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요다가 등장할 때가 무르익었다.
오랫동안 고향에서 머물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서울에서 공식 행보를 시작했다. 윤석열 정권의 등장 과정에서 여러 말이 많았던 과거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윤석열 정부가 시작된 지 1년이 조금 넘은 이 시점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다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인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등장을 보니 문득 영화 <스타워즈>(Star Wars) 시리즈에서 가장 호평을 받은 <제국의 역습>(Empire Strikes Back)이 떠오른다. 특히 그 영화 주인공 가운데 최강자인 마스터 요다(Yoda)의 이미지가 겹친다. 젊은 전사들이 악에 맞서 싸우는 데 그들이 힘들 때 적절한 조언과 힘을 준 그 노련한 마스터 요다 말이다. 민주당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그런 스승이 필요하다.
사실 민주당은 지금 매우 어수선하다. 이재명 대표가 20일 넘게 단식을 이어가고 있고, 검찰은 그런 이재명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 절차에 따라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을 놓고 표 대결을 벌이게 될 것인데 현재 예상으로는 또다시 부결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재명 대표의 구속이라는 대형 사건을 통해 판을 흔들어 보고 싶은 세력이 민주당 내부에도 많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판을 흔들기에는 너무 늦었다. 내년 총선이 4월인데 6개월 정도 남은 시간은 그 총선에 대비하여 전열을 가다듬기에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물론 '반란표'가 나와 차라리 당을 흔들어 새판을 짜려는 세력도 민주당 안에는 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을 감당할 인물이 민주당 현역 가운데는 없다. 그런 모험을 할 수도 있지만 대가는 너무나 클 것이고 결국 민주당의 분열이 초래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단식으로도 당을 확실히 장악하지 못한 이재명 대표의 다음 카드는 당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자중지란을 일으키면 내부의 적이라는 비난을 들을 것인데 과연 이를 감당할 의원이 민주당에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재명의 대안이 현재는 안 보인다. 이재명 대표가 여러 가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안고 있기에 법리를 따지기 전에 커다란 핸디캡을 가지고 출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포스트 이재명을 책임질만한 전투력을 지닌 ‘전사’가 민주당 안에는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인재풀이 보수 집단의 집요한 공격으로 결국 말라버린 영향도 크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수 언론의 공격으로 여럿이 다쳤다. 그래서 국민의힘처럼 사골로 재탕하는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 끓일 사골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달리 물갈이가 오히려 쉬울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물갈이에는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기준을 이재명 대표가 단독으로 만들 때 당내 반발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현재 누구나 아는 대로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처럼 당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당 안팎으로 계속 잔매를 두들겨 맞다 보니 어느새 당 개혁의 에너지를 상실해 버린 것이다. 그런 이재명 대표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사즉생의 방법이니 단식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러나 단식으로도 당 장악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 뻔하다. 보수 진영의 집요한 물어뜯기는 변함없이 계속되고 이낙연 계파의 지분 요구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재명 대표가 이미지와는 달리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이른바 ‘무대뽀’ 정신이 정치라는 더러운 바닥에 필요한 것인데 이재명 대표에게는 그런 ‘꼴통의 곤조’가 전혀 없다. 원리원칙만 따지면서 바른길을 고집하고, 그것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다 보니 정치력 부족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여의도 신입이어서 주눅이 든 것이 아니라 이재명 대표의 본성이 그러니 고치기 매우 힘든 부분이다. 바로 그래서 결국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나서서 마스터 요다의 역할을 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재명 대표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일부 지지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한 말은 그러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한 데서 나온 것이다.
“문 전 대통령님은 당의 큰 어른이다. ... 민주당이 하나로 단결해 적과 싸워야 할 지금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시는데, 민주당 지지자라면서 어찌 비난하는가?“
맞는 말이다. 결국 이재명 대표가 현재 기댈 곳은 문재인 전 대통령밖에 없다.
그렇다면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어떤 교통정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선택지는 두 가지다. 이재명 대표에게 이제 본격적으로 힘을 실어주든지, 아니면 새로운 인물로 당의 판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선택지 모두 장단점이 있다.
