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제목은 박종철 물고문 사망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에서 빨갱이 때려잡기에 앞장선 박처원이 박종철 살인 범죄 누명을 혼자 뒤집어쓴 부하 조한경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한 말이다. 한계 상황에 몰리며 악에 받쳐 쏘라고 소리 지르는 조한경에게 이런 말을 하기 전에 박처원은 찰진 북한 사투리로 다음과 같이 협박한다.
“네 마누라, 네 아새끼들 임진강에 던져버리갔어. 월북하다 뒈진 걸로 처리하면 그만이디. 해봤으니끼네 알 기야. 내래 네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꼴, 똑똑히 보갔어.”
자기가 죽는 것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던 조한경도 아내와 자식을 죽이겠다는 협박 앞에 힘 없이 무너진다. 그런 그에게 박처원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는다.
“선택하라우. 애국자야, 월북자야!?”
그러자 조한경은 미친 듯이 외친다.
“받들겠습니다... 받들겠습니다! 받들겠습니다!”
이것이 1987년에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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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꼭 36년이 지난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출처: 채널A, https://v.daum.net/v/20230901193254237?f=p)
윤석열 대통령이 보기에 대한민국에는 자유민주주의의 대척점에 공산 전체주의 세력,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반국가세력이 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이들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혔다.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그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세력들하고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을 적으로 삼아 맞서 싸우겠다고 선포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보면 국민을 상대로 맞서 싸운 대통령이 이미 여럿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실제로 부하를 시켜 국민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비록 국민에게 직접 총질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명박은 자기를 반대하는 국민에 맞서 ‘명박산성’을 쌓았다. 박근혜는 생때같은 청소년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죽어가도 머리를 말아 올리고 있었다. 이승만은 고향이나 다름없는 미국으로 도망가서 죽었고, 박정희는 부하의 총탄 두 발을 맞고 죽었고, 전두환은 사형선고를 받았고, 이명박은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 원, 추징금 57억 원을 선고받았다. 박근혜는 탄핵을 당한 것도 모자라 징역 22년에 벌금 180억 원을 선고받았다.
이제 우리는 국민을 맞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대통령을 또 보고 있다.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이 전생에 무슨 그리 큰 죄나 업보를 지었기에 이런 기구한 팔자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일본과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대한민국을 이용하는 것 같아 조심하자고 이야기하는 국민이 반국가세력이고 빨갱이와 동급이란 말인가?
이제는 반정부 투쟁 정도가 아니라 내전이 일어날 모양새다. 국민이 단합하여 극도로 불안한 국제 정세와 파국을 향하는 경제 문제에 대응하여도 모자랄 판에 또다시 국민이 정권과 맞서 싸워야 하는 슬픈 역사를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한번 따져보자. 국민이 반국가 세력이 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자기가 사는 나라를 반대하면서 그 나라에 사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반국가 세력은 대한민국이 망하기를 바라는, 아니면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는 외세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이 반체제세력이 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한국 사회를 굴리는 두 바퀴이고 그 바퀴에 순응하여 이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이 반정부 세력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은 가능하다.
영화 <1987년>에서 처음에는 재야 인사와 일부 국민만 반정부 활동을 한다. 그러나 전두환 독재정권이 박종철을 살해하고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 변명을 하자 국민 전체가 반정부세력이 되어버렸다. 영화 <1987>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세속적인 국민이 반정부세력이 되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박종철의 시신을 부검한 의사 오연상, 살인 사건을 직감하고 시신보존명령서를 발부한 검사 최환, 그리고 사건의 내막을 기자에게 흘린 검사 이홍규, 국가가 박종철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른 사실을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 신성호와 동아일보 기자 윤상삼은 처음부터 반정부세력이 아니었다. 전두환 군사독재정부가 무고한 학생을 살해한 것을 알고 분노하여 반정부세력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영화 <1987>에서 철모르던 지극히 '세속적인' 대학 새내기 연희는 짝사랑하던 이한열의 죽음을 통해 군사독재정부의 폭력을 목격하면서 반정부세력이 된다.
이처럼 반정부세력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로 독재정부가 반정부세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독재자는 불의한 정권에 맞서는 국민을 반국가세력으로 매도한다. 마치 루이 14세처럼 내가 곧 국가라는 착각에 빠져서 말이다. 사실 국민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라를 말아먹는 정부에 반대하는 것인데도 그렇다. 도대체 왜 이 대한민국에서는 불행한 역사가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