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결국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되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립된 소련이 마침내 북한에 손을 내미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 알려진 바대로 북한은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는 재래식 전투에 필요한 무기와 탄약을 소련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소련으로부터 첨단 무기 기술과 식량, 그리고 석유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미국의 뉴스 전문매체인 CNN은 이런 상황이 결국 중국의 어부지리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참조: https://edition.cnn.com/2023/09/15/china/china-kim-putin-summit-russia-north-korea-intl-hnk/index.html) 글을 읽어보니 평소의 CNN 답지 않게 매우 중립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짐작해보고자 한다.
CNN은 무엇보다도 북한과 소련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 중국을 통치하는 중국공산당은 원래 소련에 철저히 의존하던 조직이었다. 중화민국 시절 상하이에서 1920년에 창당된 중국공산당은 1922년 레닌의 코민테른에 정식으로 가입하여 중국을 공산화하는 길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소련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1949년 장개석을 중심으로 한 중화민국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중국대륙을 공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990년 공산주의가 붕괴하면서 소련은 계속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에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의 주도로 개혁 개방과 현대화를 추진한 결과 마침내 30여 년만인 2010년부터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예상으로는 2023년 GDP(PPP) 기준으로는 세계 제1위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명목 GDP로는 여전히 미국에 밀려 2위지만 3위부터 8위를 차지한 일본, 독일, 인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합친 GDP와 맞먹는 경제력을 지닌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앞으로도 그 지위를 위협할 나라는 보이지 않는다. 근현대사에서 이렇게 미국의 경제력을 능가하게 된 나라는 중국이 처음이다. 인구는 2023년 기준으로 14억 명으로 세계 1위 자리를 인도에 물려줄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확인한 것처럼 국력은 경제력과 인력에서 나온다. 소련이 만만하게 본 우크라이나를 쉽게 이기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바로 경제력과 인력 때문이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흐를수록 결국 소모전이 되는 데 소련의 자원이 고갈되어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에 몰렸다. 그래서 결국 만만한 북한에 손을 내밀면서 버텨야 하는 궁지에 몰린 것이다.
소련은 그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기 전인 1990년만 해도 GDP(PPP) 기준으로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였다. 그리고 인구도 2억 8천만 명으로 세계 3위였다. 그 당시 중국은 소련에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나라였다. 그러나 2023년 들어 세계가 목격한 소련은 핵무기만 잔뜩 들고 있는 형편없는 나라가 되었다. 명목 GDP로는 중국의 10분의 1 수준으로 한국과 비슷한 경제 규모를 지닌 나라가 된 것이다. 인구도 중국의 5분의 1도 안 된다.
그런 소련의 국력이 소모될수록 미국과 더불어 가장 기뻐할 나라가 중국인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소련이 북한에서 얻을 수 있는 지원이 보잘것없다. 경제력이 세계에서 하위 수준에 머물고 주민의 생계유지에 급급한 북한이 소련을 돕는 데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 그래서 소련은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중국에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는 구조를 벗어난 적이 없다. 이 상황은 결국 이른바 중국의 꽃놀이 패가 전개되는 것을 말한다. CNN도 세계적으로 가장 고립된 소련과 북한이 이번 일로 더욱 중국에 의존하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그리고 중국은 부담스러운 소련에 대한 직접 지원보다는 북한을 내세워 간접적으로 소련을 지원하면서 국제 사회의 비난을 비껴가면서 소련과도 우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 이야말로 꿩 먹고 알을 먹는 일이 될 것이다.
이렇게 중국이 미국의 압박으로 궁지에 몰린 소련과 북한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3국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게 될 확률도 높아졌다. 현재 미국은 중국을 가두기 위하여 이른바 아시아의 NATO 수립 구상을 차근차근 추진 중이다. 그 사전 포석으로 일본, 인도 호주를 묶어 미국이 통제하는 이른바 ‘쿼드’와 한미일 공조 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은 브릭스 회원국을 기존의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확대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브릭스는 기존의 5개 국가만으로도 전 세계 GDP(PPP)의 30%, 지구 면적의 42%를 차지하는 엄청난 경제력을 지닌 조직이다. 여기에 더해 새로 초청된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UAE도 긍정적인 답을 이미 하였다. 2024년부터는 브릭스 회원국이 11개 나라로 늘어난다. 결국 미국과 유럽 대륙을 제외한 지구의 나머지 모든 대륙이 뭉치게 되는 것이다.
브릭스는 이미 알려진 대로 유일한 기축 통화인 미국의 달러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제 경제 체제를 거부하고 다극 체제를 추구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먼 원인이 되었던 1929년 미국 월가의 붕괴에서 시작된 대공황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면서 세계 여러 나라는 미국에 진절머리를 내는 상황이다. 미국의 국내 경기가 시원치 않으면 사설 기관에 불과한 FRB가 마음대로 통화량을 조절하면서 결국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조작하는 상황에 지쳐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은 미국의 닉슨이 금본위제를 철폐한 이후 실질적으로 달러를 이길 기축 통화가 없는 현실에서 미국이 맘대로 ‘깡패 짓’을 하는 것을 그저 바라보고 파편을 최소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미국이 세계 에너지 원인 석유 거래를 오로지 달러로만 하도록 강제 조치를 취하면서 다른 나라는 어쩔 수 없이 달러를 쌓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세계는 미국의 빚을 세계 여러 나라가 고통 분담하며 미국 경제를 강제적으로 살리는 구조적 모순에 놓여 있다. 그래서 미국이 국내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FRB에 화폐를 찍어내도록 하면서 담보로 제공한 국채를 다른 나라가 울며 겨자 먹기로 사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과 날을 세우는 중국조차 2023년 기준으로 3조 2천억 달러 규모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2021년 기준 국내 총생산액인 23조 달러의 10%가 훌쩍 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그런데도 중국은 미국과의 경제 전쟁에서 여전히 고생하고 있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세계 경제를 주무를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히 기축 통화가 달러이기 때문이지만, 그 못지않게 미국 경제 규모가 다른 나라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내 중국이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앞으로도 브릭스 회원국인 중국, 인도, 브라질, 그리고 인도네시아와 같은 자원과 인구 대국의 경제력이 백인이 지배하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력을 능가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 선두에 선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할 화폐로 삼는 실험을 시작하였다. 이런 중국에 대해 미국의 눈꼴이 실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중국을 치는 일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그런 전략을 추진하는 데 중국의 전통적인 우방국인 소련의 협력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NATO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는 것을 핑계로 시작된 전쟁을 소모전으로 이끄는 전략을 구사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는 상당히 성과를 거두었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소련도 전략 물자가 고갈되어 외부의 도움 없이는 재래전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몰린 것이다.
