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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Mar 10. 2022

임종석은 그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입을 언제 닫을까?

민주당의 조종은 이미 울렸다.


 

임종석이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많이 아프지만, 그래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여러분은 패배하지 않았다. 충분히 의미를 남긴 선거였다.” 그리고 “지고도 지지 않은 선거도 있는 법”이라고 덧 붙였다.


아마도 이재명이 윤석열에게 ‘겨우’ 0.73%p 차이로 석패한 것을 지칭한 것이리라. 그러나 이 말을 임종석이 그것도 이제 와서 할 자격이 있나? 25만 표는 심상정이 거두어간 80만 표보다 적고, 무효 처리된 30만 표보다 적다. 뼈가 시릴 만큼 억울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주의이다. 단 1표의 차로 져도 진 것이다.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반성을 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민주당에 임종석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가식이 아닐 수 없다. 이재명이 고군분투할 때 뜨뜻미지근하게 지원하는 척하던 자들이 이제 와서 면피용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대선에서는 이재명이 졌지만 당내 권력 싸움에서는 친문이 주도권을 쥐게 되었으니 마음껏 립서비스라도 할 태세이다. 그러나 이는 오판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곧 다가오는 6월 지방 선거에서 완패를 당해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다. 대선에 가려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3월 9일에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모두 야당, 아니 이제는 여당이 된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두었다. 그런데도 저 모양이다. 민주당의 붕괴는 외부의 충격이 아니라 내부의 자만과 나태가 가져오게 될 것이다.


사실 20대 대선에서 민주당의 패배는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그 판에 이재명이 뛰어들어 결사항전을 해서 겨우 이 정도의 전과를 올인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어차피 이재명은 개밥의 도토리였으니 대선을 꽃놀이패로 여기며 관망했었다. 이기면 다행이고 져도 그만인 것이니 말이다. 순진한 국민들만 열심히 사전 투표하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워가며 투표 과정을 지켜보며 가슴을 졸였을 뿐이다.


180석을 국민이 준 것은 국민의힘과 어쭙잖은 ‘협치’를 하며 꿀물이나 빨라는 뜻이 결코 아니었다. 이명박근혜가 10년 동안 분탕질한 정치적 부패, 곧 적폐를 소탕하라는 소명을 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국민의 염원을 배신하고 경제난과 코로나 사태로 신음하는 국민을 외면하고 강남좌파만 양산해 내던 민주당은 반드시 심판을 받아 마땅했다. 그런 와중에 치러진 대선은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대선에서 이재명이 유탄을 맞은 것이다. 민주당의 미적지근한 지원 아닌 지원을 받으면서 말이다. 결국 이재명은 희생양이었다. 다만 민주당도 이재명이 이 정도 승부근성을 보이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잘못 본 것이다. 


민주당 정권의 문제인, 조국, 추미애가 잘 키워 국민의힘에 넘겨준 윤석열이 정권 교체를 해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에서 그 누구도 진심 어린 반성을 하지 않는다. 사실상 이재명이 단독으로 일궈낸 업적인 0.73%p 차이의 석패라는 ‘성과’에 슬쩍 숟가락 얹기에 바쁘다. 이미 본심은 이미 2년 후의 총선이라는 콩밭에 가있으면서 말이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그것도 180석이라는 어마어마한 의석수로 장악하고도, 실제로  이루어낸 적폐 청산의 성과는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사회적 분노와 좌절의 현상만이 확산되었을 뿐이다. 검찰 개혁은 오히려 염증을 더 심화시킨 꼴이 되었고, 빈부격차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리고 집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넘사벽의 영역으로 건너가 버렸다. 


구체적으로 공수처는 허수아비가 되어 버렸고, 하위 20%의 가구당 부채는 중가하고 상위 1%의 부채는 감소하였다. 주택 가격은 두배 가까이 올랐다. 지역 차, 남녀 차, 학력 차는 줄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 보여준 것은 오히려 그런 차별에서 연유한 대립의 극한이었다. 나라가 지역, 계층, 나이, 성별을 기준으로 정확히 둘로 분열되었다. 흑백 논리가 판치고 이해와 포용은 사라졌다. ‘각자도생’이라는 동물의 왕국의 논리만이 만연하고 있다. 대선과 총선에서 민의를 문자 그대로 몰아주며 키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호언은 공염불로 끝나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국민은 분노하였다. 그럼에도 국정 말기 지지율 40%대라는 환상에 젖어 나태한 정신으로 계속 꿀이나 빨아대며 대선에서 졌지만 진 것이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민주당은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가정이나 집단이나 나라나 붕괴하는 주요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는 법이다. 붕괴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징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에 취해 나태해지다 보면 그것을 보지 못하고, 보아도 무시하게 된다. 비록 대선의 승부가 겨우 0.73%p의 차이로 갈렸지만 이것은 매우 심각한 의미를 주는 사건이다. 국정 말기 지지율이 대선 득표율보다 높은 상황이 오히려 독이 되어 버렸다.


이런 식으로 나태하고 교만하면 6월의 지방선거와 2년 후의 총선에서 다시 사분오열된 민주당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절치부심하고 절차탁마해도 모자랄 판에 골프나 치고 다니는 당직자가 있는 민주당에 사실 미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이미 없다. 흔히 국민의힘이 무식하고 파당적이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사악한 집단으로 묘사하며 민주당을 그 대척점에 있는 윤리도덕적으로 ‘올곧은’ 정당임은 내세운다. 그러나 국민들이 왜 민주당을 내로남불당이라고 하는지 이해를 못 한다면 민주당의 조종은 이미 울린 것이나 다름없다. 참으로 안타까움을 넘어서 분노가 치민다. 어찌 만들어준 180석인데 이런 식으로 강남좌파의 이익이나 도모하는 무리로 전락했다는 말인가? 이런 정당을 대표하여 단기필마로 국민의힘은 물론 엄청난 숫자의 찌라시 언론의 기레기들과 홀로 맞선 이재명은 상징적으로 영웅의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가 아직은 Vallhall에 들어가는 Siegfried가 될 뜻은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장기 집권하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여러 민주국가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서로 돌아가며 정권교체를 이루어 정치계를 정화한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는 더 이상 과거의 진보가 아니다. 강남 좌파가 득시글거리는 귀족 진보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진보가 대변한다는 사회적 약자들이 설자리는 없어져 버린 것 같다. 그들이 보기에 이제는 진보나 보수나 그 나물에 그 밥이 된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왜 사회적 하위 계층이, 20대 남성들이 수구정당인 국민의힘을 지지하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미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기댈 곳이 더 이상 없어진 것뿐이다. 그래서 이른바 ‘입 진보’들로 이루어진 ‘강남좌파’보다는 차라리 세상에 대고 어퍼컷을 날리며 저속한 어휘를 마구 쏟아내며 그들의 분노를 대리 배설하는 자가 더 좋은 것이다. 마치 술처럼 최소한 기분이라도 좋게 만들어주니 말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술 말고 무엇이 위로가 되겠는가? 


그런데도 민주당은 아직도 어설픈 도덕군자 놀음이나 하고 있다. 국민들은 민주당도 이미 기득권 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 정작 민주당만 국민이 그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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