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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Nov 10. 2021

율동공원이 천당 아래 분당에 있다고?

분당 20년 체험기

돈이 부족하여 서울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 직장에서 멀지 않은 분당의 작은 집을 마련한 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 사실 그때나 이때나 부동산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 돈에 맞추어 산 집이다. 워낙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 그동안 많은 동네를 여행해 보았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분당이 한국 최초의 계획도시로 매우 잘 설계된 도시라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나중에 듣게 된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이 지나친 과장은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물론 판교가 들어서면서 이른바 명품 아파트가 특히 동판교 지역에 모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업지, 주거지, 녹지가 넓은 도로들 사이에 적절히 퍼져 있는 원 분당 지역이 여전히 살기에 편한 동네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올해도 연례행사처럼 가을을 맞이한 율동공원과 정자동을 돌아보며 사진을 몇 장 찍어보았다.

    

율동공원에서 보이는 요한 성당 첨탑들


율동공원 입구 쪽을 바라보고 찍은 가을 풍경이다. 이 단풍과 더불어 2021년의 가을도 저물 것 같다. 멀리 분당 요한 성당의 첨탑, 그리고 그 뒤에 지역난방 발전소의 굴뚝이 보인다. 율동 공원은 성남시가 1999년 8월 30일에 원래 있던 분당저수지를 중심으로 완공한 것으로 분당저수지 주변으로 2.5km의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그밖에 다양한 시설이 있다. 2000년 초반 만해도 일산의 호수공원과 더불어 신도시의 멋을 대표하는 장소였으나 이제는 많은 도시에 비슷한 공원이 마련되어 독보적인 수준은 아닌 것이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름답고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이다. 주차장이 워낙 넓어서 주차 문제는 겪은 적이 거의 없다.

              

율동공원 산책로 중간의 휴계섬


분당동 쪽으로 들어와서 산책로를 절반 정도 오면 있는 작은 휴식 공간에 세워진 미니 풍차는 장난감같이 귀엽기만 하다. 여기 벤치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매우 고즈넉하다. 이 공간 뒤쪽으로는 넓은 공연장이 있어서 코로나 사태 이전만 해도 주말마다 작은 공연이 열렸다. 긴 휴지기간이 끝나고 위드 코로나 단계로 접어들면서 다시 공연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율동공원 카페 전의 억새

                 

입구 근처에는 적당한 규모의 카페가 있다. 그곳에 이르기 전에 억새가 적당히 피어있다. 이제 겨울이 오면 이 억새도 갈색으로 변할 것이다. 호수 위의 오리들과 더불어 찍어보려고 했지만, 구도가 잘 잡히지 않는다. 억새 위로 떨어지는 햇살이 눈 부신데 사진이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것 같다.     


율동공원 산책로의 단풍

     

산책로에서 찍은 단풍이 가을의 절정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 이 붉은색은 땅에서 솟은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이 엽록소가 사라지면서 드러난 것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젊음의 빛이 사라지고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면 각자가 숨겨 놓았던 자기만의 색깔이 드러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렇게 드러난 나의 색깔이 이 단풍만큼 아름답기를 바라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율동공원의 만산홍엽


문자 그대로 만산홍엽이다. 자연은 계절에 순응하여 늘 자기 모습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전혀 추하지 않다. 봄은 생기를 여름은 활기를 가을은 평안을 겨울은 성찰의 시간을 마련해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인간은 왜 자신의 삶이 영원히 봄에만 머물기를 바라는 것일까? 계절의 순환에 순응하는 자연이 아름답듯이 삶의 4계에 순응하여 살다가 시인의 말처럼 잠깐 소풍 나온 사람처럼 이 세상을 떠나 다시 천국이든 니르바나의 세계이든 또 다른 세상으로 간다고 믿으며 뒤에 오는 이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 아름답다. 이미 60이 된 나이에 아직도 청춘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보다 말이다.


정자동의 어느 지붕 위에 내린 단풍


율동공원을 나와 커피나 한잔하려고 정자동에 와보니 여기도 지붕 위로 가을이 이미 와 있다. 판교가 들어서기 전에는 분당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곳이었다. 코로나로 주춤했지만 이제 다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정자동 카페거리 뒷길


나는 독일에서 11년 동안 살면서 내 차를 몰고 독일만이 아니라 유럽의 여러 도시를 원 없이 돌아다녀 보았다. 그런데 분당은 그 어느 유럽 도시에 손색이 없다. 단순히 고급 외제 자동차가 많아서만은 아니다. 도시 계획이 잘 되어 있다. 도로가 적당히 넓다. 거주지와 상업지구가 적절히 분리되어 있다. 고층 아파트만 성냥갑식으로 늘어서 있지 않고 저층과 고층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론 다른 신도시도 정비가 잘 되어 있지만, 너무 고층 위주로 건축이 이루어져 집에 눌리는 느낌이 드는데 분당은 그런 것이 없다. 참 아름다운 동네이다. 늘 이렇게 머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니겠지? 그런데 잠시 천당 아래 분당의 가을 풍경에 빠져있다가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오면 그런 생각이 욕심이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확연 대오하듯이 말이다. 내가 살아야 할 세상과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의 간극을 어찌 좁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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