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재무장은 장비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이미 완성되었다.
CNN이 일본 자위대에 만연한 성추행과 폭력에 관한 소식을 전했다.(참조: https://edition.cnn.com/2023/08/23/asia/japan-sdf-sexual-harassment-report-intl-hnk/index.html) 내용을 보니 한국에서도 자주 발생하던 전형적인 군 비리 사건이다. 그런데 그 처리 과정에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되었다.
사달의 시작은 자위대에서 장교로 근무한 고노이에 대한 성추행 사건이다.(참조: https://edition.cnn.com/2023/07/09/asia/japan-self-defense-force-sexual-harassment-hnk-intl-dst/index.html)
고노이는 자위대에서 2년 복무하는 동안 1년 넘게 매일 신체적, 언어적 성적 학대를 당했다. 심지어 여러 동료 군인에게 강간도 당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고노이가 제대 후 관계 당국에 이 사실을 고발했지만 아무도 안 믿었다. 군 당국이 두 차례 조사 끝에 증거 부족을 이유로 고노이 사건은 기각되었다. 그러자 고노이는 언론에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이들도 그의 말을 무시하였다, 그러자 고노이는 소셜 미디어에 사실을 폭로하며 고독한 싸움을 벌였다. 고노이의 말을 들어보자. “저는 (자위대에서) 성희롱당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그들이 저지른 일을 인정하기를 원했습니다. 나는 내가 겪은 일을 다른 사람들도 겪는 것을 막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발언하게 된 것입니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고발이 여론을 움직여 결국 정부도 자위대의 성희롱 실태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검찰 조사 결과 고노이는 2020년 가을부터 2021년 8월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신체적, 언어적 성희롱을 당한 사실이 입증되었다 이에 방위성은 유죄를 인정하고 공식으로 사과했다. 한국의 육군참모총장 격인 육상 자위대 참모총장 요시다 요시히데가 고노이 앞에서 고개를 깊이 숙여 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랫동안 고통을 겪으신 고노이 님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고노이는 지난해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가해한 4명으로부터 직접적인 사과를 받은 뒤 가해자 중 3명이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고, 한 명은 울고 있었다고 했다.
결국 이 사건과 관련된 군인 5명이 불명예 제대했고 4명이 처벌받았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고노이 사건과 관련된 형사 소송과 민사 소송이 진행 중이다. 가해자 가운데 3명은 고노이를 성폭행한 혐의로 3월에 기소되었다.
조직에 맞서는 한 개인의 노력이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던 것은 단순히 용기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일본 사회의 사법 제도가 건강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검찰이 썩지 않았고 더 나아가 사법부가 깨끗하여 결국 정의가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쭙잖은 애국을 들먹이며 군부 내의 부조리에 눈을 감아버리는 후진국에 비해 일본이 매우 앞선 나라임을 이번 사건이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일본은 현재 중국이라는 초강대국에 맞서는 데 힘이 부족하여 미국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일본은 2023년 국방예산을 전년 대비 무려 26%나 증가한 6조 8천억 엔(550억 달러)으로 책정하고, 2027년까지 국방예산을 GDP의 2%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자위대가 25만 명 수준의 병력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군 모집으로 모자라는 병력을 충원하려는 노력에 일본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여군은 2만 명 정도로 전체의 8%에 불과하다. NATO의 12%, 미국의 16%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져 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여군 모집에 문자 그대로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은 현재 최소한 NATO 수준인 12%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 와중에 고노이 사건이 터진 것이다. 독재 국가나 후진 국가였으면 이 사건은 남성중심의 군대 문화에서 스리슬쩍 무마되고 고노이와 같은 여군이 희생제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사회는 선진국답게 이 문제를 법적으로 정의롭게 처리한 것이다. 일본이 선진국의 반열에 서 있음을 이 사건이 잘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정부의 수장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일본 의회에서 자위대와 방위성이 성추행 사건을 부적절하게 처리한 것을 인정했다. 