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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잼버리'가 드러낸 대한민국의 민낯은?

대한한국은 선진국이 되기에 아직 멀었다.

by Francis Lee

이번 ‘새만금 잼버리’ 사태는 세계사까지는 아니어도 잼버리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단순히 행사가 갯벌에 빠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마침 태풍이 와서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꼴이 되어 잼버리 대회는 사라지고 ‘한국 관광의 날’ 행사로 전락해 버린 것도 그러려니 한다.

문제는 이 새만금 잼버리가 한국이 그동안 감추고 싶었던 진실을 드러내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한국은 아직 선진국이 되기에 한참 남았다는 것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대한민국이 세계 10위 권을 넘었고 심지어 이탈리아를 제치고 세계 7위까지 올라서 당당한 선진국이 되었다는 이른바 ‘국뽕 신화’가 탄생했다. 등수를 어지간히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이 소식은 Good News 이상의 파동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10등, 7등의 잣대가 좀 수상했다. 결국 돈이었다. 경제 규모가, 국민 소득이 이탈리아를 능가할 정도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월급도 일본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 이외의 선진국 지수, 예를 들어 복지 제도, 교육 제도, 국가 안보, 남녀평등, 소득 분배, 고용 안정, 최저 임금, 그리고 청년 자살률, 노인 빈곤율, 행복지수와 같은 수많은 지수에서 과연 한국이 어느 만큼 와 있는지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돈만 많으면 선진국이고, 뻐기면서 어깨춤을 추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도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고 모조리 진영 논리로 몰고 갔다. 윤석열 정부가 뭐든 문재인 정부 탓을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비난한다. 그러나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결정타가 되어 빈부 격차는 더욱 심해졌고 이에 분노한 MZ세대가 정권 교체까지 이루어 냈다. 뭔가 잘못했기에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른바 진보 세력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난을 그저 현 윤석열 정부의 음모로만 해석해 버린다. 물론 그런 면이 있다. 그러나 분명히 문재인 정부의 잘못도 가려야 하는 데 진영 논리에 묻혀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난을 역린을 건드리는 것쯤으로 여겨 버린다. 전혀 합리적 대화의 장이 마련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새만금 잼버리 사태의 직접적인 책임은 물론 현 정부에 있다. 그러나 이 행사의 시작부터 그 과정을 살펴보면 어느 한 정부에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대한민국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새만금 잼버리로 드러난 한국의 치부 가운데 가장 먼저 지적할 것은 지방정부의 무능과 무기력이다.

비록 중앙 정부가 ‘맘대로’ 새만금 잼버리 사태를 해결한다고 나섰지만, 솔직히 전라북도 자체만으로는 이 사태를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만큼 전라북도는 이번 사태 처리에서 무능력을 보여주었다. 단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전라북도는 자리만 마련해 준 것이고 모든 책임은 중앙 정부에 있다는 변명으로만 일관했다. 이 행사를 유치하면서 전라북도가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은 ‘지역 경제 활성화’다. 어떻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국제 행사에서 돈을 앞세우는가? 아마 다른 나라에서 이미 치러진 잼버리 행사를 참조해 보면 알 것이다. 그 어느 경우에도 지역 경제 활성화를 잼버리 대회 유치의 이유로 들지 않았다. 도대체 각자 힘들게 아르바이트나 후원금 등의 방법으로 문자 그대로 ‘푼돈’을 모아서 이 대회에 참석한 ‘애들’을 이용해서 지역 경제를 어찌 살린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전라북도의 관리나 정치가 가운데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 그저 면피에만 급급해한다. 그러고는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듯 중앙 정부만 바라본다.


대한민국에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실시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다. 사실 <지방자치법>은 이미 정부 수립 때 갖추어졌었다. 그러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서슬 퍼런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그런 법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온 것이 이 나라 백성이다. 1952년에 최초의 지방 선거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무늬만 지방 선거였지 한국전쟁을 핑계로 한 이승만 패거리의 관권 개입으로 난장판이 되었다. 그리고 1960년 독재자 이승만이 실권하면서 잠시 지방 의회 선거가 제대로 치러졌다. 그러나 1961년 5월 16일 오후 8시에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아예 법률로 지방 의회를 해산해 버렸다. 그 핑계는? ‘조국 통일’이었다. 남북통일이 될 때까지는 지방자치 제도 자체를 말살하겠다는 것이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자치에는 ‘개 사과’나 던지겠다는 심보였다. 이후에 지방 관리는 조선 시대와 똑같이 중앙에서 파견했다.


