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홍범도 장군이 ‘빨갱이’라고?

대한민국 하늘 위에 ‘문화 대혁명’의 유령이 배회하기 시작했다.

by Francis Lee

뉴스를 보니 육사에 세운 독립운동가의 흉상을 모조리 철거한단다. 그런데 그 이유가 기가 막힌다. 빨갱이 전력 때문이란다. 그러나 빨갱이 전력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홍범도 장군뿐이다. 그것도 사실 독립운동을 하는데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가입하신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오로지 잃어버린 나라의 주권을 찾는다는 신념으로 하신 일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여기저기에 '빨갱이'보다 더 사악한 간첩처럼 도사리고 있는 토착왜구들이 홍범도 장군을 깍아내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게다가 빨갱이와 무관한 나머지 네 분의 동상도 철거한단다. 숨은 이유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에 치른 3.1절 99주년 행사 때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빨갱이 정부’였다는 논리다. 그러나 빨갱이는 명분이고 실질적 이유는 반일의 상징인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고 싶다 않다는 것이다.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일본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뭐든지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유행이 시작되었다.


홍범도 장군의 모습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되려나?

이제 대한민국 안에서 내가 내 자유대로, 아니 내 멋대로 사는 데 방해되고, 특히 반일 정서가 있는 이들은 모조리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 과거 중공 시절의 중국에서 벌어진 문화 대혁명의 피바람이 이제 한반도에 수입되는 모양새다. 문화 대혁명은 빨갱이가 아닌 이들을 숙청하는 광기였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빨갱이를 숙청하는 광기인 것이 다를 뿐이다. 색깔만 다를 뿐 덮어씌우기 프레임은 똑같다. 이런 이데올로기의 광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마오쩌둥이 흔들리는 자기 권력 유지를 위해 중국을 10년에 걸쳐 파탄에 이르게 했다는 것은 이제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 어느 정권이나 인기가 떨어지고 흔들리면 이데올로기를 명분으로 이런 광기를 보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광기의 유령이 이제 대한민국 하늘을 배회하고 있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상황은 문자 그대로 일촉즉발이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가장 먼저 단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파에서 거의 신으로 모시는 이승만이 한 말 대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국민을 좌우로 가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게 갈라서 국민의 대다수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게 되면 좋은가? 지금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30% 초반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말은 70%의 국민이 이 정부를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30%의 세력을 믿고 70%에 대적하겠다는 심보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가지게 되는 것일까?


뉴스를 보니 MB 시절의 잔당들이 다 기어 나와 한자리하고 있는 소식이 계속 이어진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에서 찬밥이었던 나경원도 총선에 나올 모양이다. 이상하게 보수 세력에는 새로운 피가 없다. 정권을 바꿀 때마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미꾸라지 같은 처세술로 권력에 붙어사는 기생충만 난무할 뿐이다. 보수라서 중고품을 총애하는 것인가? 변화를 싫어해서 말이다. 그래서 어찌 급변하는 국제적인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비하여 국익을 도모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능력이 없으니 그저 이데올로기에 매달릴 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먹히는 이데올로기 수단인 ‘빨갱이 딱지’를 무소불위의 무기처럼 휘둘러 댄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과 나머지 네 분의 독립운동가를 건드린 것은 분명히 선을 넘은 짓이다. 중국의 문화 대혁명이 그 정도의 광기로 흐를 줄은 마오 자신도 몰랐다. 그래서 자기가 키운 홍위병을 자기가 처단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다. 이데올로기의 광기는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많이 보아 왔다.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파쇼, 일본제국의 군국주의, 한반도의 한국전쟁,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중국의 문화 대혁명. 이 모든 것이 ‘미친’ 지도자의 광기에 감염된 군중의 집단심리가 벌인 비극이다. 그런데 너무 신기하게도 히틀러와 무솔리니 말고는 모든 사달에서 지도자는 살아남았고 국민만 처절하게 희생되었다. 미친 지도자 편에 서서 광기를 부리던 국민도 그 반대편에서 억울하게 몰린 국민도 다 희생당했다. 이데올로기는 사람을 문자 그대로 미치게 만든다.

