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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Mar 12. 2023

<더 글로리>의 안길호의 기억력은 왜 선택적인가?

폭력을 미화하는 사회의 집단의식이 더 무섭다.

학폭을 주제로 다룬 <더 글로리>로 문자 그대로 뜬 안길호가 결국 학폭 당사자였음을 고백하고 사과했단다. 그런데 며칠 전만 해도 강하게 반박을 했던 터라 더욱 괘씸하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사과한 것이 아니라 법무법인의 변호사를 내세워 입장문을 내고 ‘대리’ 사과를 했다. ‘개 사과’ 시리즈의 연장인가? <더 글로리>로 유명해지고 돈 좀 벌더니 이제 뵈는 게 없나 보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변호사가 기자의 질문에 답한 내용이 더욱 가관이다. 다음은 <KBS 뉴스>에 나온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안 PD의 입장이 바뀐 것과 관련해 "당시 친구들을 수소문해 학창 시절 시간을 수없이 복귀했다"며 "본인 기억이 희미한 데다 사건을 왜곡해 인식하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고 전했습니다.”(참조: 더 글로리’ PD 과거 폭행 사실 인정용서 구해” (daum.net))     


처음에는 “필리핀에 1년 정도 유학한 것은 맞지만 한인 학생들과 물리적 충돌에 엮였던 적은 없었다.”는 매우 논리적인 말로 변명하더니 도저히 안 되겠던 모양이다. 도대체 이게 말인가 방귀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이른바 ‘출세’하고 나면 모두 특히 자기에게 불리한 과거의 악행에 대한 기억 상실증에 집단으로 걸리는 특성이 있나 보다. 그러다가 상황이 심각하게 불리해지면 갑자기 기억력이 명민해지고. 참으로 신기한 ‘선택적’ 기억력이다.    

 

그런데 더 문제는 이런 사태에 대한 이른바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상당수가 그 당시 여자친구를 놀려서 때렸다는 변명에 주목하며 학교 시절에 주먹 한 번 휘두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겠냐는 것이다. 이런 폭력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약자에 대한 폭력 감수성이 매우 낮은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다. 안길호도 인정한 그 당시의 전후 사정을 보니 명백한 집단 폭행이다.     


필리핀 유학 당시 안길호가 포함된 고등학생 10여 명이 중학교 2학년 학생 두 명을 2시간 가까이 집단 폭행했단다. 조폭의 행동하고 무엇이 다른가? 폭력을 미화한 영화 <친구>를 좀 본 모양이다. 그 주인공을 흉내 내고 싶었던 것인가?     


안길호의 약력을 보니 연대 대학원을 2010년에 졸업했단다. 그 이후 뭘 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2007년부터 2016년까지 SBS PD로 있은 다음 프리랜서로 일해오다 이번에 대박을 쳤단다. 아마 개인 경험이 작품에 녹아들어 매우 실감 나게 연출을 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1996년에 그 폭력 사태가 났고 그 당시 안길호가 고3이었다고 하니 나이가 가늠이 안된다. 그런 데 그 사달이 난 발단이 중2 피해자들이 안길호의 이름을 비틀어 ‘안 길어’라고 했단다. 이 말을 놓고 일부 네티즌들이 성적 비하였다고 들고 나왔다. 그러나 당시 이 사달의 주인공이었던 고3 안길호의 중2 여친이 직접 나와 다음과 같이 해명을 했단다. <조선일보>를 인용해 본다.   

  

“이 같은 논란에 당시 안 PD의 여자친구 B씨는 한 매체를 통해 직접 인터뷰를 공개했다. B씨는 ‘친구들은 안 PD의 이름을 바꿔 '안길어'라고 놀렸다’면서 ‘일부에서는 이 단어가 '성적인 농담'이라고 해석을 하는 데 당시 성적인 농담을 할 나이도 아니었고, 당시 롱다리 숏다리가 유행하던 때인데 다리가 짧아서 놀리는 그런 식의 놀림이었다’고 덧붙였다.”(참조: https://www.chosun.com/entertainments/broadcast/2023/03/12/F5MCV3XLLSF2O23JNHWIE2Q46E/)      


전후 사정이 이런데도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안길호의 폭력을 옹호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윤석열이 말한 대로 대한민국의 자유, 자유, 자유의 나라다. 그러나 그 자유가 진실을 왜곡하고, 패거리를 지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할 방종과 혼동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가진 자, 유명한 자, 힘 있는 자가 가난하고 무명이며 힘없는 자를 억압하고 집단 린치를 가할 자유는 문명국가 어디에서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오래전에 지은 죄라도 죄는 죄다. 그저 유명 법무법인의 변호사를 시켜 대신 심심한 사과문을 발표하는 버리장머리는 도대체 어디서 배운 것일까? 출세하고 성공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이 사회의 질병의 병리 현상을 안길호에게서도 발견하게 되어 입맛이 매우 쓰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송혜교가 주연을 맡아 열연하여 또 한 번 K-문화의 전도사가 될만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소식에 기뻐마다하지 않았던 차라 심한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 나라의 하늘에 떠도는 모든 집단 폭력, 곧 학폭, 검폭, 조폭의 악마가 언제나 사라질까? 참으로 암담하다. 학폭을 저지른 이가 학폭을 고발하는 작품으로 유명해지는 이 아이러니를 바라보며 이 사회가 정말 얼마나 썩은 것인지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나라 전체가 양심에게 툭하면 ‘개 사과’나 던지는 시대가 되고 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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