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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Jul 14. 2023

자기가 낳은 아기를 죽이는 엄마가 왜 많냐고?

원래 엄마가 아이를 가장 많이 죽인다.

요즘 한국에서 영아 살해 혐의로 구속되는 엄마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 엄마들이 과거보다 더 폭력적이고 이기적이라서 그런가? 그렇지 않다. 원래 엄마들이 자기 아기를 가장 많이 죽인다. 서양 통계에 나온다. 이 불편한 진실을 캐보자. 이 글을 쓰는 데 주로 참고한 것은 정신과 의사인 Theresa Porter와 Helen Gavin이 공동 집필한 Infanticide and Neonaticide: A Review of 40 Years of Research Literature on Incidence and Causes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논문 제목이 말해 준 대로 영아 살해에 관한 40년 동안의 연구 결과를 종합 분석한 논문이다.  

    

먼저 개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영아 살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infanticide와 neonaticide가 있다. 후자는 태어난 지 24시간이 안 되어 아이를 죽이는 것을 말한다. 전자는 문자 그대로 어린아이를 죽이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영아 살해를 하는 주체는 그 아이를 낳은 엄마다. 이렇게 죽이는 것 말고 filicide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부모가 자녀를 죽이는 것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영아 살해를 하는 엄마의 경우는 혼전이든 혼인 상태든 차이가 없다. 그리고 죽이는 방법은 대부분 입과 코를 막거나, 비닐로 머리를 뒤집어씌우거나, 목을 졸라 질식사하게 만들거나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것이다. 일부 엄마는 아예 아이를 토막 내서 죽이거나 불태워 죽이기도 한다. 사실 유아는 아무런 자기 방어 능력이 없으므로 이런 엄마의 폭력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고 죽는다.   

  

그런데 이렇게 엄마가 자기가 낳은 아기를 죽이거나 그러지 못하는 경우 버리는 일에는 이미 수천 년 된 전통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이른바 ‘베이비 박스’는 유럽 고중세 때부터 수도원이 운영했던 것이다. 기독교 윤리가 엄격히 적용되던 유럽의 중세에도 자기 아기를 죽이거나 버리는 엄마가 얼마든지 있었다. 자기 아기를 죽이거나 버리는 행위는 극히 일부의 못된 엄마들만이 하던 나쁜 짓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모든 엄마가 모성을 타고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모성이 넘쳐 아이를 자애롭게 키우는 엄마는 오히려 소수다. 대부분의 엄마는 아이 기르는 것을 힘겨워한다. 그리고 아이를 키울 마음 자세를 갖추고 적절한 훈련이 된 엄마는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엄마는 아이가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지지고 볶으면서’ 키우는 것이다. 사실 아이 기르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힘들다. 그런데 수천 년의 전통을 이어온 가부장제에서 출산과 육아는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었다. 그래서 힘들어도 억지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아이를 키워온 것이다.      


그런데 임신, 출산, 육아가 그토록 힘든 일인데 왜 여자는 아이를 낳을까? 당연히 섹스 때문이다. 물론 모든 여자가 아이를 낳기 위해 섹스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주 오래전부터 여자들은 출산의 위험은 피하면서 섹스의 쾌락을 즐길 방법, 곧 피임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비록 여자의 가임기가 주기적으로 정해져 있지만 이른바 ‘오기노법’, 곧 월경 주기법에 따라 임신 가능성을 피해 보지만 거의 소용이 없다. 한 번 쾌락을 맛보면 더 큰 쾌락을 추구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월경 주기를 잊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임신은 싫고 쾌락만을 바라던 여성들이 간절히 바라던 피임약이 1960년 FDA의 승인을 받으면서 신세계가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른바 사후 피임약, 곧 섹스를 통해 수정된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는 것을 방해하는 약도 개발되어 쾌락을 즐긴 후에도 느긋하게 임신을 막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피임약은 여성의 자궁 내벽에 작용하여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피임약보다는 콘돔이나 루프와 같은 기계적인 것의 사용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런 도구는 가장 최신의 것을 사용해도 실패율이 20%에 이르러 ‘위험’하다. 사실 콘돔의 역사는 매우 길다. 현대적인 라텍스나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최신식’ 콘돔 이전에는 염소의 창자로 만들어 사용했다. 콘돔은 성병이 있는 여자와 섹스할 때 질병을 막기 위해 주로 사용했지만, 임신을 막기 위해 사용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를 낳지 않고 쾌락만 즐기는 방법에 몰두했던 것이다. 달리 homo sapiens sapiens이겠나? 모든 동물 가운데 의도적으로 피임하고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뿐이다. 만물의 영장답다.  