그런데 코로나보다 더 심각한 그런 이데올로기라는 질병이 뜬금없이 2023년 대한민국 하늘 위를 배회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만주 벌판에서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치신 독립운동가들을 폄훼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아무리 국가를 위해 희생했어도 ‘빨갱이’ 면 안 된다고? 한번 따져보자. 그 당시 ‘빨갱이’와 민족주의자 말고 누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말인가? 조선제국의 고관대작만이 아니라 말단 미직에 붙어살던 기생충들은 ‘대일본제국’이라는 새로운 숙주를 보는 순간 모조리 갈아타는 변신의 신공을 발휘하는 데 급급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른바 ‘친일 매국노’를 자처하지 않았나? 그러나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로 정부를 수립한 이승만의 독재정권이 벌인 ‘빨갱이 딱지’ 붙이기의 만행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마치 문화 대혁명 때 홍위병들이 맘에 안 드는 선생님이나 동네 어른에게도 마오 정권을 반대하는 매국노로 처단하는 것과 다름없다. 내세운 것은 이데올로기지만 실제로는 정권 유지가 목표였을 뿐이다. 이런 일이 이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내 맘에 안 들고, 내 권력 유지에 방해되면 다 빨갱이란 말인가?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찬성하는 것은 아니란다. 그런데 반대도 아니란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국익 앞에서 정부가 가치중립을 내세우는 경우는 내 평생 처음 보았다. 그러면서 같은 한국인끼리 이간질하며 파당 정치에만 골몰하고 있다. 과거 청을 몰아내고 한반도를 집어삼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일본과 마찬가지로 현재 일본은 경제 대국에 이어 군사 대국이 되려고 혈안이 되고 있다. 그 일본이 과연 군사 대국이 되면 가장 먼저 누구를 타깃으로 삼을까? 미국과 중국?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중국 대륙을 도륙했지만, 그 결과로 실질적으로 일본이 점령한 것은 한반도와 만주였을 뿐이다. 그 당시 일본의 군사력은 아직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오르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이제 일본이 재무장을 완료하면 청일전쟁 때보다 더 강력한 군사 대국이 된다. 그리고 지난 30년의 긴 불황의 터널에서 일본 경제는 막 벗어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일본이 이제 경제적으로 망한다고 서툰 분석을 하며 ‘국뽕’ 카타르시스를 조장하고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오히려 지난 30년의 불황을 이겨낸 것이 역설적으로 일본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일본 장기 불황의 기폭제는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 구도 재편 조치인 플라자합의(1985)였다.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국내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금리를 갑자기 두 자릿수로 올리는 바람에 전 세계의 경제가 휘청댔다. 지금 미국 금리 인상으로 전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았지만, 미국의 무역 흑자가 엄청나게 줄어들자 이번에는 경상수지 적자를 막기 위해 금리를 내려버렸다. 미국은 자기 나라 경제를 위해서라면 국제 경제 질서를 얼마든지 엿장수 맘대로 흔들어 왔다. 그 조치가 바로 플라자합의다. 이 조치로 엔화의 달러화 환율은 235엔에서 125엔으로 떨어져 결과적으로 엔화의 가치가 두 배 이상 폭등하였다. 수출로 먹고살던 일본으로서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이에 대비해 일본 정부는 결국 저금리정책을 울며 겨자 먹기로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저금리정책으로 촉발된 부동산과 주식 거품이 결과적으로 일본의 장기 불황을 일으킨 것이다. 이 모든 사달의 근본 원인이 미국이다. 그러나 그런 미국의 횡포에도 일본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여전히 정치·경제적으로 세계 대국의 반열에 서 있다. 그리고 이제는 미국의 정책에 철저히 공조하면서 오로지 국익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사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을 군사적으로 건드렸다가 두 차례나 핵폭탄 실험장이 되는 문자 그대로 '개쪽'을 당했다. 그리고 1980년대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엔화로 미국 땅을 다 살 수 있다고 허세 부리다가 미국의 금리 농간으로 문자 그대로 '폭망'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제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충실한 '개'가 되기로 결심한 지 오래다. 다만 아시아에서는 일류 국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그 꿈은 이루어졌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지만 복지 재정 지출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경제 규모도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강국은 돈으로만 안 되는 것이니 국민을 알뜰살뜰 돌보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니 일본 국민이 하나로 단합할 수밖에.

그런데 대한민국은 어떤가? 노인 복지예산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를 다툰다. 전체 복지 예산도 평균을 훨씬 밑돈다. 그저 국민이 알아서 각자도생 하라는 거다. 살기 힘들면 자살하란 말 아닌가? 그래서 청년이든 노인이든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노인 빈곤율도 OECD 회원국 최고 수준이고. 게다가 남북이 갈라진 현실에서 남한만이라도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국익을 위한 단합은 간데없고 오히려 갈라치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리 갈라져서는 서로를 철천지원수쯤으로 대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으로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사돈의 팔촌 관계를 이루고 있다. 문자 그대로 두세 다리 건너면 혈연적으로 5천만 명이 다 친척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인가? 한국 상황을 보면 집안싸움에만 이골이 난 꼴이다.


이런 지경에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오일남이 한 말이 생각나지 않나?


“우린 깐부잖아.”


그래서 이 좁은 한반도에서 '깐부' 맺고 나와 내 패거리만 살면 되나? 그리 살면 좋나? 나머지 다 죽고 나만 살면 그리 좋은가?


그러나 오일남의 비참한 절규가 더 생생하게 들린다.


“이러다가 다 죽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본 자위대의 성폭력 사건은 어떻게 처리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