박정희의 짝퉁인 전두환은 정권을 불법적으로 잡고 나서 지방 의회 구성 시기를 법률로 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 법률은 독재자가 권좌에서 물러난 1988년에 가서야 수립되었다. 역시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에 ‘개 사과’를 던진 것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에 가서야 겨우 지방 의회 선거가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5년이 되어서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채 30년이 안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진행된 지방자치도 결국은 중앙의 당파에 좌우되는 무늬만 자치인 꼴이 지속되어 왔다. 보수와 진보로 나뉜 것은 물론 학연, 지연, 혈연으로 철저히 모래알처럼 갈라져 이른바 ‘자치’를 말아먹고 있다. 공직을 다 끼리끼리 나누어 ‘먹는’ 자리로만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나누어 먹을 파이가 지방에는 별로 없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기업이 있어야 사람이 모여 기업과 개인에게 세금을 걷을 것인데 그 모든 것이 중앙에만 몰려 있으니 언감생심이다. 그러니 토호들을 중심으로 한 비리들이 지방으로 갈수록 더 판치는 것이다. 없는 파이를 나눠 먹자니 더욱 각박한 상황이 전개된다. 그래서 마땅한 벌이 수단이 없는 지방에서 관직에 오르는 것은 조선 시대만큼이나 탐나는 일이 될 수밖에. 그리고 일단 관직에 오르면 백성을 불러 ‘네 죄는 네가 알렸다!’ 호령이나 치며 대충 놀다 마는 것이다. 그러니 지방정부의 효율성 제고는 언감생심이다. 억울하다고? 모함이라고?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으면 잘 모르게 되지만 이번 ‘새만금 사태’만이 아니라 지방에서 치르는 다른 국가 차원의 국제 행사를 통해 이런 비리가 드러나는 일은 반복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새만금 잼버리 사태 해결에서 중앙 정부도 형편없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대책이 수시로 바뀌고 실무는 모조리 하급 공무원과 민간에 내맡기고 생색만 냈다. 4만 명을 이동하는 로지스틱스의 개념이 전혀 없는 자들이 중앙 정부 요직에 똬리를 틀고 앉아 그저 민간단체와 기업의 주리만 틀어댔다. 삼성, 현대를 위시한 대기업이 나서고 교회와 학교도 방을 내주어야 했다. 그렇게 명령만 하고 고위 관리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쉬며 편히 자고 일어나 다시 명령만 한다. 이거 조선 시대 탐관오리들에게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한마디로 아무 위기관리 시스템이 없다. 형식적으로 있어도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 그저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거기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그리고 결국은 말단 공무원 말단 직원만 닦달한다. 이것이 과연 선진국의 모습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국민은 갈라 치기의 유혹을 이기기 힘든 모양이다. 전라북도가 이번에 보여준 무능을 가리키며 지역 차별적 발언을 마구 남발한다. 전가의 보도나 다름없는 좌우 갈라 치기 말이다.


결국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대한민국 자체가 지금 고장이 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뽕’에 취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돈 귀신’에 빙의돼서 현실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 정치가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도 말이다.


대한민국은 아직 참다운 선진국이 아니다. 선진국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선진국 '쯩'을 든 사람에게 '얼마면 되니?'라고 허세 부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나라의 시스템이 망가져 있다. 그런데도 왜 한국은 여전히 잘 버티고 있나? 그 답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바로 민초 덕분이다. 고려 때부터 외세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무능한 권력자들이 수도를 버리고 도망가도 민초들이 분연히 일어나 지켜낸 나라 백성의 피가 아직도 한국인의 몸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잼버리 대원을 보면 지나가던 국민이 미안하다고 한다. 대기업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도 뭔가 보탬이 되고자 한다. 과거 IMF 사태 때 위정자들은 다 무책임하게 발뺌하는 사이에 금목걸이, 금반지를 나라에 ‘바친’ 국민이다. 한 마디로 나라가 망하고 국격이 망가지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런데 왜 한반도에서는 5천 년 가까이 이런 질곡이 반복되어야 하는 것일까? 언제나 제대로 된 인물이 나타나 나라를 운영하는 모습을 보게 될까? 도사를 불러 푸닥거리라도 해볼까?


지금 대한민국은 왕조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여전히 ‘지엄한’ 최고 권력자가 저 높은 곳에서 자기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그래서 벌어진 사달을 민초가 결국 해결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도대체 그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인 제도는 언제나 완비될까? 이번 ‘새만금 잼버리’ 사태를 보면 그런 제도의 완비는 언감생심이다.


600여 년 전 길재가 한 탄식을 나도 되풀이해야 하나 보다.


‘어즈버 태평연월은 꿈이런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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