   

그런데 그런 모든 지혜를 동원한 방법에 실패하면 임신하게 된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자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뿐이다. 버리거나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크면 클수록 버리거나 죽이는 일이 힘들어지므로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것이 편하다. 그래서 영아 살해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섹스의 쾌락은 이런 예상되는 위험을 잊을 만큼 강력한 것인가? 그래서 여자들이 아기를 버릴 각오를 하면서도 섹스에 집착하는 것인가? 인간이 섹스를 통하여 느끼는 쾌락을 흔히 오르가슴이라고 한다. (‘오르가즘’은 프랑스어 orgasme을 일본 애들이  잘못 음독한 것을 한국에서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틀린 발음이다) 사실 자연계에서는 대부분 수컷이 오르가슴을 느낀다. 극히 제한된 포유류만이 암컷도 오르가슴을 느낀다. 그런데 어차피 오르가슴은 뇌의 변연계에서 느끼는 것이기에 지능과 관련된 전두엽과 전혀 무관하다. 동물 가운데 오르가슴을 가장 격렬하게 느끼는 것이 돼지다. 본능을 통제하는 전두엽의 역할이 적을수록 본능에 충실한 변연계의 활동이 왕성한 법이다.   

   

사실 섹스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고 섹스하는 과정에서 동물들은 매우 커다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그래서 아주 안전한 상황이 조성되지 않는 한 섹스에 몰두하고 오르가슴을 느끼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섹스하면서 느끼는 오르가슴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여 인간에게 큰 기쁨을 주기에 한 번 그 맛을 보면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섹스는 이렇게 쾌감을 불러일으키는가? 그것은 당연히 종족 보존을 요구하는 이기적 유전자 때문이다. 섹스 자체도 매우 커다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인데 임신, 출산과 양육은 더더욱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 일에 쾌락이라는 보상이 없다면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섹스에 몰입할 리가 없다. 그런데 영아 살해를 저지르는 여자들을 비난할 때 이 쾌락을 추구한 것에 대한 것이 가장 많다. 욕정을 참지 못하고 아이가 생길 것을 예상하지 못한 여자의 ‘욕심과 무지’를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말도 안 되는 논리다. ‘이기적 유전자’의 강요로 형성된 종족 보존의 본능에서 나오는 섹스에 대한 탐닉은 오히려 자연계의 원칙으로 보면 ‘건강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특히 한국 사회는 영아 살해를 한 여자만 단죄한다. 그 여자와 함께 쾌락을 즐기고 여자와 아이를 버린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바로 ‘페미’로 매도당한다. 오르가슴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쾌락을 추구했다고 특히 여자만 비난하는 것은 대표적인 가부장주의 종교인 유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에서만 볼 수 있는 편견에 불과하다.   

   

여자가 오르가슴을 느끼면 임신에 최적 조건이 마련된다. 사정된 정액을 강력하게 흡입하고 질 내 점액이 증가하여 정액의 활동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오르가슴을 잘 느끼고 이를 즐기는 여자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번성에 최적화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부 여자는 출산 때도 강력한 오르가슴을 느낀다. 다만 연구에 따르면 ‘정상적’ 섹스를 통해서도 오르가슴을 못 느끼는 여자는 30%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모든 오르가슴은 궁극적으로 임신과 출산과 양육을 유도하는 기제이다. 문제는 오르가슴 없이도 얼마든지 임신 출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르가슴을 느끼기 위해 섹스를 하고 그 ‘부산물’로 생긴 아기를 버린다고 여자를 단죄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오르가슴을 느끼면 위에서 말한 대로 임신의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다. 오히려 오르가슴을 느낀 후의 피로감이 없어 오르가슴을 못 느끼는 여자가 더 많은 섹스를 하고 임신 확률을 높일 수도 있는 일이다.     


섹스에 관한 많은 오해와 터부가 인류 역사에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유교를 포함한 가부장 제도적 종교다. 종교에서 유난히 섹스를 문제로 삼는, 특히 여자의 성욕을 문제로 삼는 전통은 사실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에서 드러나고 있는 영아 살해를 여자의 섹스 쾌락 추구와 연결시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서로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섹스를 통해 쾌락을 맛보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차라리 인류의 종족 보존을 위한 인간다운 노력의 일환으로 상을 주어 마땅한 것이다. 오히려 쾌락 자체를 추구하여 비이성적인 변태적 섹스에 몰두하고 불륜과 간통 근친상간에 더 맛 들인 이들이야말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다시 영아 살해로 돌아가 보자.     


앞에서 말한 Theresa Porter와 Helen Gavin 박사의 논문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Neonaticide, 곧 태어난 지 24시간 안에 발생하는 신생아살해는 엄마가 주변에 임신 사실을 숨기고 병원에서 출산한 다음 원치 않는 신생아 시체를 버리기 전에 질식시키거나 목을 졸라 죽이거나 익사시키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신생아를 살해하는 여성은 대부분 정신 질환이 없다. 곧 멀쩡한 엄마가 방금 태어난 아이를 죽이는 것이다.     


infanticide, 곧 영아 살해는 다양한 폭력적 방법을 사용하고, 살해를 미리 계획하고, 다른 성인에 대한 보복을 위한 자녀 학대나 방치, 원치 않는 자녀를 없애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유로 이루어진다. 영아 살해는 대부분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이른바 성숙한 여자가 저지른다.   

