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rancis Lee
Nov 11. 2021
이재명을 살리는 카드는 무엇인가?
진보 세력의 분열 극복을 기다린다.
현재 윤석열이 여론 조사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가는 이유로 흔히 컨벤션 효과를 들먹이지만 틀린 분석이다.
‘정권 교체’ 정서는 생각보다 강하다. 국민 대부분은 박근혜가 탄핵당한 이유도 이제 정확히 모른다. 그저 최순실 농단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 이상의 법리적 이유를 세부적으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재인 정부는 냉정히 말해서 세월호보다는 최순실과 안철수 덕분에 세워질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10년 가까이 정권을 장악했던 보수 세력은 이번 20대 대선이 최순실 때문에 야기된 진보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심판하는 자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문재인 정권이 ‘비정상’이고 이제 다시 정국을 정상화하려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정권 교체는 그들에게 사활을 걸고 덤비는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대선을 석 달여 남긴 현재의 시점에서 윤석열의 당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윤석열을 반대하는 이들은 그의 잘못 보다는 아내와 장모의 ‘결격 사유’를 물고 늘어지지만, 이는 잘못된 전략이다. 보수 세력은 자신의 부패와 부도덕에 대하여 특히 관대하다. 그래서 도덕성은 이번 선거에서 아무런 이슈가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은 대장동의 덫에 철저히 걸려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매우 불리하여 이재명 자신이 비록 조건을 달았지만 결국 특검 수용의 카드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 윤석열은 5.18 묘지에 가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방명록에 쓴 “민주와 인권의 오월 정신 반듯이 세우겠습니다.”라는 문구는 한글 맞춤법 논란을 야기하고 있지만, 행간을 읽어보면 의도된 실수임을 알 수 있다. 민주당의 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 부대변인은 ‘교정’을 봐주면서 비웃었지만 말이다. 윤석열은 진보 진영의 지지를 포기한 지 오래다. 진보는 늘 도덕성을 문제로 삼았기에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윤석열은 잡은 고기에 더 몰두하여 승부를 보려고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보수 세력만 규합하면 반드시 승리해온 역사가 있는데 쓸데없이 헛수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윤석열은 앞으로 안정권에 접어들었다고 믿고 지지기반 다지기에 골몰할 것이다. 더구나 5.18 묘지도 들러 체면치레는 한 마당 아닌가? 어차피 호남권에서는 10% 이상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쭙잖게 진보 세력을 끌어안기보다는 포기하는 것이 편하다. 차라리 그 영혼을 끌어모아 영남과 보수 세력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의 지지는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당분간 오를 기미도 없다. 결정적으로 그는 ‘정권 교체’의 열망에 부응하는 후보가 아니다. 이미 기울어진 필드에 올라선 그이지만 핸디캡도 전혀 주어지지 않고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양상이다. 더구나 여권은 친문과 호남이라는 커다란 파벌이 기득권을 내려놓을 생각을 안 하고 있다. 막연히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것과 마찬가지로 대선에서도 결국 이길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만 시나브로 퍼져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재명이 패한다고 해도 이는 친문의 패배가 아니라는 논리로 자기 합리화를 할 수도 있다. 또한 국회를 장악하고 있기에 윤석열이 집권을 해도 얼마든 제어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하는 것 같다. 이재명은 굴러들어 온 돌이니 진다 한들 어차피 들어온 흔적도 크게 없을 노릇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실 이재명은 현재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진보 진영이 윤석열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너뜨리기보다는 결국 윤석열이 부도덕과 불법 행위로 스스로 자멸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보수 진영은 도덕성, 특히 지나간 부도덕은 별문제 삼지 않는다. 특히 윤석열의 사생활과 가족에 관련된 ‘비정상적 상황’은 가십거리는 될 수 있을지언정 보수 진영의 표심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빨갱이’에 치를 떠는 한국의 보수는 필요하다면 강남에서 태영호도 국회로 보낼 수 있을 만큼 지극히 실용주의적이다. 명분과 도덕과 원칙에 매달리는 진보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의 확실한 승리를 위하여 윤석열이 자멸하는 것 말고 쓸 수 있는 다른 카드는 무엇일까? 내 맘대로 상상을 해본다.
가장 먼저 ‘정권 교체’의 모양을 갖추는 방법이 있다. 열린민주당과 합당을 하면서 당명을 바꾸는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늘 있었던 가장 흔한 이미지 변신의 방법이다. 물론 180석의 이미지가 있는 거대 정당이 겨우 3석을 차지한 난쟁이 정당과 합당을 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합당은 명분이고 실제로는 ‘정권 교체’의 덫에서 벗어나는 데 이처럼 간단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의석수에서는 180석으로 국회의원 전체의 65%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지만, 득표율에서 보면 오히려 현재의 국민의힘인 미래통합당이 33.8%로 민주당의 33.4%에 앞섰다. 간반의 차이지만 지역구가 아니라 전국의 지지율을 따지는 대선에서 이는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 정의당의 9.7%를 합쳐도 진보 진영의 득표율은 40%대 초반이 전부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당시 확보한 41.1%와 거의 일치한다. 진보 진영이 영끌을 하여 자력으로 확보할 수 있는 한계 수치이다. 이러한 진보 세력의 힘을 다 끌어 모으기 위해서라도 당명 교체는 필수적이다. 미래통합당도 총선 패배 6개월 만에 당명을 바꾸는 방법을 통해 그 후유증에서 손쉽게 벗어났다. 더 나아가 그 이후 2021년 보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기사회생하게 되었다. 민주당도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하다. 의석수만 믿고 교만할 때가 아니다.
