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은 자멸의 길로 나갈 뿐이다.
예상과 달리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2표 차이로 가결되었다. 295명 재적 의원 가운데 2명이면 0.67%다. 이재명 대표는 마치 지난 대선에서 0.73%p라는 간발의 차이로 윤석열 후보에게 진 기억을 소환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당장 떠오르는 의문은 민주당 내의 ‘배신자’ 29명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일단 민주당이 싹쓸이한 호남 지역구 출신 총인원이 28명이니 얼추 비슷하다. 그래서 이른바 ‘개딸’들은 ‘수박’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그쪽 동네'를 비난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상상력의 동원이다. 현재 노골적으로 반이재명 노선을 타고 있는 이상민은 경상북도 경주 출신이다. 그리고 비례대표 출신 가운데 반이재명 노선을 택한 이들도 많다. 그래서 지역으로만 ‘수박’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상황에서 '수박 색출'은 이재명 대표를 더욱 궁지로 모는 일이 될 뿐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이재명 대표는 단호하게 ‘개딸’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개딸’과 더불어 공멸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재명 대표는 ‘배신자’ 색출 중단을 개딸에게 직접 강력히 요청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이번 표결을 통해 이재명이 죽어도 싫다는 세력이 민주당 내에 적어도 29명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분당 밖에는 없나? 20명이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으니, 29명 정도면 분당과 창당을 못 할 것도 없는 숫자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과거 2016년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그 당시 민주당 계보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떨어져 나간 세력이 안철수가 창당한 국민의당에 들어가 독자 세력을 구축한 적이 있다. 이 당시 국민의당은 호남 지역을 문자 그대로 거의 싹쓸이하였다. 비례대표까지 합쳐서 38석이나 거머쥐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것이 다였다. 그 외 지역에서 당선된 이는 안철수와 김성식 둘 뿐이었다. 당시 호남 지역의 반 노무현 정서를 이용하여 호남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을 세웠지만 결국 정체성의 혼란으로 자멸하고 말았다. 중도 노선을 내세웠지만 호남의 정서를 생각하면 보수와 각을 세워야 했다. 그러나 이미 민주당이 진보를 대표하기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비박 세력이 새누리당을 떠나 창당한 바른정당도 중도를 내세우는 바람에 국민의당의 정체성 혼란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때 한국 정치계는 전통적인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 진보 정당인 민주당 외에 영남당인 바른정당, 호남당인 국민의당이 더해져 다당제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바른정당은 21대 총선이 있기도 전에 소멸하고, 국민의당은 21대 총선에서 지역구 전멸에 비례대표만 3명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이런 역사를 볼 때 호남당이 또 만들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나가봐야 또 헛발질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총선이 6개월 남은 시점에서 창당하고 전국 조직을 만들어 선거에 나가 성과를 거두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양향자의 ‘한국의 희망’이나 금태섭의 ‘새로운 선택’을 선택하는 것도 모양이 우습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는 아무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쫓아내도 안 나갈 것이 뻔하다.
민주당은 오늘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과 더불어 상정된 ‘국무총리 해임안’과 ‘현직 검사 탄핵 소추안’을 모두 가결시켰다. 오늘 이 세 가지 안건이 가결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세 대결의 장이 열린 것이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색깔을 드러내고 함부로 날뛰다가는 문자 그대로 ‘독박’을 쓰게 될 것이다. 여의도 물을 최소 4년 먹어본 의원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당장 분당이나 창당은 꿈도 안 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재명 체제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구속영장 실질 심사가 진행될 것이다. 그 자리에서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이재명 대표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일부 호사가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만약에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하면 이재명 대표의 당 장악력은 오히려 크게 회복될 것이다. 도박을 걸만 하다. 이재명 대표의 기질로 봐서는 포기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표결로 이재명 대표의 지도력에 흠집이 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일이 넘는 단식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단일 대오 형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는 흔히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내일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오늘 체포동의안 가결로 당장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사람은 물론 한동훈이다. 이재명 대표와 맞짱을 떠서 이겼다는 빛나는 훈장을 얻은 셈이니 말이다. 그래서 국민의힘 총선의 선대위원장 자리에 한 걸음 성큼 다가간 느낌이다. 그러나 그만큼 국민의힘 내부의 저항 세력도 키운 꼴이 되었다. 윤석열이라는 굴러들어 온 돌에 이리저리 차이는 국민의힘의 의원들이 이제 또 다른 굴러들어 온 작은 돌인 한동훈에게도 차이는 상황이 전개된다면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일이 될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공천이라는 칼자루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의 헌납한 상황에서 별 반발을 보일 수는 없으니 속으로만 구시렁댈 것이다. 국민의힘에 모인 사람들은 어차피 국회의원 배지 달기가 인생의 목표이니 말이다.