이재명 대표를 밀어준다고 해도 당장 한동훈이 자기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하여 이재명 대표를 꽃놀이 패로 이용하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다. 검찰이 친 구속영장이 국회에서 동의 받든 안 받든 이재명 대표에게 지금까지 준 피해만으로도 한동훈의 반사 이익은 이미 충분히 확보되었다. 그래서 총선만이 아니라 차기 대선에서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후보로도 거론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당장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에 나오기보다는 총선을 총지휘하면서 존재감을 더욱 키우고 원내에는 비례 대표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자기의 입신양명을 위해서라면 나라도 팔아먹는 한국 엘리트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 한동훈이 야망을 버리지 않는 한 이재명은 계속 꽃놀이 패로 시달릴 것이다. 한동훈은 ‘잡범’이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하여 자신이 이재명 위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 것에서 그의 얕은 속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 게다가 한동훈이 내년 총선의 선대위원장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이 확실시되는 순간 그의 야욕과 이재명 대표 때리기는 절정에 이를 것이 뻔하다. 사실 검찰의 시각에서 이재명 대표를 ‘가지고 놀’ 팻감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런 이재명 대표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이재명 대표 체제를 확고히 구축하기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 문병하러 온 자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에게 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내가 열흘 단식을 했었는데, 그때도 힘들었거든요. 근데 지금 뭐 20일이니까, 얼마나 힘들까 싶은데. (중략) 그래도 지금 이 단식의 진정성이나 결기는 충분히 보였거든요. 그러고 아마 지금 하시는 그런 일에 대해서도 길게 싸워 나가야 하고. 이제 또 국면도 달라지기도 하고. 이제는 또 빨리 기운 차려서 다시 다른 모습으로 싸우는 게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정치가의 언사는 중의적인 것이 대부분이기에 이 말을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핵심은 결국 이재명 대표가 총대를 메고 국민의힘과 맞서 달라는 말이다. 그러나 일단 체포동의안이 국무총리 해임안과 동시에 국회로 넘어간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의 운명은 전적으로 민주당 의원의 손에 달려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 체제를 구축하면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 시절 코드가 잘 맞았던 이낙연을 달래는 일이 쉽지 않기에 안팎으로 동시에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새 인물을 미는 일도 만만하지 않다. 현재로서는 경기도지사인 김동연이 진보 진영에서 가장 상처가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밀어볼 만하다. 더구나 보수 진영의 선두에 나선 한동훈의 이미지와 극명한 대립을 보이기에 여론의 호감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김동연 지사도 아직은 정치 초보이기에 동물의 왕국이나 다름없는 여의도에서 살아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 정도의 강단이 있는 인물도 막상 여의도에 입성하고 나서는 제대로 힘을 쓸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재명 대표보다 훨씬 유약한 인상의 김동연 지사가 이재명 대표를 능가할 정치력을 발휘하리라는 확신이 없다. 보나, 마나 여의도에서 ‘사잣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고 민주당 내에서 정치로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을 대안으로 내세울 수도 없는 일이다. 이낙연은 이제 나이도 많지만 지난 대선 패배에 공동 책임이 있다는 주홍글씨를 지울 재간이 없다. 무엇보다 여론조사에서도 그는 이제 잡룡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21대 국회에서 유일한 6선 의원인 대전 서구 갑의 박병석 의원이 나설 수도 없다. 존재감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5선 의원에는 김진표, 변재일, 설훈, 이상민, 조정식, 안민석이 있지만 이들도 무게감이 많이 떨어진다. 4선 의원 가운데 인지도가 있는 노웅래, 홍영표, 우상호, 김태년도 아직은 아니다. 고시보다 어렵다는 재선에 성공한 의원 가운데에도 아직은 인지도나 중량감으로 당을 이끌만한 젊은 피가 없다. 스스로 치고, 올라와야 하는데 아직은 먼 길이다. 결국 169명이나 되지만 놀랍게도 민주당 안에 이재명을 대체할만한 눈에 뜨이는 라이벌이 없다. 그래서 여권이 기를 쓰고 이재명 대표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이다. 일단 이재명 체제가 무너지면 민주당 내에서 백가쟁명 사태가 발생할 것이고 그런 식으로 6개월 흐르다 보면 전열이 채 정비가 되기도 전에 총선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169석이라는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도 윤석열 대통령 한 사람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생존 기술에만 탁월한 의원에게 총대를 맡기는 것은 너무나 나이브한 전술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의 말대로 어느 사이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의 큰 어른이 되었다. 1953년생으로 만으로 70세다. 공자의 말에 따르면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곧 사리사욕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나이다. 이재명 대표의 나이가 59세이니 인생으로나 정치 경력으로나 어른으로 모시기에 손색이 없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윤석열을 뽑은 국민의 마음도 어느 정도 가라앉은 상황이다. 그래서 이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정치에 본격적으로 나선다고 해도 거부감이 훨씬 적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재명 대표도 아니고 새로운 인물도 아닌 문재인 전 대통령이 총선에서 어른으로서 중심을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문재인의 역습>(Moon strikes back)을 외쳐 볼 수 있을 것 같다.
1977년에 대 히트를 한 <스타워즈>의 속편으로 1980년에 나온 영화 <제국의 역습>은 <스타워즈>의 수익인 7억 7천만 달러에는 미치지 못하는 5억 5천만 달러의 이익을 거두었다. 그러나 3천만 달러의 예산에 비해 거의 20배가 남는 수익을 남겼다. 그래서 이에 자신감을 얻게 된 루카스 감독이 오리지널 삼부작에 이어 프리퀄 삼부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에피소드가 9편까지 이어지고 엔솔로지도 3편이나 작성되었다. 문자 그대로 <스타워즈>는 원조 사골이 된 것이다. <제국의 역습>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스타워즈>는 그저 두 에피소드로 끝났을 것이다. 비평가나 관객의 평에 따르면 <스타워즈> 시리즈 가운데 <제국의 역습>이 가장 훌륭한 영화로 평가되고 있다, 민주당이 이른바 ‘문재인의 역습’에 성공한다면 과거 문재인 정부 때 호언장담한 민주당 집권 30년이 허풍만은 아닌 일이 될 것이다. 역으로 이는 6개월 정도 남은 총선의 결과에 민주당의 30년이 달렸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민주당은 지금 어른과 마스터가 필요하다. 과연 문재인 전 대통령이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