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선 연일 '십자가'가 거론되고 있다. 한 비명(非이재명)계 의원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는 장면이 담긴 '마태복음 27장'을 이 대표 앞에서 읽은 사실이 전해지는 가 하면 최근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무더기 이탈표가 나온 것을 두고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층인 개딸(개혁의딸)들이 색출 작업에 나서자 비명계는 나치 시대에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려는 '십자가 밟기'에 비유하며 비판에 나섰다.”
<마태복음> 27장은 빌라도 앞에 끌려간 것으로 시작되는 예수의 수난사를 매우 간결하게 요약한 장이다. 사실 27장은 그다음에 나오는 28장의 부활한 예수를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서론에 불과하다. 이 두 장은 예수 이야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성경적 사건에 더해 민주당의 이상민이 말했다는 이른바 나치 시대 기독교 신자 색출을 위한 ‘십자가 밟기’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한 마디로 나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집단이다. 그들이 기독교 신자 색출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명색이 기자면 그리고 기레기라는 말을 듣기 싫다면 남의 말을 Ctrl+C Ctrl+V하기 전에 최소한 ‘팩트 체크’는 하는 것이 기본이자 인간적 도리 아닌가?
나치의 Führer und Reichskanzler였던 히틀러마저도 매우 신앙심이 깊은 가톨릭 신자였다. 그래서 주일이면 경건하게 신부 앞에서 예수 이름으로 미사를 드렸다. 그런데 무슨 ‘십자가 밟기’ 타령인가? 나치 독일 당시 독일의 기독교는 개신교와 가톨릭 구분 없이 히틀러가 세운 제3제국, 곧 신성로마제국과 독일제국에 이어 마침내 기독교의 천년 왕국을 완성할 제국의 위대한 영도자가 될 것임을 역설했다. 그래서 독일 기독교가 나치에 적극 협조한 것이다. 그런데 나치가 미쳤다고 기독교 신자 색출을 왜 하겠는가?
아마도 민주당의 이상민이 과거 일본에서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여 제거하려던 영주들이 신자로 의심되는 자들로 하여금 밟고 지나가게 했다는 고상이나 마리아상을 엉뚱하게 나치와 연계시킨 모양이다, 그것을 중앙 찌라시에서 밥 벌어먹는 기레기가 아무 생각 없이 받아 적고 있는 모양이고. 그저 민주당을 분열시키고 이재명을 욕되게 할 수 있으면 거짓말도 무조건 받아 적으면 그만이라는 말인가? 정말 <중앙일보>가 이런 수준밖에 안 되나? 찌라시가 맞나? 기레기인 것을 자인하나? 그렇게 쓰고 나면 홍석현이 공짜로 저녁이라도 사주나? 한심한 작자들이 국회의원을 하는 것도 분통이 터지는데 기레기마저 이 모양이니 도대체 이 나라에서 어찌 살아야 할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십자가 밟기’ 사달이 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섬나라 쪽발이들의 우두머리 가운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작자부터 기독교 신자를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워낙 쪽발이들의 전통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는 전통 아닌 ‘전통’이 있지 않았나? 게다가 간사하기가 이를 데 없는 민족이라 사람을 야비하게 죽이는 데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자들이었다. 그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아시아의 다른 민족들을 대상으로 그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 바로 쪽발이들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한 731부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역사적 사실이 이런 데도 진실을 왜곡하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 국회의원을 하고 기자를 하는 것이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이다.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라고도 밥이 넘어가나? 거짓말은 10계명에서 죽을죄에 속하는 무시무시한 죄인데 다들 겁대가리를 상실한 모양이다.
각설하고...
<마태복음> 27장은 짧지만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가 <마태 수난곡>(Matthäuspassion)을 만들 만큼 예수의 최후를 둘러싼 극적인 장면을 모은 글이다. 그런데 이 27장의 내용에는 예수의 수난과 더불어, 그 어마어마한 열두 사도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은전 30개를 받고 자기가 열심히 모시던 주님인 예수를 배신한 유다의 이야기가 극적으로 묘사된 장면이 담겨있다. 만약에 이재명이 예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수박’이 있다면 그는 누가 유다가 되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재명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이낙연을 군주로 모시는 패거리 말고 누가 유다의 역할을 더 잘할 수 있겠는가?
<마태복음> 27장을 인용해 보자.
“그때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는 그분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것을 보고 뉘우치고서는, 그 은돈 서른 닢을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돌려주면서 말하였다. ‘죄 없는 분을 팔아넘겨 죽게 만들었으니 나는 죄를 지었소.’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네 일이다.’ 하였다. 유다는 그 은돈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수석 사제들은 그 은돈을 거두면서, ‘이것은 피 값이니 성전 금고에 넣어서는 안 되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의논한 끝에 그 돈으로 옹기장이 밭을 사서 이방인들의 묘지로 쓰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 밭은 오늘날까지 ‘피밭’이라고 불린다.”
물론 <사도행전> 1장에는 유다가 자살하지 않고 벌을 받아 죽었다는 내용도 나온다.
‘유다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리와 함께 이 직무를 받았다. 그런데 그자는 부정한 삯으로 밭을 산 뒤, 거꾸로 떨어져 배가 터지고 내장이 모조리 쏟아졌다.’
