가 사라진 자리에서도 참다운 신앙은 충분히 살아 움직일 수 있다.
� <실천 연습>
신앙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아도 편한 사람 한 명과, 한 달에 한 번 식사 약속을 정한다.
그 자리에서는 결론이나 조언 없이, 그저 “요즘 나의 그리고 너의 삶에서 어디가 가장 어긋나 있는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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