  

영아 살해를 하는 엄마 가운데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정신 질환은 산후 우울증과 같은 호르몬 변동의 결과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여자의 경우 출산 여부와 관계없이 남은 생애 동안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런 여자는 많지 않다. 대부분 정신이 ‘멀쩡한’ 엄마가 자기 아기를 죽인다. 그리고 살인죄로 법정에 서면 자기가 살기 위해서 모든 지략을 동원한다. 정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기 아이를 살해하는 여자들의 범죄를 미리 막을 뾰족한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 인권이 되어버려 외도와 간통조차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제외된 사회에서 여성의 섹스와 임신과 출산을 제도적으로 통제할 수단이 전무하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적인 유교나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교육을 실시한다고 해서 마음 내키는 대로 섹스하고 임신하는 여자가 통제되는 것도 아니다.   

   

많은 '페미'들은 이런 영아 살해 더 나아가 신생아살해의 문제를 반드시 무책임한 남자 탓으로 돌린다. 그런데 남자를 닦달한다고 해서 영아 살해가 줄어들 가능성도 없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미혼모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여자들을 경제적으로 돕는 사회적 장치 마련으로 영아 살해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이 또한 극히 일부에 해당되는 방책이다. 영아 살해는 미혼모만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종교 단체에서는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육을 통해 영아 살해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도 한다. 그리고 아예 성교육을 철저히 시켜 임신과 출산 양육의 ‘소중한 의미’를 여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다 공염불일 뿐이다. 인간에게 섹스와 쾌락, 임신과 출산은 종교 교육으로 통제가 되는 영역이 아닌 종족 보존의 본능과 직결된 범주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모든 나라에서 영아 살해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우에도 영아 살해에 대한 형사처벌은 미미한 편이다. 위의 논문에 나온 예를 하나 들어보자.   

   

Becky Sue Marrow는 9개월 동안 임신 사실을 숨긴 후 갓 태어난 아들을 토막 내 죽이고 불태웠다. 법정에서 밝혀진 대로 Marrow는 고의로 임신을 숨기려고 했고, 영아의 시체를 태운 화덕을 사람들이 못 보게 했고, 기억력도 뚜렷했다. Marrow를 검사한 정신과 의사의 소견으로 Marrow는 분명한 통찰력을 지녔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Marrow는 출생을 은폐할 의도로 사체 모독을 저지르고 신생아의 시체를 처리한 혐의만 인정되어 2개월 가택 연금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2002년 미국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년 2,000명 정도의 아이가 살해당하는 데 그중 절반이 생물학적 엄마의 손에 의해 죽는다. 미국의 한 주에서만 1년에 50명 이상의 유아가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그리고 31,000명의 신생아가 엄마에 의해 병원에 버려진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에서는 1세 미만의 영아가 다른 연령대의 아이보다 살해 위험이 4배 더 높다. 특히 생후 1일에 엄마의 손에 의해 살해당하는 아이가 매우 많다. 스코틀랜드의 유아 살해율은 백만 명당 43명으로 젊은 성인이 살해당하는 비율인 백만 명당 29명보다 훨씬 높다. 영미권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이런 비율은 비슷하다. 결국 상당히 많은 ‘멀쩡한’ 엄마들이 자기가 낳은 아기를 죽이는 것이다. 그것도 전혀 미치지 않은 엄마가 그런 짓을 저지른다.   

  

한국의 경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신생아와 유아가 엄마의 손으로 죽는지 통계조차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엄마가 그런 살인을 저지른 후에 그 범죄를 감추고 나중에 자기가 죽인 아이의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잘 사는지에 대한 통계도 안 나와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낙태를 많이 하는 나라로 조사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한국에서 약 3만 건의 낙태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는 합법적인 시술을 취합한 것이고 불법적인 것을 고려한다면 수십만 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흔히 혼전 임신의 경우 낙태가 많다고 알려졌지만, 기혼자가 낙태하는 비율도 40%에 이른다. 태아도 살해하고 태어난 아이도 살해하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리고 태어나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해도 입시 지옥을 거쳐야 하고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 지옥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은퇴하고 나면 세계 최고의 노인 빈곤국의 노인이라는 지위가 기다리고 있다. 지금 태어나는 아기에게는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차라리 미리 생을 마감하는 것이 오히려 행복의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그런데도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금 멋대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정치판만 지옥인 것이 아니라 이 한반도 자체가 지옥인 것만 같다. 북한은 여전히 미사일을 쏘아대고. 남한의 수구 세력은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과도 한판 전쟁을 벌일 것처럼 오늘도 날뛰고,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고. 정치가는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쟁에만 몰두하고. 호남과 영남, 여자와 남자, MZ와 꼰대, 부자와 빈자는 같은 한국인을 외국인보다 더 원수로 여긴다. 그런 와중에도 여자들은 얼굴에 칼질하고 톱질하고 수시로 독약이나 다름 없는 보톡스를 주입한다. 그것도 모자라 남편이 공무로 해외 출장을 갈 때 따라간 어느 땅부자집 딸은 그 동네 명품 숍이라고 불리는 사치품 가게를 모조리 들러 보고 비싼 옷을 쓸어 담는다. 한국에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 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지옥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오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저 비가 마치 죽은 아이들의 눈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 죽은 아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아가들아, 그곳에 있는 너희가 차라리 행복하다. 이 지옥보다 못한 곳에서 버티는 것이 죽음보다 힘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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