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서 차기 여가부 장관으로 낙점된 김행에 관해 날마다 올라오는 소식이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거짓말 행진에 놀란 가슴을 아예 폭파하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뉴스를 보니 자기가 만든 유튜브 방송인 ‘위키트리’에 나와서 낙태 결사반대를 외쳤단다. 관련 언론 보도를 그대로 인용해 본다.(링크: https://v.daum.net/v/20230920111914243)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012년 위키트리 유튜브 방송에서 ‘낙태(임신중지)가 금지된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남자들이 필리핀 여자를 취하고 도망쳐도 코피노를 다 낳는다.’면서 ‘너무 가난하거나 강간을 당해 임신을 원치 않을 경우에도 우리 모두가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톨러런스(tolerance·관용)가 있으면 여자가 어떻게든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는 임신중지 여성을 최대 6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필리핀에서는 산모가 낙태를 하러 오면 의사가 신고해서 다 잡혀가고 징역형을 받는다. ... 한국인 남자들이 필리핀 여자를 취해서 도망친 후 낳은 코피노들이 많은데, (낙태할) 방법이 없으니까 코피노를 낳아도 사회가 그 아이를 관용적으로 받아들여 준다. ... 우리나라 같으면 외국 사람이랑 잘못된 아이를 낳으면 버리거나 입양을 하거나 낙태를 할 텐데 필리핀은 그러지 않는다.”
명백한 거짓말이다. 이미 언론에서 여러 차례 보도된 대로, 코피노들은 매우 비참한 삶을 살고 있고 한국에 ‘아버지’를 찾다 실패하여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필리핀 사람이 낙태를 안 하고 애를 잘 기른다고? 뉴스 기사를 다시 인용해 본다.
“필리핀 ‘안전한 낙태 옹호 네트워크’(PINSAN)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필리핀에서는 매년 126만 건의 불법 낙태가 이뤄진다. 매년 1,000명 이상의 필리핀 여성이 제도 밖 임신중지 수술의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한다. 필리핀의 헌법기관인 필리핀인권위원회(PCHR)은 지난 1월 ‘낙태권과 신체자율권은 기본적인 인권’이라며 ‘낙태할 권리’를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필리핀에서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는 이유는 단 하나. 가톨릭이 국교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아직도 낙태를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게다가 아예 콘돔과 피임약 사용도 죄악시하는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단체다. 그런 종교가 국교이니 낙태를 교회법만이 아니라 실정법으로 죄악시할만하다. 그런데 한 가지 우스운 사실은 바로 그런 가톨릭교회의 본부인 바티칸이 한 때 콘돔 생산 회사를 보유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교리를 버릴 수는 없지만 돈은 벌어야 하니 그 모양 아니었나? 물론 그 사실이 밝혀지자 곧바로 콘돔 회사를 처분했다. 그리고 더 우스운 일은 정작 필리핀을 1571년부터 1898년까지 식민지로 무려 327년 동안 착취한 스페인은 진작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22년 5월 스페인 국무회의는 이른바 ‘낙태법’으로 알려진 「성·생식보건 및 자발적 임신 중단에 관한 법률」의 정부 개정안을 승인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16~17세 청소년은 부모의 동의 없이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고, 월경통을 겪는 여성은 의사의 소견서를 지참하여 3~5일간 휴가도 얻을 수 있다. 필리핀을 식민지로 착취한 나라인 스페인의 여성은 부모의 동의 없이도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는데 식민지인 필리핀에서 낙태하면 6년 동안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 이 무슨 미친 짓인가? 식민지의 잔재라는 것이 이토록 없애기 힘든 것이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김행은 분명히 여성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 그가 맡으려고 하는 부서가 여가부다. 여성과 가정의 이익을 도모하는 부서다. 그런데 여성이 여성의 권리와 건강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고 강간범에게 당해서 임신해도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그 아이를 김행이 길러줄 것인가? 정말 말이 안 나온다. 물론 김행이 여가부에 들어가는 이유가 윤석열 정부의 뜻대로 여가부를 ‘우아하게’ 파괴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들어가기도 전에 여가부가 알아서 자폭할 것만 같다. 김행에게 당하느니 그냥 죽자는 심정으로 말이다.
가톨릭교회만이 아니라 이른바 한국의 태극기 부대와 궤를 같이하는 많은 개신교가 낙태를 살인으로 규정하고 낙태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낙태가 십계명에 나오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거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강간, 근친상간, 심각한 장애, 임산부의 생명조차 낙태의 고려 대상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니 인간이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거룩한’ 논리로 말이다. 한마디로 여자는 애 낳는 기계이고 여자보다는 애가 더 소중하다는 논리다.
그런데 아이의, 그것도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생명은 그리 소중하게 여기면서 정작 살아 있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애쓰는 여자의 생명은 소중하지 않은 것인가? 여자의 권리는 권리가 아닌가? 여자의 생명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존재가 창조했나?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궤변을 기독교는 맹목적으로 늘어놓는다. 그런 궤변을 듣다 보면 낙태 반대에 핏대를 올리는 자들은 정말로 생명을 사랑해서라기보다는 기독교 교회라는 조직의 이익 수호에 눈이 멀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들도 결국 사람보다는 조직이 먼저라는 프레임에 갇힌 이데올로그(Ideolog) 일뿐이다. 이들은 낙태를 반대하고 출산을 장려한다고 하지만 정작 강간, 근친상간, 심각한 장애, 임산부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나운 아이는 물론 미혼모가 나은 멀쩡한 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 그저 입만 놀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그런 ‘불행한’ 출산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들을 다 돌본다면 우리나라의 치욕적인 고아 수출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아 수출국이다. 그리고 버려진 아이들, 특히 장애아들은 오늘도 입양 가정을 찾지 못해 비창한 삶을 살고 있다. 낙태 반대와 태아 생명 존중을 외치는 자들은 다 어디로 도망갔는지 꽁지도 안 보이고 말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어차피 그 태생이 반 페미니즘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기에 이들에 동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낙태 문제는 그렇게 정권의 입맛에 따라, 종교적 도그마에 따라 쉽게 단정할 문제가 아니다. 과연 가톨릭교회의 교리가 그리 중요한 것이라면 왜 유럽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 여자, 그것도 16~17세인 여자가 부모의 동의 없이도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했겠는가? 그리고 스페인만이 아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낙태를 합법화하고 있다. 그리고 근본주의 기독교가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는 미국조차 주별로 낙태권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2022년 6월 임신 15주 이후 낙태 전면 금지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그런데도 미국은 주별로 이 판결을 알아서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동양의 식민지 생활을 한 나라인 필리핀의 법을 대한민국이 따라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윤석열 후보 시절에 페미와 이대남 갈라 치기로 대선에서 0.73%p의 신승을 거둔 기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 프레임을 이번 총선에서 다시 써먹고 싶은 유혹이 강한 것이 뻔하다 그러나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는 않는 것이 현명한 시민이다. 과거 정부에서 자기를 욕했던 자들을 모아 윤핵관을 만들어 부려 먹고, 이동관, 김행, 신원식, 유인촌 같은 골수가 빠지다 못해 골다공증 증세를 보이는 사골도 아닌 사골을 재탕 삼 탕해야 하는 윤석열 정부가 딱할 뿐이다. 그저 다 한 보따리에 싸서 그 좋다는 필리핀으로 발송해 버리고 싶다. 가서 잘 살아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