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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Feb 10. 2023

마돈나의 분노가 이해되나?

‘성괴’는 시대정신을 보여준다.

Grammy Awards 행사에 나온 마돈나  Credit: Frazer Harrison/Getty Images

    

한국이 세계 최고의 성형 왕국이 된 지 오래지만, 그 이전에 미국은 성형을 넘어 ‘성괴’ 왕국이 된 지는 훨씬 더 오래되었다. 미국에서 영화 산업이 번성하기 시작한 1930년대부터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특히 여자배우 얼굴에 ‘칼질’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나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미국 연예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성형 중독은 남녀를 불문하고 이제 거의 중증에 이른 경우가 많다. 마이클 잭슨의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돈나도 그 길에 들어선 느낌이다.     


이번 Grammy Awards 행사에서 마돈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탄식했단다.     


“[I am] caught in the glare of ageism and misogyny that permeates the world we live in.”


CNN은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마돈나의 인스타그램의 글도 소개한다.


The 64-year-old musician clapped back at the remarks, saying in her Instagram post that the world "refuses to celebrate women past the age of 45."(출처:Madonna hits back at ageist criticism after Grammy Awards appearance - CNN Style)

     

맞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한국과 미국을 막론하고 노인과 여성 혐오라는 시대정신의 질병에 걸려있다. 그래서 특히 여자들이 오는 나이는 막을 수 없지만 추하게 늙은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혈안이 된 것이다. 몸이 노쇠한 것은 명품 옷과 장신구로 감추고 남에게 쉽게 노출되는 얼굴에는 톱질, 칼질, 바느질하는 것도 모자라 주사약으로 ‘추하게 늙어가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젊게 보이는’ 얼굴이 몸의 다른 부위 특히 ‘노쇠하고 거칠어진’ 손과 극명한 대비를 보여 더욱 추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전에는 목의 주름이 얼굴과 바로 대비되어 추했는데 요즘은 목의 피부를 ‘땅기는’ 수술이 발달하여 어느 정도 ‘커버’가 되는 모양이다.

     

문제는 그렇게 엄청난 돈과 공을 들인 얼굴마저 결국 늙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나이가 들면 손을 안 댄 얼굴보다 성형한 얼굴이 더욱 추해진다. 분명히 마돈나는 64세로 생물학적으로 ‘노인’인데 얼굴에는 주름이 한 개도 없다. 그러나 그런 불균형이 더욱 추해 보인다. 이른바 ‘나잇값’을 못 하는 추함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사회의 편견, 특히 남성들의 편견을 변명거리로 삼는다. 늙고 추한 여자를 세상이 싫어한다는 것이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더 나아가 피해자다.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는 시대정신을 마돈나가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자신은 그저 피해자일 뿐이라는 말이렷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늙고 추하게 변하는 것이 ‘정상’이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나이가 들어도 ‘원숙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언론이 사탕발림해도 진실을 막을 수는 없다. 늙으면 추해진다는 것은 진리다. 그리고 그런 사탕발림은 대부분 늙어 추해진 모습을 혐오하는 여성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자본가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사악한 자본가들은 화장품을 바르고 영양제를 먹고 얼굴에 칼질하면 젊어진다고 여자들을 속인다. 그러나 그 어떤 화장품도 영양제도 수술도 노화라는 엄연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 법칙을 어기면 여자들의 허영을 이용하는 자본가의 놀음에 놀아날 뿐이다.

    

세상 사람은 늙고 추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늙으면 무기력해지고, 지력도 감퇴하고, 무엇보다 육체적 아름다움이 사라진다. 아무리 뛰어난 노인학 전문가가 ‘아름다운 노인’에 관한 화려한 이론을 펼쳐도 다 헛소리다. 추해진 외모가 눈에 보이는 데, 어찌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이 들면 분명히 외모가 추해진다. 피부의 윤기가 사라지고, 주름이 늘고, 얼굴 근육이 처진다. 허리도 구부정해지고 걸음걸이도 매우 불안해진다. 잘못해서 넘어지면 넓적다리관절이 부러져 영영 자리에서 못 일어날 수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 관절이 다 쑤신다. 눈도 침침해진다. 입맛도 예전 같지 않다. 발음도 어눌해진다. 얼굴을 만져보면 푸석하다.      

얼굴의 주름살에 삶의 경륜이 느껴진다고? 새빨간 거짓말이다. 주름살은 분명히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경륜’은 그저 추하게 늙어가는 것을 위로하는 말에 불과하다. 그리고 나이 들어 인격적으로 원숙해져서 외모의 변화를 능가하는 찬란함으로 타인의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외모만이라도 노화를 비켜 가도록 해 보겠다고 얼굴에 손을 대면 결국 더욱 추해진다. 잠시 젊어졌다는 착각만 하게 될 뿐이다. 그리고 그 착각을 하며 만족하는 성형 괴물들은 사회에 커다란 민폐가 될 뿐이다. 그 성형하여 괴물로 변한 얼굴을 바라보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공포를 느껴야 하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성형 괴물들은 모르거나 무시한다. 나만 만족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극단적 이기주의자들인가?     