후미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조직에서도 괴롭힘은 용납되어서는 안 됨에도 은폐가 지적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이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희롱 사건의 가해자들은 엄중한 처벌을 받을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괴롭힘을 철저히 파악하기 위해 특별 방역 점검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형태의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일본 정부는 자위대 내부의 성폭력과 괴롭힘 현황을 조사해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일본 방위감찰본부가 발간한 <ハラスメント防止の状況に関する 特別防衛監察の結果>라는 제목의 보고서의 내용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 보고서는 공식적으로 신고된 1,325건의 사건을 분석 조사한 것이다. 이 사건의 대부분은 군부 내 괴롭힘, 직권 남용을 의미하는 '권력형 괴롭힘' 사건이었고, 약 12%는 성희롱 사건이었다. 피해자의 64% 이상이 상담사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많은 피해자가 상담사를 만나도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담을 한 번도 신청한 적이 없는 피해자 가운데 약 13%는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고 도움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환경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10%는 보복이나 업무상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을 언급했다. 다른 피해자는 이용할 수 있는 상담 서비스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피해자가 상담사에게 “이리저리 쫓겨나거나” “쓰레기통에 던져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어떤 피해자는 괴롭힘을 신고한 후 상담사와 만난 후에도 관계 당국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용감한 군인이자 시민인 고노이와 같은 개인이 있고 그 개인의 외침에 응답하는 정의로운 정부와 검찰 그리고 사법부가 있다. 그래서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의 잘못을 시인하고 앞으로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반성을 안 하면서 말이다. 그런 일본이 일본 국민만은 사랑한다. 그리고 일본 군대를 사랑한다. 그래서 적어도 국내적으로는 약자의 피해에 눈을 감아버리고, 권력자에게 아부하며 출세에만 눈이 먼 간신배들이 들끓는 후진국과는 차원이 다른 나라다. 게다가 부하 장병이 어처구니없이 죽어도 사단장이 '나는 아무 책임도 없다.'고 큰소리치는 나라가 있다. 그리고 정치가들은 무고한 병사의 죽음도 당리당략에 이용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 나라의 군인이 과연 지휘관에게 충성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더 나아가 나라에 충성할까? 아니면 각자도생만 모색하지 않을까? 그런 나라에 전쟁이 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답답할 뿐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군대 내의 폭력, 특히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 사건을 처리하는 데에서 국격의 차이가 난다. 군대 폭력에 엄격하기로 소문난 미군이 세계 최강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대열에 이제 일본이 들어서고 있다. 아니 이미 들어선 것이다.
군대만이 아니다. 이번 오염수 방류로 피해입을 일본 어민을 위하여 일본 정부는 74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 놓았다. 직접 피해 어민만이 아니라 일본 말로 '푸효'(風評), 한국말로 하자면 '가짜뉴스'에 따른 손해도 배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관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국민을 엄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의 방류수가 전혀 무해하다는 홍보 광고를 수천만 원 들여 찍어 선전한다. 누가 일본 정부이고 누가 한국 정부인지 헛갈릴 정도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 이외의 사람들의 안녕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다. 과연 어느 나라가 좋은 나라일까?
군사력 지수(GPI)로 일본은 미국 러시아 중국 다음으로 세계 4위다. 범접할 수 없는 군사 강국인 미·중·소를 제외하고는 단연 최고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10위에 불과하다. 2023년 국방예산은 57조 원이다. 일본의 70%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국방비의 대부분은 인건비로 나가고 있다. 인원이 많은 육군에서만 한국이 일본에 우위를 보일 뿐 공군과 해군에서는 한국이 일본에 비교가 안 된다.
일본은 이제 중국과 맞먹는 군사력 확보를 위해 헌법도 바꿀 기세다. 이른바 평화헌법을 버리고 2차 세계대전 때의 세계 최고 수군의 군사 강국을 꿈꾸고 있다. 이에 걸맞게 과거 독일 프로이센의 군국주의와 유교 문화가 섞인 남성중심주의 군사 문화도 청산하고 있다. 과연 이런 일본을 중국이 상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 미국의 도움에만 의지하지 않고 이제 일본은 70여 년 만에 군사적으로 다시 자신감을 회복한듯하다. 어쩐지 한반도를 둘러싼 제2의 청일전쟁의 냄새가 솔솔 나는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는 어떤가? 남북, 진보와 보수, 영호남의 갈등도 모자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문자 그대로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다. 제2의 청일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스스로 붕괴할 것으로 보이지 않나? 기가 막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