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가 틀렸다고 해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밥을 먹다가 혀를 깨물고, 걷다가 넘어지고, 무심코 휘두른 손이 스스로의 눈을 위협하는 순간들이 있다. 이 사소한 사건들은 하나의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과연 우리 몸의 주인인가. 아니면 몸이라는 체계 위에 잠시 얹혀 있는 의식에 불과한가?
근대 철학은 이 질문에 비교적 단순한 답을 내렸다. 르네 데카르트는 정신과 신체를 분리하며, 사유하는 주체를 인간의 본질로 보았다. 몸은 연장된 물질, 즉 기계와 같고, 정신은 송과선을 통해 그것을 사용하는 주체였다. 이 구도에서 인간다움은 곧 이성이 감정과 신체를 통제하는 능력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이 명확해 보이던 구분은 20세기에 들어 균열을 맞는다. 현상학과 실존철학, 그리고 현대 과학은 몸을 더 이상 단순한 기계로 보지 않는다. 특히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이미 ‘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우리는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세계를 ‘살아낸다’는 말이다. 이때 몸은 대상이 아니라 조건이며, 도구가 아니라 지평이 된다.
자연과학도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뒷받침한다. 신경과학과 생리학은 몸이 단순한 명령 수행 장치가 아니라,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복잡한 자기 조절 시스템임을 보여준다. 심장 박동, 호흡, 반사 작용뿐 아니라 감정의 발생과 판단의 방향까지도 신체적 상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즉, 우리는 몸을 통제하는 동시에, 몸으로 형성된다.
이 지점에서 ‘내 몸이 과연 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로 바뀐다. 몸은 완전히 통제되는 대상도 아니고, 완전히 분리된 타자도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나를 구성하면서 동시에 나로 재구성되는, 일종의 상호작용의 장이다.
그렇다면 마음과 정신, 더 나아가 영혼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전통적으로 이 세 개념은 서로 다른 층위로 이해되어 왔다. 마음은 감정과 의지의 영역, 정신은 이성과 사고의 영역, 영혼은 초월적 차원의 근거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의 관점에서는 이 구분 또한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인간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해석의 틀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신체 상태와 분리되지 않고, 우리가 내리는 판단은 감정과 무관하지 않으며, 우리가 추구하는 의미와 가치 역시 이 둘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이때 ‘영혼’이라는 개념은 특정 기관이나 위치를 지칭하기보다, 인간이 자신을 하나의 통합된 존재로 이해하려는 방식, 즉 전체성에 대한 직관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몸과 마음과 정신은 분리된 세 실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동일한 과정을 표현하는 언어들에 가깝다.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느끼는 존재이고, 느끼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다. 이 셋은 충돌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흐름 속에 있다.
이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통제’라는 개념을 재고하는 일이다. 과거에는 통제가 지배와 억제를 의미했다. 이성이 몸을 억누르고, 의지가 충동을 제압하는 상태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은, 진정한 통제는 억제가 아니라 조율에 가깝다는 점이다.
몸의 신호를 무시하는 것은 통제가 아니라 단절이며, 감정을 억압하는 것은 질서가 아니라 왜곡이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몸의 리듬을 이해하고, 감정의 흐름을 읽으며, 사고의 방향을 그 위에 맞추는 것이다. 이것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과 비슷하다. 각 악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소리가 하나의 음악이 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의 삶은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일치의 과정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완전히 일치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점점 더 일치해 가는 존재다. 때로는 몸이 앞서고, 때로는 감정이 흔들며, 때로는 이성이 늦게 따라오지만, 이 모든 어긋남 속에서 다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삶이다.
따라서 인간다움은 더 이상 이성이 몸을 지배하는 상태가 아니라, 몸과 마음과 정신이 서로를 이해하며 하나의 방향을 형성하는 상태로 재정의될 수 있다. 이것은 완벽한 통제의 상태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포함한 조화의 상태다.
결국 우리는 우리 몸을 완전히 소유하지도,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다. 우리는 몸이면서 동시에 몸을 살아가는 존재다. 그리고 바로 그 모순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이해하고 의미를 만들어간다.
이렇게 본다면, 삶의 과제는 분명해진다.
몸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 감정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 정신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연결하는 것이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인간은 하나의 존재로서 자신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알다가도 여전히 모를 것이 마음만이 아니라 몸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든다. 성철 스님의 사자후가 들릴 듯하다. '이 뭐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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