마돈나의 경우가 바로 이러한 늙어가는 것에 대한 혐오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극단적인 성형을 하고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젊은 남자를 파트너로 삼는다. 그것도 수시로 바꾸어가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냉정하게 다가오는 나이를 막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잊어보겠다는 속셈이다. 그러나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마돈나가 속한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리는 포유류의 한 종은 나이 80살 정도에 육체적, 정신적 활동을 종식하고 다음 세대에 이 땅을 물려주도록 처음부터 설계된 존재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생의학이 발달해도 그러한 설계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런 설계를 신이 했든 자연의 이법이 했든 별 상관이 없다. 현실의 법칙은 냉정하게 돌아갈 뿐이다.      


인간의 몸은 어차피 20살부터 생물학적인 노화 과정을 시작한다. 다만 20~30대에는 그 과정이 시작 단계라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 노화 과정이 축적되어 마돈나가 말한 대로 여자 나이 45살이 넘으면 아무도 찬미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특히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이 세상에서 ‘늙은’ 여자를 누가 찬미할까? 여자 나이 45세면 몸이 폐경을 준비할 나이다. 자연이 그 여자를 미워해서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45세 이상이 된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여자 자신이나 아이에게 위험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연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족을 유지하기 위하여 여자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뿐이다. 과거에는 45살이면 남녀를 불문하고 자식이 또 생식할 나이가 되어 그 자리를 물려주어야 했다. 오늘날 의학이 발달하여 50이 되어도 큰 어려움 없이 아이를 낳는 여자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중대한 ‘범죄’다.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자신의 욕심으로 바로 자신의 아이와 자연에 폐를 끼치는 일이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서 일부 여자는 그런 자연의 순리를 인권, 여권, 페미니즘을 명분으로 거부한다. 극단적 이기주의가 찬미되는 시대정신이 반영되고 있다.     


45세 이상이 된 여자들이 이제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는 이유는 그보다 어린 그래서 더 건강하고 더 아름다운 20~30대 여자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45세 넘은 여자도 그 나이에 세상의 찬미를 받았다. 그렇게 한 번 받고 무대를 내려가야 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 45세에도 심지어 50이 넘어도 자신이 20~30대에 받았던 찬미를 계속 누려야겠다고 무리수를 두면 천박해질 뿐이다. 이미 세상에 젊고 아름다운 20~30대의 여성이 넘쳐나는 데 누가 45세 넘었는데도 여전히 20~30세처럼 ‘보이려고’ 얼굴에 칼질하는 여자를 찬미하겠는가? 더구나 마돈나는 64세다. 한국이라면 지하철 무료승차권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할 나이 아닌가? 그런데 여전히 자기를 찬미하지 않는다고 화가 나서 주름을 가리려고 얼굴을 풍선처럼 부풀게 만들고 있는데 도대체 누가 그를 찬미해야 하는가 말이다. 그리고 무엇을 찬미해야 하나? 얼굴을? 몸매를? 성격을? 지력을? 인성을?  


그런데도 어쭙잖은 사이비 페미니즘에서는 여자가 50살에도 아이를 낳은 당당한 권리가 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과연 그 50살 넘은 여자가 낳은 아이 자신의 권리는 누가 찾아주어야 할까? 출산과 양육은 여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생명과 인권에 더 깊이 연관된 문제이다. 그런데 마치 아이를 ‘가지는’ 것을 애완견 입양하는 것쯤으로 여기는 사이비 페미니즘이 범람하면서 생명 존중 의식이 희석되고 말았다.  

   

마돈나와 같은 여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이다. 자본가의 농간에 넘어가 얼굴에 칼질하기 시작했기는 하다. 그리고 한번 얼굴에 칼을 대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피부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땅기고, 더 시간이 지나면 얼굴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무한 A/S가 필요한 것이 바로 성형이다. 앞에서 말한 마이클 잭슨이 그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마돈나가 자본가의 유혹에 넘어간 순진한 희생자 코스프레하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다. 그 얼굴에 ‘칼질’을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은 의사나 남자나 사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범은 아니어도 적어도 공범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성괴가 되어 다른 사람의 기분을 불쾌하게 한 소죄가 아니라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 대죄를 지었다.   

  

그러니 마돈나만이 아니라 ‘성괴’로 보이는, 그래서 타인의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들은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민폐’를 끼친 것에 대하여 용서를 구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성괴가 그런 반성의 말과 행동을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세상이 말세가 되어 그런가? 참으로 우울한 날이다.


그래서 마돈나의 사주를 보았다. 그러나 발설하지 않는 것이 좋아 보여 생략한다. 다만 미국의 한 인터넷 매체에 올라온 기사의 제목이 내 맘을 대변해 주어 인용해 본다.


‘Unrecognizable’ Madonna proves she is a clueless narcissist.(출처: 'Unrecognizable' Madonna proves she is a clueless narcissist (nypost.com) )


그렇다. 그 여자의 과거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는데 어찌 그 여자를 존경은 고사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본모습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인위적인 모습을 만들어가다가 결국 성형 괴물이 되어버린 여자에게 사회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자아도취에 빠져 여기저기 나대며 화보 사진을 찍어 온 사방에 뿌리는 '성괴'가 어디 마돈나뿐일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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