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한 나라의 국토부 장관이 십 년 동안 공들인 국책 사업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그것도 임명권자이고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일체 논의도 없이 말이다.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다. 원희룡을 다시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관련 자료를 이리저리 구글링 해보니 대충 ‘견적’이 나온다. 처음에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 존엄’의 친인척이 지닌 부동산 문제를 건드린 대역죄 때문에 미리 알아서 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결론은 내년 총선이었다. ‘겨우 5년짜리’, 아니 이제 4년도 안 남은 최고 존엄은 역린일 수가 없는 법이 아닌가?
문제가 된 도로의 종점이 양평인데. 양평은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 지역이다. 그리고 양평군은 여주시에 붙어 있는 곁다리라서 결정적인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최후에는 버려도 되는 카드다. 이른바 밑져야 본전이니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이 지역의 투표 전력을 보면 도로를 안 깔아 준다고 배신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모든 길은 양평이 아니라 여의도로 통한다. 총선의 전체적 그림에서 양평은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더구나 지역구 당선자인 김선교의 정치자급법 위반에 따른 의원직 상실로 지역 민심을 대표할 사람도 없다. 그런 ‘썩은 정치인’을 뽑는 동네이니 무시당해도 별일 없을 것으로 최종 판단을 내린 것이다.
김선교 이전에 양평군 시절 이 지역의 터줏대감은 정병국이었다. 그는 새누리당 소속으로 늘 압도적인 표 차로 내리 5선을 한 관록을 보였다. 그래서 이 지역은 언제나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여겨졌다. 민주당이 수도권을 싹쓸이할 때도 이 지역은 의연하게 현재의 국민의힘을 선택했다. 김선교가 후보 때부터 많은 잡음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20대 대선 때에도 수도권에서는 매우 드물게도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압도적으로 제친 곳이다. 경기도 도지사 선거에서 국민의힘의 김은혜에게 몰표가 간 곳도 이곳이다. 대선과 더불어 치러진 지방 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의 후보였던 전진선이 압도적인 표 차로 이겼다. 박근혜 탄핵으로 촛불 민심이 전국을 휩쓴 19대 대선에서도 이 지역만큼은 의연하게 문재인 후보 대신 홍준표 후보를 밀어주었다. 가히 수도권의 TK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러니 국민의힘이 맘대로 해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단순히 지역구 계산으로만 원희룡이 도로 공사 중단을 선언했다고? 정치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살아온 그가? ‘개 사과’가 웃을 일이다. 1981년 제1회 대입학력고사 전국 수석, 서울대 법대 수석 입학, 24회 사시 수석 합격의 관록을 지닌 ‘천재’가 바로 원희룡이다. 검사와 변호사 생활을 ‘잠깐’하고 2000년부터 한나라당에서 정치 생활을 시작했으니 벌써 그 바닥 생활 20년이 넘는다. 제주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늘 수도권에서 권력의 중심을 맴돌며 16, 17, 18대 내리 3선을 서울 양천구(갑)에서만 했다. 그러더니 2014년부터는 고향으로 내려가 민선 6.7기 제주 지사를 연임했다. 그리고 기어코 7대 국토교통부 장관에 올랐다.
그가 바라는 것이 ‘겨우’ 장관이겠는가? 더구나 장관의 수명은 짧다. 언제든 버려도 되는 카드다. 내년 총선이 끝나면 윤석열 정권은 내리막에 들어선다. 그 정부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22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윤석열 정부보다 훨씬 길다. 수석의 머리로 계산해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가? 지역구를 노리기 위해서 장관을 버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시절 그가 3선을 한 양천구(갑)는 14대부터 19대까지 내리 민자당, 신한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이 당선된 서울의 TK 지역이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 바람이 불어 민주당의 황희 후보가 승리하고 연임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 황희가 승리한 이유는 박근혜 탄핵 바람보다는 원희룡이 이 지역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한 지역주민의 분노가 더 컸다. 지하철 9호선을 급행이 아니라 완행으로 만들고 더구나 전철역도 목동 중심이 아닌 외곽 지대에 건설해 버린 것이다. 그런 '원죄'가 있는 원희룡이 인제 와서 이 지역을 다시 비집고 들어가기는 벅차다. 그렇다고 연고지인 제주로 내려가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는다. 도지사까지 했는데 말이다. 그러니 대통령실에 절대 충성을 보여 무혈입성할 지역구를 하사 받는 것이 급선무 아닌가? 그동안의 관록으로 권력의 냄새를 맡는 능력이 거의 절정에 오른 원희룡이다. 국회의원만 된다면 뭐든 다 내 던질 수 있다. 장관? 그것은 ‘개 사과’ 급도 안 된다.