유럽에서 NATO를 무기로 소련을 억제하는 데 상당한 성공을 거둔 미국이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 동일한 방법을 쓰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중국이 과거 소련과 같은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련처럼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큰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오히려 중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소련이 탈진할수록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이번 북한과 소련의 우호 증진을 계기로 소련이 북한의 식량 문제를 완화하고, 특히 탄도 핵미사일 기술을 전수하게 된다면 중국은 문자 그대로 손 안 대고 코 풀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미국과 직접 상대하는 일이 아무래도 껄끄러운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군사력이 강화되어 미국을 직접 자극할 수준에 이르게 된다면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동네 불구경하듯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반도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사태가 벌어진다면 현재로서는 북한과 소련이 미국 일본 한국과 맞서는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여기에서 중국은 한발 물러나도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취한 중국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전후 복구 사업에서 얻을 이익을 계산하는 상황을 미루어 보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 미국과 소련의 힘을 빼고 전후 복구 사업에서 얻을 이익을 계산하느라고 중국은 이미 주판을 튀기고 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만약 우크라이나 전쟁이 없었던 상황에서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중국은 북한을 앞세워 미국과 직접 맞서야 하는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과 소련이 맞서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소련을 대신하여 북한이 미국과 일본을 대신한 남한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면 중국으로서는 다시 한번 꽃놀이 패를 가지고 놀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잘 볼 수 있듯이,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참전국과 관계국의 정치가들은 하나도 다치지 않는다. 한반도의 군인과 민간인만 희생될 뿐이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도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정권을 내놓고 물러날 처지에 있었다. 전쟁 전에 그의 지지율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쟁이 일어나면서 그는 9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게 되었다. 문자 그대로 기사회생한 것이다. 푸틴도 소련의 어려운 경제 문제로 정치적인 비판을 받을 처지에 있었으나 전쟁으로 이제는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전제 군주가 되어 실질적으로 권력을 죽을 때까지 유지할 제도적 장치까지 마련하였다.
현재 시진핑은 어떤가? 푸틴과 마찬가지로 영구 집권의 길을 가는 중이다. 중국의 경제도 과거와 달리 고도성장을 멈춘 지 오래다. 독재에 대한 반발과 어려운 경제 상황은 천하의 시진핑이라도 쉽게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그런 상황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문자 그대로 불감청 고소원이 아니겠는가? 푸틴도 한반도의 전쟁을 바라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푸틴은 위기에 몰리게 된다. 만만하게 본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전쟁을 통해 체면이 깎긴 데다가 과도한 전비 지출로 경제적으로도 더욱 어려운 처지에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에 처한 정치가에게 전쟁만큼 반가운 일은 없는 법이다.
문제는 앞에서 말한 대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관계 국가 정치지도자의 권력은 더욱 강화되지만, 군인과 민간인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한반도는 우크라이나와 달리 피난 갈 곳이 없다. 북으로는 휴전선으로 막혀 있고 나머지 삼면은 바다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난다면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점점 전쟁으로 가는 분위기다. 더구나 앞에서 말한 대로 중국이 직접 미국을 상대한다면 시진핑이 주저하겠지만 소련과 북한이 미국을 상대한다면 말릴 일이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도 점점 더 호전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한번 붙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붙으면 누가 이길까? 당연히 한반도를 둘러싼 4강, 곧 중국과 소련 미국과 일본이 이긴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초토화된다. 지금 우크라이나가 보여주는 모습이 한반도 미래의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도 남한에서는 남한 사람들끼리 죽자고 싸우고 있다. 정말로 모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이란 말인가?
전쟁은 한 두 사람의 계략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전쟁 당사자만이 아니라 주변 세력의 복잡한 셈법이 전쟁을 일으키게 한다. 그런데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세력의 셈법이 이제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한반도에 전쟁이 나도 손해를 보게 될 나라는 남한과 북한 말고는 아무도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한국인은 오늘도 서로를 ‘토착 왜구’와 ‘빨갱이’로 몰면서 다 같이 죽자고 난리다. 거기에 더해 경상도와 전라도가 싸우고, 시엄마와 며느리가 싸우고, 한남과 된장녀가 서로 죽자고 싸운다. 정말로 그렇게 죽고 싶을까? 참으로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국민이다. 살만큼 산 나 같은 꼰대야 전쟁이 나든 법석이 나든 별로 잃을 것이 없지만, 이제 막 희망을 가지고 삶을 시작한 젊고 어린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