둘째로 합당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탈당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대통령의 탈당은 개인의 비리에 대한 응징보다는 진영의 인기 회복을 위한 희생양의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19대 대선 때와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인기 회복의 동기가 매우 부족하다. 그러나 바로 이런 상황이 진보 진영의 안일한 자세를 조장하는 덫이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인적 인기는 진보 진영의 장래와 사실상 무관하다. 코로나 정국이 등장하기 전에 문재인 대통령은 문자 그대로 코너에 몰렸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기사회생한 경우이다. 그러다가 부동산 사태로 직격탄을 맞으며 다시 ‘정권 교체’의 집중포화를 맞는 대상이 되었다. 2021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마련해준 국민이 인제 와서 정권 교체를 주장하는 모순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는 20대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의 주군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순교 정신을 이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보인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은 이른바 ‘걸릴 것’이 전혀 없는 상태로 임기를 무사히 마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바로 그래서 스스로 탈당을 한다면 그 자기희생의 효과가 더욱 클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안철수의 분발이다. 이는 진보 진영의 손을 떠난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누누이 강조한 대로 보수 진영은 분열로 자멸했다. 반대로 보수가 집결하면 이명박 같은 전과자도 압승을 거두는 것이 한국의 정치 지형이다. 현재 위기에 몰린 진보 진영은 보수 진영의 분열이 지속되고 강화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안철수가 완주를 호언하고 있고 현재도 그럴 모양새이다. 그가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20% 대의 지지율을 확보한다면 이재명의 필승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 그의 국민의당이 확보한 6.8%만 가져가도 이재명에게 승산이 있다. 양쪽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 상황을 놓고 볼 때 결국 2022년 3월 9일에는 노무현 대통령 때만큼이나 간발의 차이로 승부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안철수가 완주하고 더 나아가 지지율을 많이 확보하도록 민주당이 은밀하게 안철수를 밀어줄 필요가 있다.
현재 진보와 보수 진영은 용병을 내세워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이는 한국 정치 역사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그런데 용병은 고용주의 말을 무조건 잘 듣지 않는 법이다. 대부분 자신에게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만 움직인다. 그리고 승리를 거두면 로마제국의 용병들처럼 박힌 돌을 쳐내고 자기가 왕좌를 차지한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된 이후 서로마제국의 용병이었던 오도아르케는 당시 약관 17세의 로마 황제인 로물루스를 몰아내고 자신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면서 아예 서로마제국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오도아케르는 새로 세워진 이탈리아 왕국의 왕으로 등극한다. 과연 20대 대선이 끝나고 윤석열과 이재명 가운데 누가 오도아케르가 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여야를 막론하고 기득권을 지닌 세력이 마치 망해가는 서로마제국의 원로원의 의원들처럼 자리를 잔뜩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가 자칫하면 소탐대실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
역사는 늘 인간의 예측이 불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우연이 연속되어 결국 역사적 필연이 된다. 변화의 기미는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다만 기득권을 지닌 이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거나 느낌이 와도 짐짓 무시하는 것이다. 사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용병이 필요한 상황까지 몰렸다면 커다란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양 당의 기득권층은 이를 전혀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이재명 살리기 조치는 당장 호응을 얻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비상식과 비정상을 막기 위해 여당이 뭔가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제안해 보았다.
동양 점술의 기원이 된 중국의 <역경>, 다시 말해서 <주역>(周易)에 64괘가 나온다.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답답한 일이 있을 때 단사점을 보아 이 괘를 얻어 미래를 점치곤 했다. 나도 그분들의 지혜를 구해 이재명의 미래를 생각하여 단사점을 보았다. 그랬더니 얻은 괘가 山火賁. 산 아래 해가 있으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비추어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치고 나갈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재명은 자중자애의 시간을 좀 더 가져야 하나 보다. 맘은 급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전망은 밝다.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해 줄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먼저 베풀어야 보답이 있는 것이 자연의 순리 아니든가?
내친김에 윤석열의 단사점을 보자. 水雷屯. 물속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지각변동을 도모하고 있지만 바닷속이니 뜻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조만간 궁지에 몰리게 된다는 괘사인데. 힘들다. 사실 屯은 坎, 蹇, 困과 더불어 <주역>에 나오는 64괘 가운데 가장 안 좋은 4대 難掛에 속한다. 그러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다.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윤석열 진영이 답답한 형국인 모양이다.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법 아닌가?
그러나 단사점은 짧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니 아직 내년 3월까지 쉼 없이 흐르며 변하는 하늘의 운행은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안정을 추구한 유교의 정신과는 달리 파란만장했던 중국과 조선의 역사에서 변화는 어쩌면 당연한 섭리 아니겠는가?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도 별달라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