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되는 대권 후유증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에는 잊힌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19대 대선에서 이미 마이너 지지로 출발한 정권이라 5년 내내 시달렸으니 지칠 만도 하다. 풍문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치아 가운데 성한 것이 거의 없다는 말도 들인다. 그만큼 대통령 자리가 쉽지 않다는 뜻이리라. 사실 조국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경제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그래서 국민의 불만이 한창 고조되고 있던 차에 조국 사태가 국론을 두 쪽으로 갈라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부패한’ 검찰의 개혁을 이루고야 말아야 한다는 결의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윤석열을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만드는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현재 상황을 보면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는 문자 그대로 바닥을 기고 있다. 여론 조사의 조작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현재 정부와 여당의 인기가 바닥으로 향하는 추세는 분명하다. 진보 세력은 수구 언론이 양산한 가짜 뉴스와 선전·선동을 현재 정국 혼란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그런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선전·선동을 하는 주체의 의도에 아무 생각 없이 이끌리는 tabula rasa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착각이다. 현재 정부를 비난하는 국민은 분노해 있다. 진보 진영이 그 사실을 부인하며 180석 승리에 만족하고 있다가 사달이 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율은 19대 대선 때와 거의 변함이 없다. 그래서 더욱 나이브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윤석열이 정권을 잡으면 그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국회를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통령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현재 미국 정부를 보면 알 수 있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있고 하원의 민주당마저 바이든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의 정치 상황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이다. 강력한 대통령제를 채택한 한국의 경우 의회 권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권한이 대통령에게 얼마든지 있다. 서울시가 좋은 반면교사가 된다. 서울시의회를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지만, 오세훈이 맘먹고 하는 일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형식상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여전히 유교적 가부장제 정서가 살아 있기에 민심을 의회가 장악하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이 41.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나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의 이른바 반문재인 연대 세력의 득표율을 합쳐보면 52.2%에 달해 그 18대에 박근혜가 얻은 51.6%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인 48%는 문자 그대로 영끌의 결과였다. 그러나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한국의 보수 세력인 것이다. 그런데 2017년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실시된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오히려 7%p나 줄었다. 분위기로 보면 문재인 후보는 압승을 거두어야 했음에도 말이다.
한국의 보수와 수구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진보 세력은 늘 마이너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대선에서 1대 1 대결에서 진보 세력이 승리를 거둔 것은 노무현 대통령께서 이루신 업적이 유일하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문자 그대로 천신만고 끝에 이룬 성과이다. 한국의 진보는 앞으로도 영원히 마이너일 것이다. 그런데도 180석 승리에 취한 민주당은 적진 앞에서도 여전히 좌익의 특징인 분열의 모습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낙연은 심통이 나 있고 친문 세력은 여전히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민주당 지지율의 문재인 정권들에 최저를 향해 곤두박질하고 있는데도 무사태평이다. 정말 뜨거운 맛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다.
결이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수백 명의 사주를 감명해 왔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통해 한 가지 확인한 사실이 있다. 운이 나쁜 쪽으로 흐르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망하는 짓만 골라하면서도 자신만만해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에게 아무리 주의를 시키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망하고 나서 나를 다시 찾아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었다. “왜 그때 나를 좀 더 잘 타이르지 못했냐?”며 오히려 나를 비난하는 것이었다. 망하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모든 탓을 남에게 돌린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다. 망하는 인간은 절대 가까이하지 말고 충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런데 지금 진보 세력을 보면 그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중구난방이고 위기의식이 전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40%에 달하는 콘크리트 지지 세력만 믿고서 말이다.
사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어도 문재인 대통령을 걸고넘어질 것이 거의 없다. 전통적으로 전임 대통령을 걸려 넘어지게 한 자식이나 친인척의 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큰 걱정을 할 필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는 한국 검찰의 속성을 잘 모르고 하는 생각이다. 한국 검찰이 한 번 걸면 다 걸리게 되어 있다. 조국 사태가 이를 극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조국과 추미애를 희생양 삼아 그런 검찰의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검찰은 근본적으로 아직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아니 검찰을 개혁하는 것은 수구 언론 개혁만큼이나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이른바 보수 언론과 검찰은 변할 수가 없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 개혁을 성공한 사례는 단 하나도 없다. 오로지 독재 국가인 소련 중국 북한 등에서만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긴 군사독재 시절에도 전두환만이 실시한 것이 언론 개혁이다. 천하의 전두환도 수구 언론들에 채찍만이 아니라 당근도 주어가면서 살살 달래서 이룩한 것이 언론 개혁이었다.