자살을 하든 배가 터져 죽든 배신자의 말로는 늘 비참한 법이라는 대원칙을 성경도 어김없이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리라.
그런데 성경의 이 장면과 이재명의 구속을 둘러싼 현재의 사달이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이기는 한다. 유다가 은전 30개에 이른바 배신을 때렸는데, 민주당의 수박도 30명 정도가 배신을 때렸다. 그런데 그들의 미래가 어찌 될지는 성경이 보여주고 있지 않나?
이재명이 과연 예수가 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기독교를 전혀 모르는 자가 아무 생각 없이 지껄인 것을 그대로 받아 적고도 신문 입네, 기자 입네 하는 이 한국의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재명은 ‘순교’와 거리가 먼 팔자를 살 사람이다. 니체가 말하는 권력의지(Wille zur Macht)를 이재명 정도 가진 정치인이 한국에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사실 이낙연 정도는 이재명에 비하면 문자 그대로 ‘쨉’도 안 된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지금 그 자리에 오른 윤석열과 입만 살아 있는 참을 수없이 가벼운 한동훈이 작심하고 이재명을 짓밟아 버리려고 하는데 아마 결국은 mission impossible로 귀결될 것이다. 사실 이재명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한 것이 맞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이재명의 운명이다. 여기에서 노무현 대통령님과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재명은 노무현 대통령님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운명을 타고났다. 한마디로 이재명은 십자가에 매달릴 팔자가 아닌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정치적 동지는 물론 국민의 몰이해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질 때까지 그분은 오로지 국익과 국민을 위해 버텨보시다가 이명박의 간계로 결국 마지막 선택을 하시고 불귀의 객이 되셨다. 그러나 이제 그분은 사즉생으로 영웅이 되셨고 이명박은 생즉사로 추레한 몰골이 되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돌아가셨지만, 불멸의 영웅이 되셨고 이명박은 살아 있지만, 참된 의미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명박의 철학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것 같으니 별 후회는 없겠지만 욕되게 사느니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고 역사에 영웅으로 남는 것이 진정한 사나이 아닌가? 물론 이명박 수준의 인간에게 사나이 운운하는 것이 가소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주를 보아도 이재명은 타고난 팔자로 사람들의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재명은 아무리 구석에 몰려도 노무현 대통령님과 같은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의 권력의지보다 더 강한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맹목적인 생의지’(der blinde Wille zum Leben)가 그를 강인하게 살도록 하기 때문이다. 마치 한반도에서 반만년 역사를 이어온 민초의 정신을 반영하듯 그는 짓밟힐수록 더욱 살기 위해 힘을 낼 것이다. 사주에서 겨울 정화만큼이나, 아니 더 강한 것이 을목 아닌가? 윤석열, 한동훈만이 아니라 이낙연도 사람 잘못 보았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중앙일보>가 이재명 때려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수박 패거리가 세 과시를 하고 윤석열이 모든 욕을 들어가면서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는 이유는 뻔해 보인다. 변희재가 말하는 대로 정치판을 크게 흔들어 일본의 자민당식 내각제로 영원무궁 권력을 잡아보려는 수작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지만 한국에서 내각제는 반드시 실패한다. 한국의 ‘토착왜구’가 경탄해 마지않는 일본의 내각제는 일본만의 고유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괴물’이다. 일본의 내각제는 유럽 진품의 짝퉁에 불과하다. 원숭이가 사람 흉내를 낸 꼴이다. 물론 근세 이후 특히 한국의 정치와 산업이 일본의 짝퉁으로 버텨온 짧지 않은 역사가 있지만 내각제만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짝퉁의 짝퉁이 성공하는 경우는 없다. 불량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수박들은 내각제가 되면 30석 정도로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리고 이른바 ‘수구 세력’은 영남의 55석만으로 다수당이 될 자신이 있는 모양이지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수작이다. 수천 년을 이어온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의 역사를 지닌 한반도에서 지방 영주들의 이합집산에서 나온 분권적 정치제도인 내각제에 익숙한 유럽이나 짝퉁인 일본의 내각제를 실현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갓 쓰고 자전거 타는 꼴이 될 것이다.
52년생 이낙연은 이제 칠순이 넘은 나이다. 이상민은 58년 개띠니 6살 어리지만 문자 그대로 환갑 진갑을 한참 넘은 나이다. 앞으로 살날보다 이미 살아온 날이 훨씬 많다. 그리고 사주를 보아도 둘 다 무병장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운명을 안 다면 결코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 늙어 권력에 눈이 어두워 추레하게 사는 것만큼 한심한 일은 없다. 부디 분수를 알고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에 감사하며 자중자애하고 이제 후대에 자리를 내주는 연습을 시작하기를 바랄 뿐이다.
내각제를 바라는 세력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분열되면 최소한 4개 정파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그리고 ‘수구’와 ‘수박’이 합쳐서 문자 그대로 영호남이 화합하면 권력을 좌우할 다수당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일본을 아무리 숭상해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치에는 강력한 대통령제만이 맞는다. 아무리 이른바 ‘동서화합’으로 사탕발림을 해도 안 통할 것이다. 뭐 시간이 진리를 말해 줄 것이니 일단은 기다려 볼밖에 없다. 그러나 그 진리를 모두가 알게 될 때까지 이재명은 물론 국민이 겪어야 할 고초를 생각하면 참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