어차피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거의 환골탈태의 공천이 이루어질 것이다. 30%대 초반의 박스권 지지율에 갇혀 있는 윤석열 정부의 후반기를 잘 버티고 퇴임 이후도 ‘보장’ 받기 위해서는 무조건 승리해야만 한다. 그러나 외교나 경제에서 점수를 딸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가망이 없다. 그렇다면 결국 지역구도로 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늘 보아온 대로 남한의 동부는 국민의힘의 텃밭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충청권도 승산이 높다. 학연, 지연, 혈연이 합리적 이성을 초월하는 나라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수도권에서 반타작만 한다면 과반수를 넘길 확률이 매우 높은 것 아닌가? 20대 총선 정도만 되풀이하여 민주당을 이길 수 있다면 그만이다. 대통령실에서는 170석 이야기도 나온 모양인데 농담이 지나치다. 지역구에서 120석 정도만 건지면 대성공이 될 것이다. 여기에 비례대표를 최고 20석 가져가게 되면 거의 과반수에 접근하게 된다. 150석을 넘긴다면 꽃길이 열기겠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목표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35석을 거두어 새누리당의 12석을 3배 정도 앞섰다. 인천에서도 민주당 7석, 새누리당 4석이었다. 경기도는 민주당 40석 새누리당 19석으로 역시 민주당이 더블스코어로 이겼다 전체적으로 수도권에서 민주당 82석 대 새누리당 35석으로 상대가 안 되었다. 그러나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수도권에서 반타작, 곧 최소 50석에서 최대 60석을 거두게 된다면 정치 지형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21대 총선의 수도권 지역 결과가 민주당 103석 대 미래통합당 16석(서울 8, 경기 7, 인천 1)으로 굴욕적이었지만 이런 결과는 다음 총선에서 보기 힘들 것이다. 물론 반타작이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적어도 40석 이상을 거둔다고 해도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도권을 국민의힘이 장담하기란 아직 무리다. 그래서 내년 공천에서 0순위는 당연히 영남이 될 것이다. 어차피 요직은 모두 검찰이 장악하는 검찰 공화국이 된 마당에 공천이라고 별다를 리는 없다. 그런데 원희룡은 검사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가장 풍부하고 생존력도 최고인 관록을 보이는 매우 보기 드문 ‘인재’다. 한번 ‘수석’은 영원한 ‘수석’인 나라에서 찬란히 빛나는 훈장이 가슴에 달린 인물 아닌가? 더구나 민주당의 ‘탄압’으로 희생양이 되는 모양으로 장관직을 물러나게 된다면 금상첨화 아닌가? 그러니 도로 공사 중단이라는 카드를 던질 수밖에. 그리고 대통령실과는 전혀 교감이 없는 단독 결정이니 모양새가 너무 살아나는 것 아닌가? 원희룡은 정말 좋은 머리를 타고난 사람인가 보다. 차라리 원희룡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되었다면 세상이 변했을까? 머리 좋은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는 세상 말이다. 뭐 다 지나간 일 되돌아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정치판이 ‘개 사과’ 판이된 지 오래지만,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늘 생각 나는 말이 있다. 한 나라 국민은 그 국민의 수준에 가장 알맞은 정치가를 맞이하기 마련이란 말이다. 양평 도로 공사 중단 사태를 보면서 그 말이 역시 진리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bravo your life, 원희룡!
정말 얄미울 정도로 잘 나가는 원희룡의 정치 이력을 보면서 갑자기 그의 사주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보았다. 워낙 정치가 사주는 중구난방으로 여러 개가 나오지만 대충 합의된 것이 甲辰년, 丙寅월, 甲午일, 丁卯시다. 전형적인 목화통명 대천재의 사주다. 이런 사주는 참 보기 드물다. 더구나 인월에 갑목이니 누구 밑에서 일하기 힘든 사주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주다. 원국에 편재밖에 없지만 일간지지 지장간 안에 기토와 암합을 하니 아내와의 사이도 무척 좋다. 그런데 지금 들어온 대운이 임신 다음이 계유다. 원국에 없는 관인이 같이 들어온다. 그렇다면 사주가 엘리먼트 차원에서 완성에 이르는 것인데…. 그동안 화토 대운으로 달리다가 금수 대운으로 넘어간다. 운이 크게 바뀌는 것이다. 그 바뀌는 방향과 관련하여 원희룡의 유불리를 판단하는 것이 점술가의 몫이다. 이미 원희룡도 어디선가 자기 사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 점술가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워낙 극심한 대운의 변화이니 사실 보기가 쉽다.
윤석열 정부의 수명은 2027년 5월 9일이다. 21대 대선 일자는 그보다 앞선 3월 3일이다. 22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2024년 5월 30일부터 2028년 5월 29일까지다. 원희룡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해서는 거의 임기 1년 전에 의원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의 사주를 봐서는 이런 그림을 충분히 그렸을 법하다. 그리고 침몰하는 윤석열 정부의 배에 동승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사주다. 자기가 잘났는데 자기보다 못난 사람과 운명을 같이할 이유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대권을 노려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 박근혜 시절부터 단골 대선 후보로 등장한 원희룡이 아닌가?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대통령 사주는 아니다. 대통령은 ‘수재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뚝심으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2027년과 2028년이면 원희룡의 운이 크게 바뀐 다음이다. 그러나 총선은 물론 대선에 반드시 나갈 것이다. 그의 사주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지난 대선과 그 전의 대선에서도 확인했듯이 대통령 자리는 인품이나 사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 후보 시절, 그의 개인적 운이나 사주는 절대 대통령 그릇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지금 그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이다. 그리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게다가 ‘아마추어 정권’을 이끌며 좌충우돌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무도 막지 못한다. 민주당도 그저 입만 놀리고 있을 뿐이다. 천하의 원희룡도 납작 엎드려 공천만 바라보고 있다. 사주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사주만이 아니라 공부와 머리와 정치 경력으로는 원희룡이 윤석열 대통령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뛰어나다. 그런데 지금 그는 신하가 되어 그저 개인적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결국 국민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이런 정치가들인 날뛰는 나라에서 피해는 양평 주민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입게 된다. ‘잘난’ 정치가들이 그 높은 곳에서 저희끼리 칼춤을 추며 권력을 나누어 먹는 동안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대로 모든 나라의 정치가는 그 국민의 수준에 딱 맞는 자들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하늘의 변화가 무쌍한 오늘처럼 마음이 참으로 심란한 날이다. 기분도 꿀꿀한데 두물머리 놀러 간 김에 양평 땅이나 좀 보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