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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pr 14. 2021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방류에 찬성한 미국 바이든 정부

그 와중에 모래알처럼 부서지는 대한민국?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녹아내린 연료 덩어리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는 데 사용한 물을 저장해 오다가 마침내 바다에 방류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 과정에서 ALPS, 이른바 다핵종제거설비를 작동하여 방사성 물질을 정화하겠다고 하지만 인간의 DNA의 변형을 가져오는 치명적인 물질인 삼중수소는 걸러내지 못한다. 2년 후부터 시작하여 30-40년 동안 지속적으로 방류를 하겠다는 참으로 '야심 찬' 계획이다.

     

그런데 그 결정 과정이 묘하다. 일본에 가장 가까운 나라여서 직접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한국에는 아무런 정보 제공도 사전 협의나 동의를 구하는 과정도 없다. 그저 미국의 ‘승낙’을 받았고 IAEA, 곧 국제원자력기구의 동의를 구한 것으로 그만이라는 배짱이다. 미국의 바이든 정부가 오바마의 정신을 이어 친일 행보를 보일 것은 이미 미국 대선 이전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미국은 현재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QUAD, 곧 일본, 호주, 인도를 거느린 미국 중심의 실질적 군사동맹에도 한국이 가입하라는 압력조차 행사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안보 라인에 한국이 배척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언론의 반응이 극명하게 대립된다. 한겨레는 오염수 방류를 도저히 용남할 수 없다고 치고 나가는데 비해 조선일보는 일본 즉의 방류가 불가피한 조치이며 한국 국민의 건강에 큰 탈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조선일보는 이 소식을 아예 1면에도 배치하지 않고 있다. 역시 조선일보답다. 참 징하다.


그런데 이런 전반적인 상황이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1월 12일 당시 미 국무장관이었던 애치슨이 선언한 Acheson Line을 연상시키고 있다. 미국은 그 당시 중공의 팽창주의에 맞서 미국의 방위선을 일본 열도와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을 그었다. 여기에서 미국이 한국을 방위선에서 제외한 것은 전략적으로 한반도가 미국의 국익에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최우선의 관심은 일본의 방위였다.     


물론 애치슨 라인이 한국전쟁의 직접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의 방위에 무심하다는 인상을 주어 북한과 중국이 쉽게 한국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나중에 애치슨에게 이에 대하여 여러 사람들이 책임을 추궁하였으나 그는 끝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을 둘러싸고 돌아가는 국제 정세가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팽창주의에 맞서 쿼드를 중심으로 아시아의 동맹국들과 군사적 연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한국을 배척하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후쿠시마 원자로의 오염수 방류마저 ‘승인’ 한 것에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태도를 너무나 분명히 읽게 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은 어떤가? 내년 대선 정국에 ‘꽂혀’ 있어서 해외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러면서 모래알처럼 부서지고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도 모자라서 친문과 수구, 개혁과 적폐, 이재명과 윤석열, 페미와 20대 남성의 역차별, 금수저와 흑수저, 강남과 나머지 떨거지 땅, 스카이와 지잡대로 처절히 갈라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어쩐지 기시감이 있다.  임진왜란 15년 전인 1575년 6품의 이조전랑이라는 보잘것없지만 출세의 요직이 되는 자리를 놓고 서인 심의겸과 동인 김효원의 대립으로 붕당이 시작되었다. 오늘날에 비유한다며 동인은 적폐 청산을 내세우는 진보 세력이었고 서인은 고관대작들을 중심으로 한 수구 세력이었다. 그런데 이 동인들이 내분이 일어나 강경한 급진파인 북인과 온건파인 남인으로 갈렸다. 그리고 급진파인 북인은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갈렸다. 이런 와중에 임진왜란이 터지자 백성은 버려둔 채로 자기들만 살겠다고 선조와 함께 의주로 도망가는 길에서도 왕이 보는 앞에서 양반들은 서인과 남과 북으로 갈라진 동인이 서로를 죽어라 물어뜯고 만 있었다. 참 기가 막힌 조상들이었다. 백성은 죽어나가고 국운이 풍전등화여도 파벌의 이익을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북인이 세력을 잃고 나서 서인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 이후 남인과 서인이 100년 가까이 대립하여 오다가 효종의 죽음으로 야기된 예송 논쟁에서 남인이 승리하게 된다. 그런데 권력에서 멀어진 서인이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더니 경술환국으로 권력을 다시 탈환하여 남인을 제거하게 된다. 이후 영조의 탕평책으로 어느 정도 당파 색이 사라지는가 했더니 이제는 탕평책을 찬성하는 시파와 반대하는 벽파가 나온다. 이러는 과정에서 노론도 분열되고 소론과 남인도 다시 이합집산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공서파와 신서파까지 등장한다. 그 어떤 명분으로든 파벌을 만들고야 마는 DNA가 있는 우리 조상들이 분명하였다.    

  

물론 인간이 모여 사는 모든 사회에는 파벌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파벌의 적절한 세력 균형과 건설적인 상호 비판이 이루어진다면 사회는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보여준 파벌 싸움과 그에 따른 적폐는 그러한 긍정적 효과와는 거리가 멀다. 문제는 그런 조상들의 DNA가 21세기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발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라의 존망이 걸린 문제가 해외에서 발생해도 관심이 없다. 내  조직, 내 동네, 내 파벌만 경쟁자를 이기고 득세하면 그만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언행에 책임이 무거운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의힘에서 힘을 쓰던 김종인은 당을 나오자마자 국민의힘을 비난하고 안철수를 바보라고 하며 윤석열과 더불어 신당을 만들겠단다. 친문은 여당의 신진 의원들을 맹폭한다. 이준석은 페미니즘이 성경이냐고 몰아붙인다. 오세훈은 재개발을 추진하겠다며 집값을 안 올리겠단다. 다 미쳐 돌아간다. 이 상황에서 임진왜란 직전에 파당 싸움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조상들, 일제 강점기 직전에 사분오열된 조선 사회, 한국전쟁 직전 좌우 대립으로 철저히 이분된 대한민국 사회가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발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문자 그대로 long live! 제발 이제 그만 좀 서로 물어뜯으면 좋겠다. 사색당파를 이루어 서로 물고 뜯던 그 조상들 다 어찌 되었는가? 결국 다 죽었다. 그들을 답습하고 싶은가? 그러지 말고, 우리나라가 망하든 말든 지들 맘대로 군사전략을 짜고 발암물질을 방류하는 왜구를 포함한 외적들에 맞서 모두 힘을 합쳐야 하는 것 아닌가? 5000년 동안 위정자들이 문자 그대로 아무리 ‘개판’을 쳐도 백성들이 일어나 지켜온 소중한 나라다. 우리가 내부에서 서로 죽일 듯 싸우며 발기발기 찢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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