검찰 개혁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역사에서 검찰 개혁을 성공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본래 권력의 도구가 검찰의 속성인 이상 객관적으로 ‘정의롭고’ ‘공정한’ 검찰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권력을 틀어쥔 자가 검찰을 지배하게 되어 있다. 조직상으로도 검찰의 정권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런 검찰이 ‘공평무사’하게 업무를 추진할 수 있다고 믿거나 그렇게 믿도록 선전해서는 안 될 일이다. 확실한 권력을 잡아 검찰을 길들이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언제 검찰이 공평무사한 적이 있었는가? 그런 역사가 없기에 정권에 대들어 자기 맘대로 ‘설친’ 윤석열이 돋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진보 세력은 여전히 공염불에 불과한 이른바 ‘적폐 청산’을 외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겨우 4달 남은 시점에서도 여전히 공염불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동안 진보 진영의 발전이 전혀 없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발전이 없으면 바로 퇴보를 의미한다. 이대로 나가면 그렇지 않아도 구석에 몰리는 진보 세력이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 위기의식을 여당만이 아니라 진보 진영 전체에서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마치 은근히 데워지는 가마솥에 들어가 앉아 목욕을 즐기는 두꺼비를 보는 느낌이다.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그 어리석은 눈만 껌뻑이는 두꺼비 말이다.
다시 문재인 대통령의 바람으로 돌아가 보자. 퇴임 후 조용히 있고 싶다고 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소망이다. 윤석열이 당선되는 순간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그동안의 ‘한풀이’로 한국의 정계를 들었다 놓게 될 것이다. 그 중심에 조국과 문재인이 놓여 있다. 이재명도 파편을 맞은 것은 분명하다.
사실 현재 한국이 당면한 경제적 문제는 보수 세력이 장악한다고 해서 별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국제 교역에 목을 매는 한국 경제의 종속성을 고려하면 늘 불안할 것이 당연하다. 세계 10대 무역국이며 7위의 선진국인 수치 놀이에 빠져 제2의 IMF에 대비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 그 수치를 정밀하게 살펴본다면 경제력 1~3위 국가, 특히 미국과 중국이 전 세계의 경제를 쥐락펴락한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한국 언론이 요소수 사태로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 경제가 미국과 중국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는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이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부동산도 윤석열이 당선된다고 해서 이른바 금낭묘계의 묘책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말도 안 된다. 잘 알고 있는 대로 한국 부동산의 폭등은 세계적인 추세인 데다가 한국의 투기 세력의 농간도 가미된 복합적인 사태이다. 국제 경제나 기득권 계층에 속하는 투기 세력은 윤석열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변수이다. 윤석열 아니라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해결이 난망한 일이다.
결국, 누가 당선되든 최종적인 부담을 분담해야 하는 것은 일반 서민이다. 그리고 특히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이 없는 MZ세대이다. 이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분노하는 것이다. 이들의 눈에는 민주당도 국민의힘과 마찬가지의 기득권 세력이다. 그러니 MZ세대가 윤석열이 보수 기득권 세력이라고 해서 무조건 진보 기득권 세력을 밀 것으로 생각하면 커다란 착각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이들이 보이는 행보를 보면 실제로 MZ세대의 진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진보 진영은 태평가나 부르고 있다. 사실 이들도, 특히 강남 진보는 정권을 내주어도 아쉬울 것이 없다. 이미 부동산도 많이 오르고 먹고살기도 편한데 40% ‘밖에 안 되는’ 한국의 무주택자를 뭐하러 신경 쓰겠는가? 그리고 32%에 불과한 비정규직 취업자들의 고민에 뭐하러 관심을 두겠는가? 강남 좌파가 이미 기득권 세력이고 그런 비주류는 선거에서도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결국, 가장 불쌍한 것은 그런 비주류들이다. 그들이 강남 좌파의 대열에 끼지 못한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참 답답한 상황이다. 통상적으로 어느 사회든 소수자가 진보 세력에 속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그 소수자에서 탈출하는 데 여념이 없는 한국의 '전직' 소수자들은 올챙이 시절을 떠올리는 것조차 싫어한다. 이제 새로 다수자에 속한 기쁨을 플렉스하고 싶은 열망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 다수자에 속해 있다는 생각 자체가 허위의식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미지근하게 데우는 가마솥의 두꺼비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에 앞서 일반 시민, 특히 머릿속과 입만 진보인 이들의 의식 개혁이 가장 급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윤석열의 대세론과 문재인의 몰락론이 힘을 더욱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진보 진영의 누구도 위기의식이 없다. 그 '근자감'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