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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Mar 10. 2022

이준석과 심상정은 손뼉 치며 떠나라?

한국 정치판에서 뭉개는 실수를 하면 안 된다.

이번 대선 정국에서 36세의 어린 나이로 문자 그대로 ‘설쳐댄’ 이준석의 향후 ‘처리 방안’이 국민의힘 내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모양이다. 당연히 이준석은 조만간 떠나게 될 것이다. ‘용도 폐기’ 수순을 밟을 것이니 말이다. 


아무리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라도 최소한의 정치의 예와 품격을 이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아래에서 치고 올라온 이준석은 특히 이번 대선 기간 중에 까마득한 정치 선배들을 무례하게 대하며 스스로는 그것을 젊은 발랄함으로 이해한 모양이다. 36세면 MZ세대에서도 노티 풀풀 나는 복학생 수준인데도 말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가부장적 문화가 강하게 남은 사회이다. 이 문화에서는 남녀유별 못지않게 장유유서를 무척 따진다. 겉으로는 나이를 초월하여 실력으로 평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의 모든 집단에서 나이와 예절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MZ세대 사이에서 조차 서열을 중시한다. 그런데 이준석은 버릇이 없다. 그것은 결코 장점이 아니다. 통통 튀는 모습은 방송에서나 통하는 법이다. 


이준석이 대선 기간 동안 보여준 모습은 참신함이 아니라 오히려 애늙은이가 방정을 떠는 것뿐이었다. 아마 거친 입과 건방진 태도가 꼰대를 혐오하는 이른바 ‘이대남’들에게 어필한다고 여긴 모양이지만 결국 그가 장담한 20대의 지지율에서 오히려 윤석열이 이재명에게 지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이준석이 지고 가는 것이 맞다. 특히 이대남의 환심을 산다고 여성을 노골적으로 갈라 치는 언행을 펼친 결과 이른바 ‘이대녀’를 이재명에게 빼앗겼고 이대남의 지지도 서울 시장 보선 때와 같은 환상적인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제 그의 ‘쓸모’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더구나 ‘어린’ 그리고 무늬만 당대표로 실무 경험이 없는 자가 서열을 끔찍하게 따지는 검찰 출신의 윤석열 정부에서 살아남을 길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방송에 돌아가 김구라 무리와 입을 맞추고 놀면 밥걱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박수를 쳐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박수를 치고 떠나면 된다.


과연 20대 대선에서 이준석은 무엇을 남겼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깊은 여운이 남는 것은 전혀 없다. 그저 가볍게 놀리는 입과 행동에 더해 자기를 무시한다고 ‘어른들’ 앞에서 떼쓴 정도? 그러니 알아서 떠날 때 떠나야 할 것이다. 


그 대척점에 선 정의당 심상정은 어떤가? 1959년생. 윤석열보다 위다. 3선의 관록이 있고 대선에도 단골로 ‘찬조 출현’했다. 그러나 이번 20대 대선에서 2.37%의 득표율로 정의당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그 ‘약발’이 다한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 주었다. 그의 입으로 ‘백의종군’이라는 단어를 읊조렸지만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심상정이 이재명을 공격하며 여성표를 최대한 끌어보았지만 80만 표에 머물렀다. 그런 데다가 결국 24만 표로 승부가 갈린 초박빙의 이재명, 윤석열의 양자 대결에서 80만 표가 실질적으로 사표가 된 결과를 놓고 그에 대한 비난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심상정이 단일화하거나 중도 사퇴를 했다면 승부가 이재명 쪽으로 기울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은 현실에서 더더욱 그에 대한 비난은 한 동안 지속될 것이다.


한국 진보 세력의 전성기는 노회찬이 이끌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의 정의당은 그의 희생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이는 마치 문재인 정권이 노무현의 희생을 발판으로 기사회생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어느 조직이나 위대한 영웅의 자기희생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독교조차도 교주인 예수의 희생을 이천 년이 넘도록 그 생존의 자양분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당도 마찬가지이다. 희생까지는 아니어도 한 정당의 역사에서 상징적인 인물이 그 정당의 존재 의미를 부여한다. 독일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가 그렇고 독일 기민당의 콘라드 아데나워가 또한 그렇다. 미국의 민주당에는 앤드류 잭슨,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가 있다. 미국 공화당에는 에이브러햄 링컨, 허버트 후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있다. 그리고 국부로 존중받는 조지 워싱턴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정당사에는 그런 인물이 없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여전히 파당적 논쟁의 대상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현대 정치사의 역사가 아직 일천한 탓으로 돌리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정치사에서도 독일 정치만이 아니라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정치가를 가지고 있다. 콘라드 아데나워는 극단적인 반공주의자이며 보수주의자였다. 그래서 진보 진영에서는 그를 증오하기까지 하였다. 그의 사생활에서는 주식 투기와 관련된 추문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사후 그가 독일이라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바친 노력은 진보와 보수 진영을 넘어서 사회 전체적인 존중을 받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대척점에 있던 빌리 브란트는 사생활에 관련된 추문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독일 통일에 기여한 공로 또한 진보와 보수 진영을 막론하고 여전히 깊은 존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에서는 어떤가? 이승만을 두고 수구 세력은 국부로 추앙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진보 세력은 독재 정치로 한국 정치 발전을 처음부터 가로막은 장본인으로 비난하고 있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을 달리며 진영 논리의 희생물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잘못은 손뼉 칠 때 떠나지 못한 그 ‘욕심’에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하여 그 공과를 두고 논쟁을 벌일 수 있지만, 둘 다 영구 집권을 위하여 헌정 질서를 파괴한 것은 분명히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다.


물론 이준석과 심상정은 위에서 예로 든 ‘어마어마’한 인물들과 비교할 수준에 있지 못하다. 그러나 정치 바닥에서 ‘놀았으니’ 그 인물들을 모범 삼아, 또는 타산지석으로 삼아 떠날 때를 알아야 뒤탈이 없을 것이다. 사실 남이 손뼉 칠 때 떠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정말 잘난 줄 알고 기고만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라리 남에게 손뼉 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떠나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언제 손뼉 치냐고? 박수받고 싶을 때 치면 그만이다. 그때를 이준석과 심상정이 제대로 알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를 놓치면 추한 퇴로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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