일단 이재명 대표로서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대비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리고 이제 공이 법원으로 넘어간 이상 민주당은 오히려 짐을 던 모양이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총선 채비에 전념할 여유도 생겼다. 다만 당분간이라도 지도력 공백이 생긴 상황에서 누가 총대를 잡을지를 정하지 못한다면 국민의힘이 바라는 내분이 본격화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벌써 비대위를 이야기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난 다음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은 일이다.
이재명 대표는 단식으로 몸을 상한 데다 이제 체포동의안 가결로 마음도 깊이 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여러 차례 말한 대로 이재명 대표는 사즉생, 곧 죽어야 사는 팔자다. 그래서 누군가 말한 대로 이재명 대표가 어제 체포동의안 반대를 사실상 요청한 것은 큰 실수였다. 그냥 죽을 각오를 했으면 진짜 죽어야 한다. 과거에 이인제가 말한 대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 국민이 모여 만든 천심은 그 어느 천재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를 하려면 절대로 소탐대실하지 말아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이번 일로 그런 진리를 더욱 가슴에 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오히려 진심으로 완전히 죽을 각오가 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바로 천심이라는 진리 말이다.
그래서 이재명 대표는 더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그렇게 고난의 연속이었듯이 앞으로도 그 고난을 감내할 마음을 먹어야 한다. 누가 말한 대로 이재명 대표의 사주에 나온 팔자도 그러니 말이다. 그래서 영장실질심사의 결과와 무관하게 당대표직을 내려놓는 다음 수순을 밟아야 할 것이다. 다 내려놓는 모습과 다른 사람의 도움을 진심으로 청하는 모습을 보일 때 천심이 움직일 것이다. 아직도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결국 모두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개딸만으로 결코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어쩌면 이재명 대표에게는 이번에 체포동의안이 가결로 결론이 난 것이 오히려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영장실질심사에 대비하기 위해 단식도 중단해야 할 것이다. 한덕수 총리 해임안에는 찬성이 175표나 나왔다. 적은 내부에도 있지만 현재 1차 목표는 밖에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당내 분쟁으로 에너지를 허비하다 보면 정말로 분당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만약에 분당이 된다고 해도 지난번 국민의당 정도의 파동만 일으킬 뿐이니 민주당이 붕괴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 또한 안철수가 그랬듯이 어차피 지나갈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정말로 분당이 이루어진다면 어찌 될까? 지난번 국민의당 사태 때를 복기해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해 보인다. 그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24석이나 잃은 122석을 얻었지만, 민주당은 21석을 더 얻은 123석으로 제1당이 되었다. 국민의당이 38석을 빼앗아 갔음에도 그런 실적을 올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결과는 결국 박근혜 탄핵을 거쳐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2020년 총선에서 압승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이는 분당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역사다.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호남이나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당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과거 김종필이 충청을 기반으로 하는 공화당을 이끌었지만, 충청 지역 27석 가운데 15석만 건졌을 뿐이다. 그리고 김영삼의 책략에 넘어가 3당 합당을 한 다음 토사구팽을 당하고 나서 다시 충청 기반의 자민련을 창당했지만, 지역구 4석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결국 나중에 한나라당에 흡수되고 말았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감정이 매우 강력한 변수가 되기는 하지만 보수적인 국민성 때문에 전통적인 기성 정당 이외의 신생 정당에 대한 거부감 또한 매우 강하다. 그래서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가서 성공을 거두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분당이 된다고 해도 대세에 치명상을 입힐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언론에서 민주당의 분열을 바라며 호들갑을 떤다고 해도 겁낼 것은 없다. 어차피 떠날 사람은 보내는 것이 나은 법이니 말이다. 정치의 생리가 결국 ‘센 놈’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좌고우면 하기보다는 자강불식을 좌우명으로 삼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단식으로 몸을 많이 상하고 이제 체포동의안 가결로 마음조차 상했겠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말대로 ‘다른 모습’으로 싸울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아마 지금 하시는 그런 일에 대해서도 길게 싸워 나가야 하고. 이제 또 국면도 달라지기도 하고. 이제는 또 빨리 기운 차려서 다시 다른 모습으로 싸우는 게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